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013의 게시물 표시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대한민국에 아파트가 850 만 채가 있다고 한다 . 그리고 전체 아파트 관리비 1년 예산이 무려 12 조원이라 한다 . 그런데 70~80% 가 부정비리에 관련이 있어 주민들과 관리 사무소 간에 분쟁 중에 있다는 보도가 있었다 . 그러다보니 아파트에는 정의가 없다고 한다 .   고치지 않아도 될 것을 고치고 , 만일 고치게 되면 비싼 값을 주고 고친다는 것이다 . 그리고 뒷돈을 받은 상태라고 한다 . 그런 반면에 모든 사업 계획을 투명하게 하는 곳은 문제가 없다고 한다 .   교회 일도 마찬가지이다 . 목사가 재정을 마음대로 다루다가 보면 문제가 생긴다 . 부정에 의한 문제일 수도 있고 , 오해에서 발생한 문제이다 . 그래서 회계 장부를 모두가 볼 수 있도록 오픈한 교회도 있다 .   교회의 일은 투명해야 한다 . 우선 사업 계획이 모든 교인들이 알 수 있도록 광고를 하여야 하고 , 기도로 준비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 그래야 시시비가 없다 . 그런 반면에 목사의 갑작스런 통보나 전횡으로 인하여 생기는 문제도 만만치 않다 .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자를 찾고 계시다 . 하나님은 사랑과 공의와 정의를 땅에 행하시는 분이라는 것을 아는 자이다 . 그러니 신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하나님의 사랑으로 공의와 정의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 그래야 거룩함이 세워질 수 있다 .   교회 일을 하면서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함이 여기에 있다 . 교회의 모든 일은 투명하면 된다 . 계획하는 일 ,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 교회 일을 하면서 밀실에서 만날 필요가 없다 . 은밀하게 회의를 해야 할 이유가 없다 .   담임목사는 주간 별로 , 월 별로 계획을 세워 주보를 통하여 알려야 한다 . 그리고 담임목사 동정 란을 만들어 모든 교인이 활동 상황을 알아야 한다 . 교인들도 마찬가지이다 . 예배에 참석을 못하게 되면 그 이유를 알려야 한다 . 그리고 여행을 갈 때...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교회를 생명체에 비유를 하여 생명이 넘치거나 썩은 것으로 표현한다 . 교회가 썩었다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마치 물을 가둔 호수와 같기 때문이다 . 빗물이나 샘물이 솟아오르지만 나갈 수 있는 출구가 없다 . 많은 물을 가두어서 풍부할 것 같지만 오히려 썩는 현상이 나타난다 .   오늘날 교회가 이와 같은 모양으로 변했다 . 교인들의 헌금과 심지어는 기부금까지도 받고 있다 . 교회는 축복의 통로이다 . 물이 흐르듯 복이 흐르게 하여야 한다 . 그런데 받는 데는 익숙하지만 주는 데는 아주 인색하다 . 신자들의 믿음과는 상관이 없이 무조건 많이만 내면 대우를 받는 곳으로 변했다 .   성경 말씀에 받는 자보다 주는 자가 더 복된다고 하였다 . 그런데 교회가 이 기능을 잃어버렸다 . 교회에 쌓이는 물질로 자기 몸집 불리는데 힘을 쓰고 있다 . 그러다보니 교인들도 실망을 하고 세상도 비판을 한다 .   교회는 사랑을 전하고 퍼주는 곳이다 . 조건 없이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는 곳이 되어야 한다 . 가난한 고아나 과부를 우선 돌보아야 한다 . 그런데 주기는 주는데 조건을 붙이고 따지기 시작하였다 .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중단할 수밖에 없는 학생들을 돌보아야 한다 .   사랑을 준다는 명목 하에 투자를 하고 있다 . 교회 돈으로 장학금을 주고 있다 . 우선 일간지 지면에 대대적인 광고를 한다 . 장학금 신청 광고를 내는 비용도 만만치 않은 액수이다 . 공부 잘하는 학생을 선발하기 위하여 성적증명서를 보내라고 한다 . 좀 속보이는 짓을 하고 있다 .   또한 좋은 일을 하면서 생색을 내자는 것이다 . 교회 이름과 목사의 이름도 알리자는 욕심이다 .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실 때에 자신을 기쁘게 하거나 자랑을 하기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다 . 죄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십자가에 죽으셨다 . 그러니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랑을 안다면 교회의 개인을 위한 자랑이 될 수가 없다 . ...

