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누가 말하려면



우리 속담 가운데 ‘철들자 망령'이라는 말이 있다. 그동안 사람답게 살지 못하다가 변화되어 사람답게 살만 하니까 이제는 정신이 돌아가 사람답게 살지 못함을 한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 말 속에는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것이 어렵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사람이 사람답게 제 구실을 못할 때에 하는 욕이 사람이하인 동물로 비유하여 동물의 이름으로 부르고 경우에 따라서는 그 동물의 더 어리석음을 나타내는 것으로 새끼라는 단어를 붙인다.

우리는 성장을 하면서 이와 같은 욕을 하기도 하고, 듣기도 하였다. 그러나 진정한 의미를 몰랐다. 왜 사람이 사람에 대하여 분노를 느낄 때에 동물을 비유하여 욕을 하는지 몰랐었다. 개나 고양이 들이 꼬리를 흔들면서 반기는 사람이 있다. 아무나 반기거나 좋아 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먹이를 주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즉 자기들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도록 먹을 것을 주는 것이다.

사람이 사람답게 살지 못한다는 것은 사람으로서의 가치와 목적을 상실한 상태를 말한다. 그러한 사람들을 동물로 비유하는 것은 동물들이 하는 것처럼 하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사람이나 생명을 보존하기 위해서는 먹어야 한다. 그래서 먹을 것을 보면 으르렁 거린다. 상대를 죽이거나 치명적인 상처를 입혀 쫒은 다음에야 먹이를 차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물의 세계에서는 강자와 약자로 구분이 된다. 자기의 영역과 힘을 자랑하기 위하여 포효를 한다든가 나무에 흔적을 남기기도 한다. 사람들의 세계는 어떠한가? 동물들이 나타내는 힘과 영욕을 나타내기 위하여 소위 '뻥'이라는 것을 펼친다. 뻥치는 사람들의 특징은 과거의 이야기를 잘한다. 내가 옛날에 어떠했고 이러한 사람이라고 자랑을 한다. 그런데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 이야기를 확인할 길이 없다.

그것이 큰 사건이어서 신문에 난적도 없고, 가문에 자랑이 되어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것도 아니다. 보통 남자들의 뻥이 많은 이야기가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이다. 군대에서 축구를 할 때는 아주 잘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대에서 골을 넣은 사람은 이야기 하는 사람 밖에는 없다. 이 이야기도 확인할 수 없다. 참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답답하다.

이와 같은 일이 흔히 있는 일인데 처음 만난 자리나 윗사람이 말을 하게 되면 예의상 들어 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친한 사이에는 상황이 다르다. 뻥치는 이야기의 사실을 확인하다가 싸우고, 뻥과 뻥이 마주쳐서 큰 감정싸움으로 변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도 자주 일어난다는 것이다. 도저히 확일 할 수 없는 근거 없는 이야기를 하다가 교인들끼리 싸움을 한다. 교인들끼리 진리의 말씀을 가지고 싸웠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자기의 집식구들도 믿어 주지 않는 이야기를 믿어 달라고 한다. 그 사람들의 말대로라면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세상에서 참으로 훌륭하고 대단한 사람들만 모인 곳이 된다.

교회는 과거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 아니다. 현재의 나의 변한 모습을 자랑하는 곳이다. 내가 변화된 것을 자랑하는 곳이다. 구원을 받고 변화된 새사람으로의 모습을 말하는 것이다. 즉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자랑하여야 한다.

사람으로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됨을 감사하고 깨달으며 살아야 하는데, 아직도 교회 안에서 뻥이나 치고 있으면 삼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교회 안에서 상스러운 욕을 할 수 없음은, 사람들의 인격이 고급해서가 아니라, 이미 사람이 사람답게 되었기 때문에 욕을 들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이제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되었다면, 일상의 생활에서 말을 조심하여야 한다. 모든 말은 하나님이 하는 것처럼 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말씀을 하실 때에 인격으로 인정하시고 하셨다. 그리고 하신 말씀은 반드시 지키셨다. 또한 거짓이나 뻥은 없으셨다.

뻥치는 사람은 자기가 뻥을 치고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 뻥을 완벽하게 하기 위하여 또 다른 뻥을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니 그 마음에 평안이 있을 수가 없다. 거짓을 감추기 위하여 또 다른 거짓을 생각하고 준비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목사로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데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나 골을 넣은 이야기를 듣는 일은 정말 어렵고, 대한민국의 군사작전은 자기가 수행을 하였고, 모든 국가비밀은 자기가 다 알고 있다고 하는 이야기는 신뢰가 가지 않는다. 이제 신자가 되었다면 다른 세상의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였던 이야기를 생각하고 준비하여야 한다. 그래서 이제 자랑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자 철이 들어서 하나님 앞에서 사람답게 살다가 하늘나라에 갔다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벧전 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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