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예수 안에 들어오면 날마다 기쁨이 샘솟는다고 자랑을 한다. 그리고 너무도 즐거운 인생을 살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하는 방법으로 해 볼 것을 권유한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믿는 자들에게는 고난과 환난이 있다고 한다. 같은 성경의 말씀을 해석하고 믿는데 다른 것이 분명히 있다. 분명한 것은 두 부류 가운데 하나는 거짓을 증거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도 이 땅에 오셔서 믿는 자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다. 그리고 사도들 역시 고난과 환난 가운데에서 복음을 증거하였다. 그러면 복음을 받는 자들에게 고난이 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강조한다.

고난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이나 순종하는 삶을 말한다. 본인의 잘못으로 인하여 사회의 법으로 당하는 고난은 아니다. 또 대박을 인생을 꿈꾸며 투기를 하다가 어려움을 겪는 것 역시도 아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법과 모든 권위자에게 순복을 하여야 하고, 투기나 대가성의 투자도 하지 말아야 한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정한 것들이다.

사도들은 복음을 전하면서 핍박과 고난을 받았다. 그들이 이미 체험한 이후에 믿는 자들에게 권고하고 있다. 환난과 고난을 피하거나 미리 대비하라는 것이 아니었다. 사도들의 주장은 고난을 믿음으로 이기라 한다. 그러면 너희에게 유익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하여 고난을 당하면 예수님께 함께 하시는데 고난으로 당하는 아픔보다 더 큰 은혜를 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니 너희도 고난을 당하고 그 맛을 보라 한다. 믿음으로 고난을 참고 견디는 것이 본이 된다. 어두움 속에서 공중 권세의 아래에서 살아야 하는 우리는 그 세력을 이기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임하여야 한다.

예수님이 죽음을 이기시기 위해서 죽음으로 이기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니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다. 즉 개인의 자아가 죽어야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것이다. 사도들도 이것을 맛본 것이다. 어찌 이것을 말로 여러 번 한들 이해할 수 있겠는가, 그러니 고난에 참여하여 보라는 것이다.

주님이 보여 주신 본을 제자들이 따랐고, 제자들 역시도 고난을 따르라고 한다. 내가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야 그 맛을 전할 수 있고, 내가 따랐던 본대로 자식들도 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왜 고난에 순종하라고 하는지 생각을 해 보아야 한다.

고난과 환난은 모든 사람이 싫어한다. 교인의 수를 늘리기 위하여 늘 기쁜 일만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교회를 다녀도 별 차이가 없으니 실망을 하고 떠난다. 누가 누구를 속인 것인가?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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