선지자의 이름으로 선지자를 영접하는 자는 선지자의 상을 받을 것이요 의인의 이름으로 의인을 영접하는 자는 의인의 상을 받을 것이요

목회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 그러다보니 다양한 인격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 만남이야 어떠하든 간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올바른 믿음을 알도록 인도하는 일을 한다 . 목사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여러 가지 질문을 한다 . 그 가운데에 목사를 어떻게 대우 또는 대접을 하는가에 할 이야기가 많은 것 같다 .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몸가짐과 제자로서의 태도를 당당히 분부하셨다 . 그리고 제자들을 맞이하는 자들의 태도에 대하여 자세히 말씀하셨다 . 그러니 신자들도 예수님이 하신 말씀을 잘 살피고 따르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 목사를 위함이 아니라 신자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   신자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 세움을 받은 목사를 대하는 태도에 따라 상급이 결정지어 진다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는 자를 영접하는 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것이 된다 . 선지자의 이름으로 영접을 하면 선지자의 상을 받는다고 한다 .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권위를 입은 자들이다 . 그러니 목사가 전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권위 말씀이요 , 거룩하신 일에 동의하며 동참을 하는 믿음의 자세를 취하여야 한다 . 그래야 선지자의 상이 임한다는 것이다 .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들은 대로 행하는 자를 의인이라 한다 . 다니엘과 같은 사람이다 . 이런 신자에게는 의인의 상을 받게 된다고 하셨다 . 그리고 제자들에게 냉수를 대접하면 예수 그리스도에게 냉수를 대접한 것이 된다고 하셨다 .   그러니 자기의 주관적인 생각으로 판단하려 하지 말고 성경의 말씀으로 판단을 하여야 한다 . 목사를 어떤 믿음의 자세로 대하는가에 따라서 상급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   목사를 편리함에 따라 사용하려 하고 이용하려 하면 안 된다 . 즉 형식과 요식행위를 갖추기 위함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 목사를 대하는 태도 속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의 분량이 나타난다 . 목사...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지니라 하라

어느 철학자가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하였다 . 사람은 혼자서는 살 수 없고 더불어 살아야 한다 . 혼자 살 수 있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사람이 태어 날 때나 다시 흙으로 돌아갈 때를 보면 쉽게 이해된다 . 누구의 도움을 받아야 태어날 수 있고 , 흙으로 돌아갈 때도 누군가가 흙으로 덮어 주어야 한다 .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이다 . 남자가 태어나서 세상을 떠나기까지 약 천명 정로의 사람을 가까이 한다는 것이다 . 그런데 이 관계가 오래 지속되기 위해서는 경조사에 서로 도움을 줄 때에 가능하다고 하였다 . 오고 가는 것이 없으면 친밀한 관계가 지속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   믿음의 공동체인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라고 고백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다 . 그분은 그들의 주인이 되시기에 일꾼으로 부름을 받은 자들이다 . 그래서 부름을 받은 자들끼리는 형제라 하고 , 자매라고 한다 . 그러다보니 교회 안에서는 쉽게 자연스럽게 친밀한 교제를 이룰 수 있다 .   목회자는 부르는 곳을 향하여 가는 자들이다 . 이곳 감자골은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오게 되었다 . 처음에 이곳에 부임하였을 때에 나이가 지긋하신 어른들만 열분 정도가 계셨다 . 청장년이나 어린 아이는 보이지 않았다 .   한 주가 지난 주일에 아이들을 안고 손을 잡고 부부가 들어 왔다 . 이곳에 새로운 직장을 얻어 한국에서 온 가족이었다 . 목사가 혼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알아서 척척해 주었다 . 그리고 주일학교 , 한글학교 , 방송실 , 교회웹사이트가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되었다 . 한글학교는 이 지역에서도 소문이 날 정도로 발전을 하였다 .   그런데 집사님이 오늘 예배를 드리고 LA 로 이주를 하게 되었다 . 이미 한 달 전에 이주 소식을 접하였지만 많이 섭섭하였다 . 목사에게 커다란 힘이 되었고 동역자이었기 때문이다 . 또한 교회 봉사와 헌금도 분에 과하도록 하였다 ...