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욥 6:10)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욥 6:10)


욥기 6장은 엘리바스의 점잖은 척하면서 하면서 정죄하는 것에 대한 격정적인 반박이다. 자신의 탄식하는 이유가 있고, 친구들의 무정한 태도에 깊은 배신감을 느낀다.


그 이유는 욥의 사정을 듣기보다는 자신의 판단으로 판단하여 정죄하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의 괴로움의 무게를 바다의 모래보다 무거울 것이라 한다. “바다의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 그러므로 나의 말이 경솔하였구나”(욥 6:3)


자신의 말이 경솔하고 거칠게 나갔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자신이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것은 전능자의 화살이 자신에게 박혔기 때문이라 말한다. “전능자의 화살이 내게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욥 6:4)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부수시고 끊어버리시기를 간구한다. 그러나 극심한 고통 가운데 위로를 얻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할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그칠 줄 모르는 고통 가운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하였음이라”(욥 6:10)


친구들의 배신에 대하여 물이 필요 없는 우기에는 개천에 넘쳐 흐르다가, 정작 목마른 건기에는 바짝 마르는 개울과 같다고 한다. “내 형제들은 개울과 같이 변덕스럽고 그들은 개울의 물살같이 지나가누나”(욥 6:15)


그러면서 친구들에게 자신의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보라고 한다. 즉 일반적인 훈계 말고 다른 증거를 대라는 것이다.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욥 6:24)


욥의 신앙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 하였다. 즉 육체가 부서지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대적하지 않았음을 말한다. 그에게는 택함 받은 백성 안에 있는 믿음의 생명력이 있다는 것이다. 


엘리바스는 신학적으로 체험적으로는 옳은 말을 했을지라도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 없음을 욥이 지적하고 있다.


욥의 훌륭한 신앙은 인간의 생사화복이 전능자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한다. 즉 하나님에게 모든 주권이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에 대하여 섣부른 추측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통 당하는 자의 삶의 무게를 들어주는 것이 믿음 있는 자의 태도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평소에는 좋은 친구였다가 상대방이 무너졌을 때에는 부담스러워 하거나 피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러한 사람은 예수의 사람이 아닙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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