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불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신자의 삶은 고난이라 한다. 육체의 고난은 물론 영혼의 고난도 포함이 된다. 일반의 사람들은 육체의 삶이 편하면 정신적으로도 편할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세상의 물질로 영혼을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삶의 현장에서 부름을 받았다. 베드로는 고기배에 고기를 가득 잡았지만 모든 것을 내어 버리고 예수님을 좇았고, 마태도 세관원이라는 직업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그들이 부름을 받을 때에 세상의 풍요로움이 있었지만 아낌없이 버렸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아야 한다. 그러기 전에는 세상의 정욕을 버릴 수가 없다. 어리석은 자들은 세상의 것도 잡고 하나님의 것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자기의 고집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고집을 버리기 위하여 환난과 고난으로 몰고 가신다. 고난을 주지 않으면 신앙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녀들에게 공부를 하게끔 하기 위하여 체벌과 긴장감이 감돌게 한다. 그렇듯이 신자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것이 풍요롭고 근심거리가 없으면 하나님 앞에 나오지 않는다.
 
노아의 때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며 즐겁게 살았다. 그것은 사람들이 정한 즐거움과 기쁨으로 살았지만 결과는 물속에 잠기어 죽었다. 그런데 사람이 육체의 죽음으로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이 지옥에 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지막 때를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
 
하나님나라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고, 부요함이 있는 것을 깨닫게 하신다. 사람의 생각으로 살았던 사람이 탕자이다. 마음대로 소원 것 살았다. 그리고 처철한 고생을 했다. 그리고 깨달은 것이 있다. 내 아버지의 집에는 종들에게도 먹을 것이 풍요롭다는 것을 안 것이다.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아버지 앞에서 은혜로 우리의 필요한 것을 받을 것인가, 아니면 필요한 것을 내가 구할 것인가의 문제이다. 아버지를 붙잡게 하기 위하여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노아가 방주를 준비한 120년이라는 시간은 고난의 시간이었다.
 
산들바람이 불고 풀피리를 불면서 놀러 다니면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기억하고 준비하였다. 산꼭대기에서 방주를 만들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헛고생이었다. 그러나 약속의 때가 오자 기쁨의 시간을 맞이한 여덟 명이 있었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지금도 지옥에서 후회와 한탄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 시대에도 예수님을 따라 다녔지만 영원한 생명의 떡에 관한 말씀을 전하자 그 말씀이 어렵다고 하며 길을 돌이킨 자들이 있었다. 지금도 영원한 생명에 대한 믿음의 확신이 없다면 뜻을 돌이키는 것이다. 그래서 영원한 것에 대하여 소망과 확신을 심어주기 위하여 이 세상의 것을 통하여 시험과 고난을 주시는 것이다.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불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몇 명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벧전 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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