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심은 정치 , 경제적인 형통함이 아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번영의 메시야를 기다렸다 . 그와 같은 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내가 화평을 주러 온 것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고 하셨다 . 검을 주러 왔다는 것은 불의를 정복하고 악을 제거하는 투쟁이다 .   검이라는 것은 길이가 짧은 것으로서 적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치명적인 급소를 찌를 때에 사용되는 무기이다 . 예수님이 오셔서 세워질 나라에 대하여 세상이 거센 반발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할 수 있다 . 십자가의 승리하셔서 죄악된 질서를 제거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말한다 .   그래서 지상에 세워진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라 한다 . 신자가 되었는데 영적인 전투가 없다면 곤란하다 . 즉 승리를 맛 볼 수 없다 . 어찌 전투를 하지 않고도 승리를 할 수 없는 것이다 . 신자의 기도의 내용은 전투가 없는 하루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 하루를 시작하는 기도의 내용이다 . 전투는 주님이 다 알아서 하시고 나면 나는 그 뒤를 따라 가겠다는 것이다 .   주님께서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한다 . 그러니 신자들은 검을 쥔 자들이다 . 죄악된 질서를 제거하고 거룩한 나라의 거룩한 법을 세우는 일을 하여야 한다 . 세상이라 함은 어두움을 말한다 . 어두움 속에 있을 때에는 방향이 없는 삶을 살았다 . 방탕에 방임하여 욕심으로 인하여 우상을 섬기고 육체의 정욕을 위하여 살았던 것을 말한다 .   그러나 빛으로 오신 예수님 안으로 들어옴으로 인하여 더 이상 어두움의 자식이 아니다 . 어두움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에 검을 사용하여야 한다 . 검은 나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사용하는 무기이다 . 그런데 검을 손에 쥐고 있지만 사용법을 모르면 오히려 적에게 농락을 당한다 .   신자들이 세상에서의 삶은 죄의 유혹에 시달리고 있다 . 이 죄의 유혹을 검으로 잘라야 한다 . 죄의 유혹이 신자에게 가까이 오면 실족하게...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하니

신자라면 핍박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 그런데 핍박이라는 상황을 너무 확대하려는 것 같다 . 생각 속에 상황은 복음을 전하는 현장이어야 하고 정치적이나 종교적으로 억압을 당하고 있다 . 그러나 핍박이라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는 것 가운데도 있다 .   예수를 믿는데 있어서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이 정치의 상황이나 국가의 제도가 아니다 . 오히려 가까이에 있는 가족이나 친지 그리고 친구들이다 . 대를 이어 믿던 종교를 버리고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핍박과 고난을 감수하여야 한다 .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메시야로 믿고 십자가의 도를 따를 때에 핍박을 하였던 자들이 있었다 . 그들은 다름이 아닌 가족과 유대인들이었다 . 가족에게 쫓겨난다는 것은 호적에 있는 기록을 지우므로 인하여 더 이상 가족이 아니라는 것이다 . 그리고 유대사회에서는 출교를 당하였다 . 즉 사회활동과 경제활동을 마비시키겠다는 의도이다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고 당하는 고통이 가족들의 반발이다 . 또한 남편과 아내와의 갈등이다 .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믿음과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성경말씀 속에 있는 답은 그래도 예수님을 사랑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 그리고 핍박을 선한 행실로 이기라 한다 . 말로 구원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 선한 행실로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증거하라는 것이다 . 선한 행실 속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에 대한 순종과 두려움을 나타내어야 한다 .   신자는 착한 행실로 핍박을 주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 고난과 핍박의 현장에서도 기도와 찬송을 하여야 한다 .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 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 바울이 찬송과 기도를 드리자 옥문이 터졌다 . 이 상황에서 더 놀란 사람이 바울을 지키던 간수였다 . 그는 자결하려 하였다 . 오히려 바울이 그를 위로 하였다 . 창과 채찍을 쥐고 있던 자가 부끄러움을 느꼈다 . ...

