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모 정당 대표가 지역 국회의원 후보 결정을 위한 여론 경선에서 부정이 개입되어 사퇴 압력을 받았었다. 부정이 개입이 되었지만 본인이 직접 가담을 하지 않았기에 사퇴할 수 없다고 하다가 결국에는 후보 사퇴를 했다. 그 대표는 그동안 다른 사람들을 향하여 똑바로 살라고 악을 쓰며 소리 소리를 외쳤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이 그런 일을 당하자 입장이 바뀌었다. 이 일로 인하여 그 대표가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신뢰를 잃게 되었다.

우리들도 그와 같은 존재이다. 남을 향하여는 법과 잣대로 심판을 하지만 정작 내 일에 대해서는 관대하고 너그럽다. 그래서 남이 외도를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가 된다.

인간의 교만함은 내가 다른 사람을 조종하고 심판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부터 문제가 시작이 된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심판을 하는 근거가 내가 정한 법에 의해서 판단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싸우는 이유가 각각의 법들이 충돌을 하기 때문이다.

자존심은 자존감으로 형성이 된다. 자존감은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기초가 되는 개인적 가치와 능력에 대해 느끼는 감각이며, 자존심은 남에게 굽히거나 아쉬운 소리를 하지 않고 자기의 위신이나 위엄이나 체면을 세우려는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올바른 사회 정의로운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개인의 가치관이 먼저 잘 정립이 되어야 한다. 즉 어떠한 내용물로 채워지는가에 중요성이 있다. 사람이 사람으로서 참된 가치를 추구하여야 한다. 먼저는 개인이 혼자서 스스로 독립을 하며 더 나아가 다른 이웃에게 도움과 유익한 존재가 되어야 한다. 사람은 혼자서 살 수 없는 존재이다. 그래서 어떤 철학자는 사람은 사회적인 동물이라고 하였다. 다른 이웃과의 만남과 공동체의 삶이 있기에 각 자가 먼저 채워야 할 것이 자존감과 자존심이다.

인간이 가장 두렵게 생각하는 것이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즉 무엇을 먹으며 어떻게 살 것인가이다. 산업혁명의 발달로 인하여 우리는 직접 창을 들고 산이나 들에 나아가 사냥을 하지 않아도 고기를 먹을 수 있다. 쌀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먹을 것을 준비하기 위하여 어떻게 살 것인가가 오늘의 현대 사람들의 고민이다.

먹을 것을 준비하기 위한 삶에서 인간들의 다양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성실하게 땀을 흘리며 일을 하지만, 어떤 사람은 남을 이용하여 땀을 흘리지 않으며 살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데 문제는 열심히 땀을 흘리며 살려는 사람들의 모임은 문제가 심각하지 않은데, 그 반대로 남을 이용하여 살려고 하는 데는 문제가 많다. 늘 그곳에는 거짓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이 만나면 이념과 사상의 대립이 있다. 즉 자존감과 자존심의 대립이다. 이것은 모든 사람이 동일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이것들이 충돌을 하면 싸움이며 전쟁이 되는 것이다.

모든 나라들이 하나가 될 수 있는 길은 한가지의 방법이외는 없다. 그것은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창조의 질서대로 사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보다 더 잘 알고 계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인간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형상을 닮도록 창조하셨다. 또한 하나님의 성품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은 죄로 인한 타락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떠나 가셨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하나님이 없다. 그래서 그들이 스스로 주인이다. 그러므로 서슴없이 자신이 만든 법을 아무한테나 적용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은 법과 법이 충돌을 하는 곳이다. 이와 같은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세상이기에 늘 긴장을 하여야 하고 평화가 없다.

그러나 예수님이 피 흘리시고 세우신 교회는 자기의 주장으로 사는 곳이 아니라, 주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아직 성숙하지 못한 교회에는 세상의 원리로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내가 생각을 주장하거나 다른 사람을 이용하는 곳이 아니며, 주님을 따라 섬기는 곳이다.

교회 안에서 싸움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아직도 내가 만든 법을 관철시키고 이웃을 법 아래로 들어오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훈련을 받는 것은 개인적인 가치의 기초를 다시 세우는 것이며,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은 하나님에게서만 온다는 것을 배우며 깨닫는 것이다. 한국교회는 성경을 지식으로만 또는 비법으로 이해하려는데 문제점이 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 1:27)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