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


우리가 전도를 할 때에 하나님을 소개한다. 그런데 그 때에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전하고 있는 하나님으로 소개를 하여야 한다.
 
하나님은 자신을 알게 하게 하기 위하여 계시를 사용하셨다. 즉 자신을 알게 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약속을 하시고 성취라는 방식을 쓰신 것이다.
 
약속과 성취라는 방식을 통하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 수 있게 하셨다. 더 나아가 백성들과도 같은 방식으로 약속과 성취라는 방식을 위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신뢰가 공동체에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하나님을 왕으로 섬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공동체 모두가 한 하나님을 믿게 되었음을 말한다.
 
이와 같은 역사적인 사실의 내용이 구약성경의 말씀이다. 그런데 이단들이나 교회 안에 있는 가라지들은 자기가 경험한 하나님을 전하고 있다. , 자기가 믿고 있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다.
 
작금의 상황은 하나님을 세상에 알리는데 그 내용이 다르다. 왜 그럴까?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대로 전하지 않고 자기의 경험과 생각으로 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단들이 쓰는 방식이 있다. 성경의 말씀이 딱 딱 맞아 떨어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사람의 이성으로 딱 딱 맞아 떨어진다면 성경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이해가 되는 책은 과학 책이다.
 
인간의 이성으로, 처녀가 아이를 낳은 것을 믿을 수 있는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이해할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다. 올바른 믿음은 성경의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다.
 
성경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것은 하나님 앞에 순복하는 자리로 나갈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매일매일 은혜를 구하러 나올 수밖에 없음을 아는 것이 믿음이다.
 
나는 주께서 네 심령에 함께 계시기를 바라노니 은혜가 너희와 함께 있을지어다”(딤후 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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