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성경에서의 사랑은 그리스도인을 구분하게 하고 구원의 모든 내용의 요약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그 원리는 하나이나 그 형태와 대상은 다양하다. 그러다보니 사랑을 이해하며 정리하기 위해서는 차분한 판단력이 필요하다. 사랑으로 그리스도인이 구분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오래 참음이라 한다. 왜 그러는가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저 습관적으로 사랑이라는 찬양을 하였지만, 오래 참음에 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다. 사도요한은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하였다. 사랑이신 하나님이 죄인들을 향하여 오래 참으셨다는 것이다.
죄인들은 이미 하나님이 계심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정하신 법칙을 역리로 사용하면서 거역하고 있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어 결혼을 하게 하였지만, 죄인들은 이 뜻을 거부하고 동성애를 즐기고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지금까지 참고 계신다는 것이다. 죄인들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신다. 그러니 사랑은 오래 참음이다. 오래 참음이란? 즉각적인 보복이 아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아니다. 악을 선으로 이기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성품이다. 이러한 성품으로 인하여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이 구분이 되는 것이다.
교회 안에도 성질이 고약한 사람들이 있다. 즉 오래 참음이 없는 사람들이다. 서투른 것이 눈에 보이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성질과 혈기를 부린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자신은 확끈한 사람이란다. 그리고 뒤 끝은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혈기 뒤에는 진심이든 가식이든 후회하는 말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이런 한 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자들이다. 그들이 알고 있는 사랑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사랑이다. 자기를 만족시키기 위하여 하는 사랑이다. 그러나 성경에서의 사랑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을 위한 사랑이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모르는 자를 미련한 자, 어리석은 자라고 한다. 어리석은 자가 깨달을 때까지 참으라는 것이다. 신자들의 온유한 성품을 통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라는 것이다.
오래 참음에 예수 그리스도가 본을 보이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행하여 마땅히 사형에 처할 자라고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래 참으셨다. 또한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라고도 하였다. 예수님은 기다리셨다. 저들이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까지 오래 참으셨다.
어리석은 자가 하나님을 알 때까지, 바보가 천재가 될 때까지 오래참고 기다려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아무나 보면 끌어안고 등 두드리는 것이 사랑이 아니다. 죄인이 자기의 잘못을 알고 깨달을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는 용사와 사랑이 있는 곳이다.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다. 오래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 앞으로 나와야 한다. 그러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
“사랑은 오래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고전 13;4)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