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 4:7)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 4:7)


욥이 당하고 있는 고난에 친구들의 위로의 말이 전해진다. 그러나 욥의 고난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다.


이것에 대하여 사람의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체가 잘못임을 알고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여야 한다. 친구들 가운데 가장 연장자인 엘리바스가 욥에게 말한다.


엘리바스의 논리는 욥의 고난은 인과응보라는 것이다. 즉 욥이 여호와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인하여 나타난 결과라 한다. “내가 보건데 악을 밭 갈고 독을 뿌리는 자는 그대로 거두나니”(욥 4:8)


또한 욥이 이전에 사람들에게 여호와를 경외하라고 가르친 것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러한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을 한다. “보라 전에 네게 여러 사람을 훈계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를 강하게 하였고”(욥 4:3) 즉 신앙의 일관성이 없다고 나무란다.


그리고 자신이 신비한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은 천사들도 미련하게 여기시는데 하물며 인간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 깨끗할 수 있냐고 욥의 무죄 주장을 차단하고 있다.


개혁주의 신앙은 하나님의 주권을 믿으며 성경은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는다. 그러나 엘리바스는 자신의 생각과 주장으로 욥을 판단하고 있다. 즉 경험에 의한 신학은 하나님의 관대한 섭리를 이해하는데 오류를 범한다. 


그의 신학은 행위 구원론적(율법주의적) 사고가 됨으로써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의 자리를 없애 버리는 것이다.


사람이 의로울 수 없다는(전적 타락) 신학은 맞다. 이 신학을 하나님 앞에서 구원의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가야 하는데 이웃을 비판하는데 쓰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생각하여 보라 죄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욥 4:7)


즉 정답이 폭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엘리바스의 말이 원론적으로 맞을 지는 몰라도 고통 가운데 있는 자에게는 비수가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자신의 신앙적인 체험과 인생의 경험을 이웃에게 강요하지 마십시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하면서 자신의 경험이 하나님의 보편적인 법칙인 양 전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은 내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우리의 믿음을 정금같이 빚으십니다.

신앙은 인과응보의 결과가 아니라 십자가의 고난이라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만일 우리들에게 고난이 임하면 침묵의 시간과 말씀과 기도로 채워야 됩니다.

그러다 보면 믿음이 단단하여 주어 견디어내며 통과할 수 있습니다.

사람의 위로의 말을 들으려 하지 말고 모든 고난을 이기신 주님을 바라 보십시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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