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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마 26:26)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마 26:26)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전에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하셨습니다. 그 자리에서 떡과 포도주를 떼어 주시며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여야 합니다. “축사하시고 떼어 이르시되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하시고”(고전 11:24) 떡을 떼어 나누어 주시며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라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제자들은 떡을 예수님의 몸으로 받아들였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제자들에게 자신은 양의 문이며, 나는 참 포도나무라 하셨고, 나는 세상의 빛이라 하셨으며, 나는 생명의 떡이라 하셨습니다. 이것은 자신을 제자들에게 알리기 위하여 자주 사용하시던 비유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본래의 뜻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즉 너희가 이것을 먹을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신 것은 나도 동일한 시간에 너희를 기억하고 너희 가운데에 임하여 세상에서 보일 수 없는 내 자신의 영광을 나타낼 것이라 함을 말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피로 인치시는 것입니다.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고전 11:25) 그렇다면 그 영광은 무엇을 말하는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몸이 찢어지고 피를 흘리시고 운명하실 때에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졌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마 27:51) 즉 모든 사람의 죄를 대속하여 주셔서 하나님 앞으로 나갈 수 있게 되었음을 말한다. 대속의 은혜가 성취되는 유월절 날의 잔치이다. 유월절 날의 잔치 음식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고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너희의 순종함이 모든 사람에게 들리는지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로 말미암아 기뻐하노니 너희가 선한 데 지혜롭고 악한 데 미련하기를 원하노라”(롬 16:19) 사도 바울은 로마교회에 서신을 보내면서 동역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등장하는 인물 가운데 이름을 밝힌 자도 있고 이름 없이 수고를 칭찬하기도 한다. 그런데 여기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일꾼을 택하신다는 것이다. 그래서 개인의 자랑을 할 수 없다.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고전 1:31) 그리고 일꾼으로 소개를 하는데 있어서 각각의 맡은 책임이 다르다는 것이다. 즉 필요한 곳에서 동역을 한다.  그래서 우리 자매 뵈뵈를 소개하는데 모든 사람의 보호자이다. “너희는 주 안에서 성도들의 합당한 예절로 그를 영접하고 무엇이든지 그에게 소용되는 바를 도와줄지니 이는 그가 여러 사람과 나의 보호자가 되었음이라”(롬 16:2) 브리스가와 아굴라를 소개한다.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을 정도로 수고를 많이 하였고 그의 집을 교회로 모이게 하였다. “그들은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들의 목숨까지도 내놓았나니 나뿐 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그들에게 감사하느니라”(롬 16:4) 바울은 동역자들을 소개하는데 있어서 크기나 업적으로 소개하는 것이 아니다.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복음을 이방 땅에 전하는 일은 하나님의 일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필요한 자들을 세우시고 함께 하심을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의 것을 가지고 자랑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지체들이 함께 가는 것을 기억하여야 한다. 몸의 지체가 맡은 일이 각각 다르듯이 교회의 지체들도 맡은 바 직분이 다르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중요한 것은 무엇인가? 각 지체가 머리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본을 따르면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 안에서 직분의 위치가 중요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몸의 지체가 되어 맡은 바 책임을 다하면 되...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왕하 2: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너는 여기 머물라 여호와께서 나를 벧엘로 보내시느니라 하니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살아계심과 당신의 영혼이 살아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당신을 떠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이에 두 사람이 벧엘로 내려가니”(왕하 2:2) 엘리야의 사역에 이어 엘리사가 등장을 한다.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성령의 역사가 당신의 갑절이 임하게 해 달라고 한다.  “건너매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이르되 나를 네게서 데려감을 당하기 전에 내가 네게 어떻게 할지를 구하라 엘리사가 이르되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 하는지라”(왕하 2:9) 엘리야의 사역은 왕들과 이방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였다. 그러나 엘리사의 사역은 이스라엘 땅에서 한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는 것이다.  성읍의 위치는 좋으나 물이 좋지 못함으로 인하여 토지의 산물들이 익지 못하고 떨어진다. 그러자 엘리사는 소금을 가져오라 하여 물이 솟는 곳으로 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 던지니 고쳐져서 열매가 자라고 되었다.  “엘리사가 물 근원으로 나아가서 소금을 그 가운데에 던지며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이 물을 고쳤으니 이로부터 다시는 죽음이나 열매 맺지 못함이 없을지니라 하니”(왕하 2:21)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를 조롱하는 믿음이 적은 자들이 수풀에서 나온 암곰에게 찢겨 죽는다. “엘리사가 뒤로 돌이켜 그들을 보고 여호와의 이름으로 저주하매 곧 수풀에서 암곰 둘이 나와서 아이들 중의 사십이 명을 찢었더라”(왕하 2:24)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기 위해서는 여호와만 섬기며 모세 오경의 말씀을 지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회개하기를 싫어하고 계속 불순종을 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통하여 많은 기적을 행하신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백성들의 마음을 여호와께로 돌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일 가운데에 기적을 나타내시어 이방 신에게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이렇게...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왕하 1: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보라 하니라”(왕하 1:2) 열왕기상하의 말씀을 살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왜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나뉘게 되었는가이다. 그리고 북이스라엘은 왜 멸망을 했는가, 와 남유다는 왜 망하게 되었는가를 확인하여야 한다. 멸망하게 된 그 근거는 무엇인가를 확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모세 오경의 말씀이 근거가 된다. 여호와의 명령에 불순종하고 약속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아합의 아들인 아하시야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이 생겼다. 그래서 이 병이 낫을 병인가를 알아보기 위하여 에그론의 바알세불에게로 사람을 보낸다. 이와 같은 행위는 여호와 하나님을 모욕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의 이름에는 라파엘 하나님으로 치료하시는 분이시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 즉 모든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뒤로하고 이방신에게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하여 불신앙이 됨으로 인하여 저주가 된다. 그래서 아하시야는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하고 죽게 된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왕하 1:4) 아하시야는 이 말씀을 전한 엘리야를 잡으려 한다. 그래서 오십 부장을 보내디만 하늘에서 불이 내려 타 죽었다. 이번에는 군사 오십 명을 보냈지만 역시 불이 내려 타 죽었다. 왕은 세 번째로 오십 부장과 군사 오십 명을 보낸다. 그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귀하게 여겨 살려주기를 원한다.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아하시야 왕에게로 가게 하여 침상에서 죽을...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왕상 22:5)

  “여호사밧이 또 이스라엘의 왕에게 이르되 청하건대 먼저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보소서”(왕상 22:5) 이스라엘과 아람과 전쟁을 하게 된다. 그 이유는 길르앗 라못의 땅을 아람이 차지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그의 신하들에게 이르되 길르앗 라못은 본래 우리의 것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우리가 어찌 아람의 왕의 손에서 도로 찾지 아니하고 잠잠히 있으리요 하고”(왕상 22:3) 그래서 아합 왕과 유다의 왕인 여호사밧이 함께 아람과 전쟁을 하기로 한다. 그런데 여호사밧이 아합에게 이르기를 여호와 하나님의 뜻이 어떠한지를 알아보기로 한다. 이스라엘의 왕이 선지자 사백 명을 불러 여호와의 뜻을 묻자 그 성읍들을 넘겨받을 것이라 한다. 그러자 여호사밧은 하나님의 선지자 미가야를 찾는다. 미가야의 대답은 올라가 성읍은 얻게 되지만 온 이스라엘이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각각 평안히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려 하는 것은 아합 왕에 전쟁에 죽게 된다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그를 길르앗 라못에 올라가서 죽게 할꼬 하시니 하나는 이렇게 하겠다 하고 또 하나는 저렇게 하겠다 하였는데”(왕상 22:20) 즉 아합 왕을 죽이기 위하여 사백 명의 선지자 입을 통하여 전쟁에 나가면 승리를 할 것이라 예언을 하였다. “이제 여호와께서 거짓말하는 영을 왕의 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넣으셨고 또 여호와께서 왕에 대하여 화를 말씀하셨나이다”(왕상 22:23) 무슨 말인가 하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합이 길에서 죽어 개들이 그의 피를 핥을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 21:19) 아합 왕의 죄는 죄없는 나봇을 돌로 쳐 죽이고 포도원을 빼앗은 것이다. 