낙심의 자리에서 짜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적 그물(행 18:9)
낙심의 자리에서 짜 가시는 하나님의 구속적 그물(행 18:9)
“밤에 주께서 환상 가운데 바울에게 말씀하시되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 (행 18:9)
하나님의 구속 사역은 인간의 탁월한 조건이나 화려한 성공을 통해 확장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우리의 철저한 좌절과 가난해짐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비하(낮아지심)를 배우게 하시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인 위로와 섭리만으로 교회를 세워가십니다. 사도 바울이 고린도에서 겪은 일련의 사건들은 이 개혁주의적 구원의 도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역설의 현장입니다.
1. 낙심의 자리에 던져진 사도, 그리고 낮아짐의 은혜
바울은 고린도에 이르기 전, 아덴에서 철학적인 변론으로 복음을 전하려 했으나 씁쓸한 실패를 맛보았습니다. 거대한 영적 좌절감을 안고 내려온 고린도에서 사도의 형편은 처절하리만치 초라했습니다. 복음 전무(專務)에 힘써야 할 위대한 사도가 당장의 생계를 위해 다시 장막을 만드는 거친 노동의 자리로 돌아가야 했던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주님의 신실한 종을 이토록 낮고 가난한 자리에 던져두셨을까요? 여기에는 인간의 자랑과 의를 꺾으시고, 낙심을 통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의 독특한 주권적 방법이 숨겨져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지혜와 힘을 내려놓고 철저히 낮아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거대한 구속의 그물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2. 주권적 섭리가 빚어낸 ‘가장 가난한 자들의 만남’
바울이 생업을 매개로 고린도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를 만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닌, 창세 전 예정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였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부부 역시 깊은 낙심 중에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로마에서 전 재산을 두고 추방당한 실향민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볼 때 이들의 만남은 실패자와 낙오자의 초라한 조우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낙심한 이 두 부류를 거룩하게 엮으셔서 고린도 교회의 견고한 초석을 놓으셨습니다.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고전 16:19). 이들의 만남은 단지 교회를 세우는 데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훗날 학문이 높은 아볼로를 복음의 깊이로 변화시켰고(행 18:24), 바울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는 동역자로 성숙해 나갔습니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4). 인간은 좌절하고 있었으나, 하나님은 신자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이미 거대한 구속의 역사를 짜고 계셨던 것입니다.
3. 그리스도의 비하(卑下)와 신자의 성화
개혁주의 신학에서 구원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가난해지심’에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고후 8:9).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고 가장 가난한 자의 모양으로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듯이, 하나님은 주님의 자녀들을 반드시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배우는 자리로 인도하십니다. 사도 바울의 낙심과 아굴라 부부의 추방이라는 고난은, 고린도 교회를 세우기 위한 하나님의 주권적 도구인 동시에, 그들이 그리스도의 겸손한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는 필수적인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이었습니다.
4.섭리의 신앙을 바라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의 자리가 사도 바울이 겪었던 고린도의 장막 터처럼 초라하고 낙심되십니까? 내가 계획한 일들이 무너지고 세상으로부터 거절당해 가난해진 자리에 서 계십니까?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가 시작되는 자리입니다. 인간의 조건과 성공주의에 매몰되지 마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 은혜의 깊이를 살피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낙심과 좌절을 통하여 내 안에 숨겨진 인간의 자랑을 걷어내시고, 맏형이신 예수의 겸손을 조각해 가십니다.
우리의 실패 속에서도 멈추지 않고 거대한 구속의 그물을 짜 가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낙심의 밤은 깊을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고 찾아오시는 주님의 위로가 여러분의 삶에 고린도 교회와 같은 거룩한 열매로 맺어지기를 소망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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