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 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


사람들이 겪고 있는 갈등의 속을 들여다보면 무언가에 대하여 쓸쓸함때문이다. 나를 위하여, 나에게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았는데 현실의 상황은 정반대의 결과가 나타남으로 인한 섭섭함이다. 이러한 이야기가 신문 지상에 가득차 있다.
 
간절한 사랑했던 이가 쓸쓸함을 느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생기고, 신뢰가 깨진 가족의 이야기가 실려 있고, 목사들 간에 생긴 분쟁의 이야기가 있다.
 
개인은 각 자의 개성을 갖고 있지만, 혼자 사는 것이 아니라 사회 공동체의 삶을 살아야 한다. 개인의 인격체를 세우기 위한 자존감, 자존심을 갖고 있다. 개인이라는 존재가 사람으로서의 가치를 지녀야 하고 또한 다른 이에게도 유익한 존재가 되기 위함이다.
 
그런데 특히 쓸쓸함을 많이 느끼거나 화를 자주 내는 사람들은 자기중심적인 자들이다. 모든 것이 자기 중심적으로 되어 가야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주인공이 되어야 하고 내 목소리가 커야 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귄위에 대한 순종이다. 부모의 명령에 순복하는 것이다. 부모가 어린 아이를 훈계할 때에 하라'말라를 가르친다. 아직 이성적인 판단이 없을 때이다. 이것은 누구의 명령을 받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 어린아이 시절 때에 배우게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이, 이 권위를 하나님이 부모에게 주었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권위에 대한 순종이 없으면 하나님을 섬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귄위에 대하여 배움이 있어야 한다.
 
권위에 대하여 배움이 있으면, 나라는 존재가 어떠한 존재인지를 알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그리고 사람이 어떠한 존재를 인지를 알 수 있다. 그렇게 되면 그 쓸쓸함에 대하여를 해결할 수 있다.
 
사람이 사람을 만족시킬 수 없다. 부패한 성품에서 나오는 것은 온전하지 않다. 오직 선하신 하나님만이 인간을 선하게 하고 의롭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순복하는 것은 선과 의로움을 은혜로 받기 위함이다. 이것은 인간들이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신자의 머리는 그리스도라 한다. 신자 위에 그리스도가 계심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신자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순종하는 자라는 뜻이다. 그런데 신자들 가운데도 심지어는 목사들 가운데도 자기의 생각과 고집으로 생각하며 행동하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에서는 개인의 힘이나,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나라가 되는 것이요, 하나님의 통치가 시행되고 있는 것이다.
 
논쟁하려는 생각을 가진 자가 있을 지라도 우리에게나 하나님의 모든 교회에는 이런 관례가 없느니라”(고전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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