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결심과 결단이라는 단어가 있다. 결심은 무엇을 하려고 마음을 정하여 다짐 또는 그 마음을 말하며, 결단은 결정적으로 판단하거나 단정을 내리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결정하게 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이나 상태가 잘못되었을 때에 한다. 인생이 삶에 있어서 무의미한 것을 쫓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고자 할 때에 삭발도 하고 단식도 한다. 즉 중요한 결정에 따른 마음의 굳은 결정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 신앙인들도 결심이나 결단을 하면 굳은 의지를 외적으로 잘 표현을 한다. 그것은 자신과의 싸움을 외적으로 나타내어 마음이 다시 변할 수 있게 하는 것들을 미리 차단하는 효과도 있으면 다른 사람에게도 경각심을 주기도 한다. 우리가 죄의 종으로서의 생각이나 삶을 청산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이다. 그리고 나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

내가 믿고 있는 성경의 말씀이나 교리를 더 빛나게 하기 때문이다. 말씀과 교리를 지킴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권위를 세우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가 하나님의 권위를 세우고 지켜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권위에 순복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존재를 부인하는 행위가 된다.

믿는 자가 하나님 앞에서 결심과 결단은 권위 앞에서 순복이다. 즉 더 이상 나의 주장이나 욕심으로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말한다. 이와 같은 일에 대표적으로 실패한 민족이 이스라엘이다.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도 자기의 생각과 욕심으로 살았다. 즉 삶 속에서는 하나님의 분부나 명령을 따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기독교인들도 주일날에는 모두가 거룩한 신자들이다. 그러나 나머지 육일 동안의 삶에서는 기독교인의 삶의 모습을 찾을 수가 없다. 세상 사람과 다른 점을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를 세워야 하는데 그곳이 세상이다. 세상 사람은 자기의 권위로 살지만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지키며 살아야 함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저 우리가 하는 것은 종교의식적인 기도뿐이다. 식사를 앞에 두고 잠시 기도를 하는 것으로 다름을 보여 주는데, 문제는 다음부터 시작이 된다. 모든 것이 감사하다는 내용의 기도였지만 자복하는 마음과 감사의 마음은 없다. 여러 가지의 불평과 갖가지의 요구를 한다. 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하는 식당에서 자기의 입맛에 맞추기 위하여 여러 가지 요구를 하는 것이다.

식사의 대화의 내용도 노골적인 정죄와 비판의 내용이다. 그 내용을 옆에서 듣기가 민망할 정도이다. 그 뿐만 아니라, 식당 종업원의 수고를 생각하여 팁은 생각하여야 하는데 낮이 부끄럽게 놓고 간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기독교인을 싫어한다. 그리고 교회 가기도 싫어한다.

그런데 이런 일들을 교인들이 때를 지어 몰려다니면서 하고 있다. 즉 기독교를 힘으로 생각을 하는 것이다. 마치 조폭들이 때를 지어 다니면서 사람의 수로 세력을 과시하는 것과 같이 말이다. 그래서 그들의 입에서는 교회의 이름이나 담임 목사님의 이름은 너무도 자랑스럽게 나온다. 기독교인으로서 무례함을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다.

심지어 콩나물을 파시는 할머니와의 흥정에서도 무례함이 그대로 나타난다. 값을 깎고 콩나물을 덤으로 더 집어 간다. 그들은 삶 속에서는 무례함을 창피하게 여기지 않으면서 살지만, 교회가 불쌍한 이웃이나 단체를 도우러 간다면 광명한 천사로 변한다. 거기에 일부러 하는 겸손을 더 한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모습을 우리들의 자녀들이 보고 듣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녀들은 부모와 함께 교회에 출석하는 것을 창피하게 여기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부모의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게 독립의 때가 오면 그들은 교회에 발걸음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이것에 대한 책임을 교회에 미루고 있다. 교회가 아이들에게 관심이 없고 재미없게 한다고 한다. 또 좋은 영향을 주는 교역자가 필요하다고도 한다. 아니다 자녀의 교육은 전적으로 부모의 책임이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 부모들은 결심과 결단이 필요한 때이다.

자녀와 후손들을 위하여 결단과 희생이 필요하다. 성경의 인물 가운데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 있었고 불순종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의 이름이 지금도 우리의 입에 오르고 내리고 있다. 우리의 믿음의 상태가 후손들에게 의해서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존경을 받는 믿음의 조상이 될 수도 있고, 날라리 신자였다고 조롱을 받거나 기억하는 것조차 기분 나쁘게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일들이 지금, 현재 우리들의 삶을 통하여 결정이 나는 것이다.

우리들의 후손들이 지옥에 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면 지금 결단과 결심이 필요하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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