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욥 3: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아이를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욥 3:3)
욥은 고난을 견더 내던 육체와 정신의 극한 고통 앞에서 철저히 무너져 내리며 탄식을 쏟아낸다. 즉 자신의 생일을 저주하며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고통이 없이 영원한 안식을 누렸을 것이라 하며 절규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향한 거역이라기 보다는 피조물이 느낄 수 있는 가장 깊은 실전적 절망의 표현이다. 이 고통을 받으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성육신 사건이 일어난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죄와 저주를 온몸에 짊어지시기 위해 사람으로 태어났다. 그의 탄생은 죽음과 저주의 자리로 가기 위한 것이고, 우리가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대신 받으신 것이다.“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맏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갈 3:13)
욥의 탄식은 죄로 인해 저주 아래 놓인 모든 인류의 비참함을 대변하며, 이 비참한 저주를 끊기 위해 친히 저주받은 바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이다.
욥의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가? 늘 자신을 비추던 하나님의 얼굴빛이 사라지고 흑암과 단절만 남은 듯한 영적 어두움이다.
예수님도 하나님과의 단절의 고통을 겪으셨다. 욥이 겪었던 어두움의 고통이 예수님의 십자가 위에서 세 시간이 넘도록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할 때에, 예수님의 울부짖음으로 온전히 성취된다.
빛이신 예수님이 영원한 흑암 속으로 들어가셨고, 하나님께 완벽하게 둘러싸여 심판의 잔을 받으셨다. 즉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야 할 어둠을 대신 감당하시기 위해 그 아득한 침묵과 단절의 길을 묵묵히 걸어 가셨다.
욥의 고통과 절규에서 평온이 없고 다만 두려움만 있다고 한다. “나에게는 평온도 없고 안일도 없고 휴식도 없고 다만 두려움만 있구나”(욥 3:26)
욥이 그토록 갈망했던 평안과 안식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가 극심한 고통 중에 던지는 탄식과 울부짖음을 하나님을 받아 주십니다.
주님도 고난이 왔을 때에 아버지 앞에 울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우리가 어둠 가운데 있을 때에 절망하지 않는 이유가 있습니다.
절망의 어두운 곳, 빛이 없는 그곳에 예수님이 다녀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의 절망에 대하여 예수님을 통하여 빛이 밝혀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평안의 실체는 예수님이 준비하신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아픔도, 애통해하는 것이 없습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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