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요즘 신자들은 교회에 올 때에 '죄와 그 허물'들을 갖고 오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기도 속에 회개와 눈물이 사라진지 오래 되었고, 늘 달라고만 한다. 즉 상한 심령을 갖고 나오는 자가 드물다는 것이다. 구원파를 이단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지만 어느새 정통교단에도 이단의 교리가 자리 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정통교단은 날마다 말씀으로 우리들의 죄를 씻어야 한다고 외친다. 그런데 이단은 한번 죄사함을 받으면 더 이상 죄용서를 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한다.
죄가 무엇인지, 죄로 인한 열매가 무엇인지를 모르다보니 죄에 대한 설교를 하기 힘들게 되었다. 또한 신자들도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내용이 가족의 문제, 사업의 문제, 이웃과의 갈등의 문제, 재정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설 때의 거룩한 자로서의 모습을 채우려 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원죄의 문제로 인함과 죄의 열매로 인하여 고통과 수고의 짐을 진 자들에게 내게로 오면 내가 너희를 쉬게 하여 준다고 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은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하셨고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는다고 하셨다.
이것이 인간이 사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이 된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을 창조하시고 지금도 주관하시고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니 죄로 타락한 인간이 다시 하나님과 회복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안식을 얻어야 한다.
예수님의 멍에를 메고 가르침을 받으면 나에게 좋은 것이 있는데 참 안식이 있고 무거운 죄의 짐을 벗어버린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에게는 평안을 누리는 모습이 나타나야 하고, 하나님 앞에 거룩한 자로서 서 있는 모습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거룩을 향하여 날마다 말씀으로 죄를 씻어야 한다. 그러므로 거룩한 자로서 하나님의 뜻을 찾는 일에 게으름도 죄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을 모르다보니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이 세례요한도 거부하고 예수님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자기들의 뜻과 다르다고 하여 심지어 죽이려 음모를 꾸미기도 한다. 바리새인들은 윤리 도덕적으로는 결함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모르는 자들이었다. 그러다보니 예수님 앞에서도 늘 당당한 자들이었다. 심지어 죄를 지적하면 오히려 대항을 하였다.
오늘날 설교에 죄에 관한 설교를 하면 교인들이 싫어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이유는 무엇일까?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