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능자와의 다툼을 멈추고 구원의 오른손을 바라보라(욥 40:2)
전능자와의 다툼을 멈추고 구원의 오른손을 바라보라(욥 40:2)
“트집 잡는 자가 전능자와 다투겠느냐 하나님을 탓하는 자는 대답할지니라”(욥 40:2)
폭풍우 가운데 강림하신 하나님의 압도적인 질문이 이어지고 있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인간의 가장 깊은 교만을 다루고 있다.
오직 창조주만이 통제할 수 있는 거대한 짐승 ‘베헤못(Behemoth)’을 등장시킨다. “이제 소같이 풀을 먹는 베헤못을 볼지어다 내가 너를 지은 것같이 그것도 지었느니라”(욥 40:15)
하나님은 욥의 불평에 쐐기를 박으시며,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와 하나님의 압도적인 통치권을 보여 주시므로, 욥은 자신이 더 이상 하나님께 따져 묻거나 변론할 자격이 없는 티끌 같은 존재임을 인정하고 침묵을 선언한다.
만일 욥이 하나님처럼 우레 소리를 내며, 세상의 교만한 자를 낮추고 악인을 짓밟을 능력이 있다면, 그때에는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인정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하면 네 오른손이 너를 구원할 수 있다고 내가 인정하리라”(욥 40:14)
욥의 잘못은 무엇인가? 자신의 결백(의로움)을 증명하는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은연 중에 ‘내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은 부당하시다’고 선을 넘은 것이다.
자신의 의를 내세우는 순간,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하고 그분을 불의한 분으로 만들게 된다. 구원은 나의 의로움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불의함을 십자가 앞에 온전히 인정하는 데서 시작이 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이 땅의 그 어떤 도덕적 영웅(욥을 포함하여)도 자신의 오른손(행위와 능력)으로 구원에 이를 수 없으며, 오직 밖으로부터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완전한 의만이 우리를 구원할 수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인간의 힘으로는 베헤못을 통제할 수 없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 그것을 다스리심을 깨닫게 하는 것이다. 즉 고난이라는 것도 하나님께서만이 해결하실 수 있음을 말한다.
예수님의 말씀에서도 바리새인과 세리의 비유하셨다. 마치 욥이 “나는 비천하오니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욥 40:4) 이것은 “세리는 멀리 서서 김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눅 18:13) 자신의 불의함을 고백한 세리가 예수님으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선포하셨다.
반면에 자신의 의를 세우기 위하여 하나님을 악하다고 하였다. ”네가 내 공의를 부인하려느냐 네 의를 세우려고 나를 악하다 하겠느냐“(욥 40:8) 이것은 예수님께서 질책한 바리새인들의 행위와 같은 것이다(눅 18: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우리들의 오른손으로 스스로 구원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죄악과 사망 가운데 있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새롭게 창조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마 19:26).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한 오른손이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져내셨음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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