그 피 값을 그대로 아합에게서 찾으시겠다고 ...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왕상 21:21)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왕상 21:21) 여호와 하나님께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고 택한 백성들을 주관하신다. 그 일을 하시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역사를 이룬다. 본문의 말씀은 아합 왕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는 내용이다.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거짓과 살인의 죄를 범한다. 즉 하나님이 정하신 법과 명령을 자신의 생각으로 바꾸어 법령이라 선포한다. “아합의 이름으로 편지들을 쓰고 그 인을 치고 봉하여 그의 성읍에서 나봇과 함께 사는 장로와 귀족들에게 보내니”(왕상 21:8) 이와 같은 범죄의 행위를 보신 여호와께서 엘리야를 통하여 아합에게 이르게 하신다. “여호와의 말씀이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왕상 21:17) 아합의 집에 재앙을 내려 쓸어 버린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재앙을 네게 내려 너를 쓸어 버리되 네게 속한 남자는 이스라엘 가운데에 매인 자나 놓인 자를 다 멸할 것이요”(왕상 21:21) 이 말을 들은 아합은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을 한다. “아합이 이 모든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옷을 찢고 굵은 베로 몸을 동이고 금식하고 굵은 베에 누우며 또 풀이 죽어 다니더라”(왕상 21:27) 이 사건을 통하여 엘리야가 하는 사역이 무엇인지를 확인해야 한다. 그의 사역은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과 백성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 것이다. “여호와여 내게 응답하소서 내게 응답하옵소서 이 백성에게 주 여호와는 하나님이신 것과 주는 그들의 마음을 되돌이키심을 알게 하옵소서 하매”(왕상 18:37)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엘리야 하면 기적을 행하고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올라간 사람이라는데 머물러 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는 엘리야를 통하여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갈멜산에서 바위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태우셨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산채로 ...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이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이 여자가 행한 일도 말하여 그를 기억하리라 하시니라”(마 26:13)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을 바라보는 두 종류가 있다. 마리아와 가룟유다이다. 마리아는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 “한 여자가 매우 귀한 향유 한 옥합을 가지고 나아와서 식사하시는 예수의 머리에 부으니”(마 26:7) 반면에 예수를 은 삼십에 팔아 넘긴 자가 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리니 얼마나 주려느냐 하니 그들이 은 삼십을 달아 주거늘”(마 26:15) 마리아의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시어 마지막 날에 부활에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반면에 가룟유다의 믿음은 예수님께서 로마의 황제를 이기고 정치적인 왕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였는데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하니 실망을 하고 대제사장에게 은 삼십에 팔았다. 오늘날에도 마리아의 믿음과 가룟유다의 믿음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죄와 사망의 영역과 거룩함의 영역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것을 모르면 가룟유다가 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되 실리적이고 유익이 되는 것으로 생각하며 믿는 것이 된다.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제자였다. 이제 예수님이 로마 황제의 자리에 앉으면 실리적인 유익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런데 십자가에서 죽으신다고 하니 실망하여 하나님을 은 삼십에 팔았다. 요즘도 나라의 대통령이 되는데 예수님의 능력을 구하는 자들이 있다. 잘못된 것을 구하는 것이다. 바른 믿음은 더러운 세상에서 하나님의 정의를 행하며 사랑으로 살겠사오니 능력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하여야 한다. 자신을 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우상숭배이다. 즉 자신의 탐심을 이루기 위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지를, 가룟유다가 왜 배반을 하였는지를 생각하시고 믿으셔야 합니다. 한 장소에서 예수님 앞에 앉아 있는 마리아와 가룟유다는 너무나도 다른 믿음을 가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