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죽 줄 앞의 거룩한 지혜와 참된 주인을 따르는 순종(행 22:25)
가죽 줄 앞의 거룩한 지혜와 참된 주인을 따르는 순종(행 22:25)
“가죽 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서 있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시민 된 자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채찍질 할 수 있느냐 하니”(행 22:25)
바울이 층대 위에 서서 히브리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에 대하여 증언하였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주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 설교를 들은 유대인들은 떠들며 옷을 벗어 던지고 티끌을 공중에 날리며 거센 항의를 하욨다. “이 말하는 것까지 그들이 듣다가 소리 질러 이르되 이러한 자는 세상에서 없에 버리자 살려 둘 자가 아니라 하여”(행 22:22)
이에 천부장이 바울을 영내로 데려다가 채찍질하며 심문을 하려 한다. 그 때에 바울이 자신이 로마 시민권자임을 알린다.
바울은 개죽음을 당할까 하여 시민권을 사용한다. 이것을 지혜와 분별이라 한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보내시면서 이렇게 당부하셨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
예수님은 바울을 택하여 이방의 왕이 있는 곳까지 가야 한다. 그러므로 주의 성령이 늘 함께 하시므로 위기를 맞이 하였을 때에 필요한 말을 입에 넣어 주신다.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눅 12:12)
성령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함은, 신비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우리를 통하여 이루는 것이다. 즉 신비적으로 일을 이루신다고 생각하지 말라 함이다.
바른 신학이 아닌 다른 교훈은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면, 성령이 안에서 조종을 한다고 가르친다. 이렇게 되면 신비주의가 된다. 이러한 상태에서 범죄를 하면 당당하게 하나님의 뜻이라고 뻔뻔하게 우긴다.
이러한 주장은 틀린 것이다. 그렇다면 바른 신학은 무엇인가? 주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면 내 안에 주인이 바뀐다. 그래서 더 이상 자신의 주장이나 생각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으로 사는 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은 몸이 성한 사람이 아니므로 그가 당하는 고통과 환난으로 충분히 포기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모진 고난과 고통을 당하면서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자신의 주인의 뜻을 이루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주인의 뜻과 생각으로 바뀌어 순종의 길을 가고 있습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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