층대 위에 선 온유함과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행 21:40)
층대 위에 선 온유함과 성령 안에서 세워지는 하나님 나라(행 21:40)
“천부장이 허락하거늘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백성에게 손짓하여 매우 조용히 한 후에 히브리 말로 말하니라”(행 21:40)
바울이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설교자로 섰다. 무엇을 들고 섰을까? 복음을 맡은 전도자의 거룩한 신앙 인격으로 선 것이다.
자신을 죽이려 돌을 던지고 폭력을 행하였던 자들을 용서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저들을 마주한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자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고난과 수난을 당하실 때에 악행하는 자들을 용서하여 주셨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24)
또한 스데반 집사도 유대인들에게 돌에 맞아 죽으면서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 하였다.
이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저들이 하나님의 일을 알지 못해 저지르는 무지임을 알기에,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않고 구원의 기회를 전하는 것이다.“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간과 하셨거니와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에게 다 명하사 회개하라 하셨으니”(행 17:30)
그러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고의적으로 반항하는 자들이 있다. 이러한 자들에게는 마지막 날에 심판의 자리에 서게 된다.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에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하니라”(행 17:31)
신자들은 하나님을 아는 인격자들이다. 인격이신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인격적인 순종과 사랑을 이루어 가는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복음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의 공격 앞에서도 원한을 품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품은 성숙한 인격으로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흘려보내는 것이 참된 전도이자 선교이다.
그래서 주님의 교회가 드러내야 하는 것들이 있다. 사람들이 모여 있지만 성령 안에 있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외적인 것에 이유와 조건이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롬 14:17)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음식을 먹으며 자랑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그러나 음식으로는 공동체를 아름답게 평화롭게 할 수 없습니다.
“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음식으로써 할 것이 아니니 음식으로 말미암아 행한 자는 유익을 얻지 못하였느니라”(히 13:9)
세상의 헛된 교훈이나 다른 기준에 흔들리지 말고 오직 십자가의 은혜로 마음을 굳건히 하여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생명력을 세상에 증거하여야 합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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