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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왕하 9:6) 왕하 9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는다. 그를 왕으로 세우는 목적은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왕하 9:7) 아합 집안에 속한 모든 남자를 다 멸절시키겠다는 것이다. 이 말씀 역시도 선지자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셨었다. “너는 또 님시의 아들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이 되게 하고 또 아벨므홀라 사밧의 아들 엘리사에게 기름을 부어 너를 대신하여 선지자가 되게 하라”(왕상 19:16).   이스라엘의 왕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을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 21:19) 하나님께서 죄악을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왕하 9:24). 아합이 나봇에게 행한 대로 그대로 심판을 하신다. 그래서 심은 대로 거둔다는 법칙이 적용된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왕하 9:26). 이세벨도 죽음을 당하는데 창문 밖으로 몸이 내 내려던져서 죽는다.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도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왕하 9:33)...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비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비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왕하 8:12) 본문에서는 엘리사가 아람 사람 하사엘에게 안수를 한다. 이것은 이미 여호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엘리사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하사엘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하며 울고 있다. “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왕하 8:11) 왜 울고 있는 것일까요? 이스라엘의 심판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하사엘의 칼에 죽고, 예후에 칼에 죽는다. 그리고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는 엘리사가 죽인다는 것이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는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는 엘리사가 죽이리라”(왕상 19:17).   하사엘의 칼을 통하여 백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예후의 칼에 의하여 오므리 왕조가 죽음으로 막을 내린다. 그리고 엘리사가 죽인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심판을 받는다 함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데 이웃 나라들을 사용하신다. 죄악에 대한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눈으로 볼 수 있다. 어린 아이와 아이를 밴 부녀도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징계가 일어나도 이스라엘은 회계하지 않고 계속해서 여로보암의 길을 간다. 더 나아가 이방 나라의 신을 들여와 우상숭배까지 하는 범죄를 계속 범하고 있다. 죄악이 이렇게 무서운 것이다. 귀로 들으면서 눈으로 보면서도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는다. 이러한 죄인들을 구원하시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시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도 순종할 수 있는 것도 성령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확인하고 수 없이 많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도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을 우리 주변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사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 한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고 보리 두 스아를 한 세겔로 매매하리라 하셨느니라”(왕하 7:1) 지금 이스라엘은 먹을 것이 없어서 자기가 낳은 자식을 삶아 먹는 처지에 있다. 이때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 명령을 한다.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밀가루와 보리를 평소의 가격보다 싸게 팔 것이다. 즉 1/5 가격에 판매될 것이라 알렸다. 그러자 왕의 신하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을 한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늘에 창을 내셔도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냐는 것이다. 엘리사가 대답하기를 이 일 있는데 너는 먹지 못하리라 하였다. 아람 군대가 사마리아 성을 둘러 진치고 있다. 그때에 나병 환자 네 사람이 먹을 것이 없어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을 하자하고 진영으로 다가 갔다. 그런데 진영에 아람 사람은 한 사람도 없고 빈 장막만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도우시는 장면이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러 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그들을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왕하 7:6) 그래서 그들이 진영으로 들어가 먹고 마시고 은과 금과 의복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이 기쁜 소식을 한 밤 중에 성읍 문지기에게 알린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정탐꾼을 보내어 확인을 한다. 정탐꾼들이 가서 본즉 나병환자들이 말 한 것과 같았다. 그래서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영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가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왕하 7:16), 여호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을 조롱하였던 왕의 신하는 그날 먹지 못하고 백성들에게 밟혀 죽었다.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

  “그 때에 주께서 의로운 제사와 번제와 온전한 번제를 기뻐하시리니 그 때에 그들이 수소를 주의 제단에 드리리이다”(시 51:19)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다. 그것은 범죄자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방식이다.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 51:13). 즉 온전한 제사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온전한 제사는 제물이 온전하여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드리는 것을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는 제물은 열심히 드렸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드리지 못한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다. 그런데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이 좋아 하시며 기뻐하게 드려야 한다. 온전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는 성전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앞으로 나가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는 하나님이 계신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범죄한 것들을 용서를 받아야 한다. 