훔치지 말고 오히려 모든 참된 신실성을 나타내게 하라 이는 번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신자들을 만나다 보면 하나님 앞에서 교만함이 이루 말할 수가 없을 때가 있다 . 성경전체를 몇 번 읽은 자나 성경공부 또는 제자훈련과정을 이수한 자들이다 . 그 당당함은 누구를 만나도 똑같다 . 그러면서 하는 말이 요즘 목사들은 성경을 읽지 않는다고 한다 . 또 성경에 관한 문제나 믿음의 문제에 의견이 갈라지면 성경공부과정을 이수한 사람이라며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   성경을 올바로 해석하여 읽게 되면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 올바른 교역자에게 바른 말씀 교육을 받았다면 그럴 수가 없다 . 성경말씀을 보면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기 위하여 착한 행실로 나타내라는 것이다 .   이 말씀은 지적인 것을 자랑하라는 것이 아니라 , 그 말씀에 순종하며 살고 있는 모습을 보여 주라함이다 . 신자의 착한 행실이 하나님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것을 알리라는 것이다 . 도적질을 멈추는 것만이 아니라 , 더 나아가 손으로 수고하여 남을 도와주는 자리까지 가야 한다 .   성경을 여러 번 읽고 성경공부를 많이 하였으면 더 낮은 자리 , 더 깊은 곳으로 가서 섬기는 자의 모습이 나타나야 한다 . 교회 안에서 목사를 괴롭히고 골탕을 먹이는 자들 대부분이 성경지식이 있다고 하는 자들이다 . 입만 열면 비판이다 . 그리고 목사를 가르치려 한다 . 그리고 만일 자기의 뜻대로 따르지 않으면 실력이 없는 목사로 몰아간다 .   그런데 이것도 옛날이야기이다 . 이제는 아예 성경을 읽지도 않는다 . 목사가 성경에 없는 이야기를 해도 아멘이라 하는 시대가 되었다 . 성경말씀에도 흥미가 없다 . 그러니 기독교 교양 강좌나 윤리 도덕이야기로 강단을 채우고 있다 .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증거하는 목사는 미련하고 센스가 없는 목사가 되었다 .   하나님의 뜻을 아는 자는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고 다시 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가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시대의 흐름이 진짜보다는 가짜가 판을 치는 시대이다 . 짝퉁이 진품보다 더 진짜처럼 보인다 .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거룩한 소식을 전하는 복음에도 같은 현상이다 . 그런데 여기에도 가짜가 너무 많다가 보니 ‘ 순복음 ‘ 이라는 단어가 등장을 한 것이다 .   이제는 참기름도 순참기름이라 하여야 참기름으로 인정을 받는다 . 그렇다면 이름만 좋으면 진짜냐는 것이다 . 이름은 참기름이지만 그 안에는 콩기름과 깻묵 찌꺼기로 채워져 있다 . 그러니 상품성이 있기 위하여 속은 가짜이지만 겉은 진짜처럼 꾸민 것이다 .   이와 같은 현상은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성직자 , 정치가 , 인권운동가들에게도 나타나고 있다 . 보수주의 사상을 갖고 있지는 않지만 보수층의 표가 많으면 보수주의자인 것처럼 행세를 한다는 것이다 . 나의 자존감이나 사고의 가치는 진보가 아닌데 젊은 층을 끌어 앉기 위해서는 진보주의자인 것처럼 보여야 한다 .   가짜가 판을 치다가 보면 피해와 손해는 소비자들이 고스난이 당한다 . 엉터리 목사들이 설치게 되면 신자들이 멍들게 된다 . 오죽하면 양복을 입은 무당이라 하겠는가 , 그 만큼 엉터리가 많다는 것이다 .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다 .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고 하였다 . 즉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라는 것이다 . 그러니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전하면 그 자체가 복음이 된다 .   많은 신자들이 목사가 복을 주는 자라고 생각을 하고 있다 . 목사는 하나님의 복을 전하는 복의 통로자이다 . 목사를 통하여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도록 힘쓰고 애쓰는 자들이다 . 그런데 가짜들은 마치 자기가 복을 주는 것처럼 행세를 하고 있다 .   그리고 하나님의 복에 대하여는 성경에 이미 기록이 되어 있다 .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 말씀 자체에 능력이 있어서 말씀하시고 약속하신대로 이루시는 능력이 있다 . 그러니 심령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