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작금의 교회나 신자들의 상황을 보면 염려가 되는 상황이다. 행복한 삶은 물질에서 온다는 가치관으로 믿음의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이성이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산업화 사회 아래에 갇혀서 오히려 지배를 받게 되었다.
 
그래서 이성과 과학으로도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사고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생겼다. 그것을 포스트모던니즘이라 한다.
 
이성적인 사고에서 감성적인 사고로 바뀌었다. 책을 보면서 생각하려 하지 않고 영상물을 보면 그것을 받아들인다.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옳고 싫음으로 판단을 한다.
 
또한 어떠한 사고가 생기면 미래에 어떤 득과 실이 있는가를 살피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좋고 싫음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그리고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기중심으로 바뀌었다. 내가 좋으면 되고, 내가 하는 것이 옳고, 나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구속받으려는 것을 싫어하며,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는 진리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사고를 갖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다보니 진리와 미래지향적인 말씀 즉, 종말과 재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이러한 설교는 그들에게는 고리타분한 것이 된다.
 
그들을 만족하게 설교를 하여야 하기에 이성적인 설교보다는 감성적인 설교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설교 중에 감동적인 영상물이 등장한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라고 하는 설교에는 관심이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삶을 닮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다. 그래서 간섭이나 지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세상의 철학을 승리하였던 역사의 기록이 있다. 과거 그리스철학과 문명으로 무장하였던 로마의 정권을 무너뜨렸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통하여 지혜를 얻어야 한다.
 
작금의 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는 오직 성경 말씀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성령하나님은 설교를 은혜의 방편으로 허락하셨다. 그러기에 더 강력한 성령하나님의 역사하심을 간구하는 방법 이외에는 없다.
 
설교는 설득이나 이해가 아니라 선포이다. 삼위하나님의 사역을 전하고 선포하는 것이다. 이것을 인간의 방법으로 타협을 하면 성경적인 설교가 아닌 것이 된다.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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