죄 용서를 받을 수 있게끔 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대제사장이 되신다. 그리고 제물은 영원하고 흠이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된다. 이렇게 예배를 드려야 한다.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하나님이 찾고 계신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데 있어서 우리들의 생각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살핀 후에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원하시는 예배는 나의 정성이나 열심으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들으시고 그 말씀과 뜻을 따라 순종하셔야 합니다. 왜 시편 51편에서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17절) 라고 말씀하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그 말씀대로 행하지 못함을 안타깝게 생각하셔야 ...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 51:17) 하나님은 제사를 통하여 택한 백성들을 만나신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사건을 통하여 주의 도를 깨달은 것이다. 그가 깊은 고통에 있을 때에 구원의 은혜를 주시면 범죄자들에게 전하겠다고 하였다. “그리하면 내가 범죄자에게 주의 도를 가르치리니 죄인들이 주께 돌아오리이다”(시 51:13) 다윗은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 제사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사울에게 이르기를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삼상 15:22) 하나님께서 사울에게 명령하시기를 아말렉 사람과 가축까지 진멸하라 하셨다. 그러나 하찮은 것은 죽이고 아말렉 왕과 좋은 가축은 진멸하지 않았다. 사울과 백성들의 생각에는 좋은 제물을 드리면 하나님이 좋아 하실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좋은 제물을 드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더 좋아하신다. 다윗 역시도 좋은 제물을 가지고 나아갔지만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상한 심령이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나와 같은 죄인은 하나님 앞에 감히 설 수 없는 존재인 것을 깨닫는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제물을 들고 나오는데 자기 자랑으로 나옴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도 않으면서도 좋은 제물을 들고 나옴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당당히 나온다는 것이다. 상한 심령으로 드리는 제사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 5:3),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하나님의 것을 구하고 위로를 구하는 먹을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와 위로를 받는 것을 생각하지 않고 자기 자랑을 하려 제사를 드리러 나온다.   온전한 제사는 온전한 제물과 하나...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보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보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요 3:31) 믿음과 확률을 이해 한다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많은 사람들이 확률을 믿음이라 한다. 나는 이 조종사를 믿기 때문에 비행기를 탄다고 한다. 이와 같은 논리로 하나님을 믿는 것은 믿음이 아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구원의 내용 구원의 약속을 믿는 것이 믿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죄인을 구원하셔서 의인을 만드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실수가 없으신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는다. 그런데 사람이 하는 일은 완전하지가 않다. 언젠가는 사고가 난다. 완전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의인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을 수밖에 없다.   왜 그런가 이미 죄인에서 의인이 되었기 때문이다. 의인은 하나님 안에서 생명을 얻었다. 그래서 그분의 손짓과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가 있고 또한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도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의 영생을 얻지 못한 자는 진노의 그늘 아래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망으로 행하는 일만을 행한다.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진노가 머물러 있는 자들의 현상이 있습니다.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가,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롬 1:2...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

  “왕이 이르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를 잡으리라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보라 그가 도단에 있도다 하나이다”(왕하 6:13) 왕하 6장에서는 선지생도가 나무를 베다가 도끼가 물에 빠지자 선지자 엘리사가 건져 주는데 이것은 사소한 일에도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함을 보여 주신다. 즉 일상의 삶에서도 함께 하여주신다는 것이다. 아람 왕이 이스라엘을 침공하지만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미리 알려 줌으로 매번 패한다. 그래서 아람 왕이 하나님의 사람과 전쟁을 선포한다.   아람의 군대가 도단에 이르렀을 때에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사마리아 성으로 오게 한다. 그들이 눈을 떴을 때에 이스라엘 왕은 죽이려 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그들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먹을   것을 주어 돌려   보낸다. 엘리사가 우리에게 보여준 행위는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롬 12:20) 함과 같다. 이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사마리아를 에워쌌을 때에 굶주린 여인들이 호소를 들은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죽이려 한다. 이와 같은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데 엘리사가 막아 주지 않는다는 불만에서이다. 이스라엘 왕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이 없다. 그래서 내려지는 징계를 오히려 선지자 엘리사에에 책임을 돌린다. 이것은 죄의 특성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스라엘의 재앙은 왕과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지 않음에 있습니다. 그러나 왕은 오히려 그 책임을 선지자 엘리사에게로 돌립니다. 왜냐하면 그 재앙을 막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죄는 자신이 범하였는데 그 책임은 남에게 돌리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은 아주 사소한 일에도 함께 하심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약속하신 말씀대로 적군이 한길로 치러 왔다가 일곱 길로 도망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