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무슨 일을 하여도 마음이 편하지 않고 찜찜한 경우가 있다. 믿는 자들에게도 교회를 다녀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평안이 없을 때가 있다. 그러다보면 나름대로 해법을 찾으려고 한다. 그 방법이 성경에서 지시하는 대로라면 문제가 없겠지만 지나친 자기의 욕심으로 풀려 하다가 더 미궁 속으로 들어갈 수가 있다.

물질주의와 과학의 발달로 인하여 인간들은 그 속에서 빠져 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잠시라도 혼자 있게 되면 불안해한다. 심지어 핸드폰이 울리지 않으면 내가 전화를 하여 고장이 아닌지를 확인까지 한다. 인간에게는 혼자 있는 시간이 무엇보다도 두려운 시간이 되었다. 그러나 인간에게는 자기 자신을 돌봐야 할 시간이 필요하다. 자신을 살필 시간이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을 세상에 방임을 하는 것이다.

믿음이 있는 자들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인간의 생명의 주인 되시는 분 앞에서 내게 주어진 시간을 올바로 사용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는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의 시간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한 몸부림의 요구이다. 그러나 물질주의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다른 생각이 필요 없다. 물질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고 한다. 그래서 돈이 최고라고 한다.

성경에서 삭개오라 하는 자가 있다. 키가 작고 세리장이고 부자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의 고을로 지나간다는 소식을 듣고 뽕나무 위에 올라가서 주님을 기다렸다. 이미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신 말씀을 들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면서 다가오시는 것이다. 속히 내려오라고 하신다. 그리고 삭개오의 집에서 유숙하시겠다고 한다. 삭개오는 즐거워하며 영접을 하였다. 그리고 삭개오와 그의 집이 구원에 이르렀다고 한다. 삭개오는 예수님이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열었고 기쁨으로 예수님을 맞이하였다.

믿는 자들이 예수님 앞에 나가서 예수님의 음성은 듣지만, 삭개오처럼 마음의 문을 열지 않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 앞에 나가서 들려주시는 음성보다 자기의 욕심과 생각을 하다가 보니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한다. 즉 예수님의 뜻과 내 뜻이 다르기 때문이다. 내 뜻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예수님 앞에 나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을 우리들의 기도의 습관을 통하여 확일 할 수 있다. 기도를 하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찾고 생각하기 보다는 내가 필요한 항목을 차례대로 요구하면 끝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이 이와 같다. 주님이 그들의 마음의 문 앞에서 두드리고 불러도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그들이 마음의 문을 열면 내가 들어가 그들과 더불어 먹으며 교제하며 고민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고민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먼저 주님의 음성을 듣고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먼저 나의 요구를 들어주시면 주님께 충성과 순종을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고 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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