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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히 11:6) 성경적인 믿음에 대한 정의를 올바로 갖지 못하게 되면 큰일이다. 왜 그런가 하면 율법주의자가 되고 우상숭배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1절에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라 한다. 무슨 말인가 하면 보이지 않는 것들인데 그렇게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히 11:2). 믿음이 선진들이 이러한 믿음을 가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 이것에 대한 예로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이 지시는 하는 땅으로 이주를 한다.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 너를 통하여 민족을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또한 아브라함은 이삭을 제물로 드리기 전에 부활을 믿었다.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을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을 것이니라”(히 11:19). 더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믿었다는 것이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10) 노아에게는 무엇을 말씀하셨는가? 말씀하시기를 백 이십 년 후에 홍수가 있을 것이라 하셨다. 그래서 화창하고 볕이 쬐는 날에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었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계획과 통치를 따르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통치 안에 들어온 자를 의인이라 한다. 그러므로 의인은 언제나 하나님이 하시면 옳은 일이며 진리가 되심을 믿는다. 그러니깐 은혜라 함은 나에게는 원인과 결과가 없는데 전적인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원인이 되시어 은혜와 긍휼의 통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믿음이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금은 노아의 때와 같다는 것이다. 노아가 물의 심판을 준비하였듯이 장차 불심판이 있다. 하나님이 하시는 계획과 일...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

  “다윗의 시대에 해를 거듭하여 삼 년 기근이 있으므로 다윗이 여호와 앞에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이는 사울과 피를 흘린 그의 집으로 말미암음이니 그가 기브온 사람을 죽였음이니라 하시니라”(삼하 21:1) 다윗이 왕 위에 있을 때에 삼 년 동안 기근이 있었다. 이스라엘에 기근이 있다고 함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하여 징계를 받을 때이다. 그 이유는 사울이 왕으로 있을 때에 기브온 사람들을 죽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기브온 족속은 여호수아와 화친을 맺어서 그 땅에 살고 있었다.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에게 맹세하였더라”(수 9:15). 즉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울은 기브온 사람들을 죽이거나 쫓아내어서는 안 된다. 그 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땅에 징계를 내리신 것이다. 그래서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죄하기 위하여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묻는다. 그들의 대답은 사울의 자손 가운데 일곱을 내어 놓으라 한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은금으로 해결될 것이 아니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일부러 죽인 자에게는 반드시 죽이라 하셨기 때문이다. “고의로 살인죄를 번한 살인자는 생명의 속전을 받지 말고 반드시 즉일 것이며”(민 35:31). 그리하여 사울의 첩과 사울의 딸에게서 난 아들들을 목을 매달아 죽였다. 그러자 삼 년 동안 있었던 기근이 멈추고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일곱 아들이 목이 달려 죽은 시신을 비가 내릴 때까지 거두지 못하였으며 새들이 와서 내리지 못하도록 하고 들짐승들이 범하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들의 뼈를 사울의 아버지 기스의 묘에 장사하니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삼하 21:14하). 하나님 앞과 백성들 사이에 있는 죄를 제거하여야 복을 주신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한 것은 반드시 지켜야 함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아비의 죄가 자손에게 이르는 것과 반드시 죄에 대한 심...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

  “다윗이 이에 아비새에게 이르되 이제 비그리의 아들 세바가 압살롬보다 우리를 더 해하리니 너는 네 주의 부하들을 데리고 그의 뒤를 쫓아가라 그가 견고한 성읍에 들어가 피할까 염려하노라 하매”(삼하 20:6) 다윗이 예루살렘에 환궁을 한 이후에 베냐민 사람 비그리의 아들인 불량배 세바가 내란을 일으킨다. 다윗은 이 사건을 압살롬 때보다 더 심각하게 행각하고 있다. 그래서 압살롬의 군지휘관이었던 아마사를 불러 맡긴다. 그러나 아마사는 유다 사람들을 모으는데 지체하게 된다. 그러자 아비새에게 세바를 추적하라 한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세바가 이스라엘 사람들을 모으는데 시간을 주지 않기 위하여 급히 따르게 하는 것이다. 세바가 아비새의 추적을 피하여 성읍에 들어가 숨는다. 그러나 요압과 군사들이 그 성을 에워싸고 토성을 세워 성읍을 멸하려는 작전을 세운다. 그런데 그 성읍의 여인 하나가 요압에게 나아와 죄없는 성읍 사람들을 죽이려 하느냐 하고 항의한다. 다시 요압에게 이르기를 추적하는 자의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 요압이 대답하기를 그자는 다윗 왕을 대적한 자이므로 내어달라고 한다. 이 여인은 요압의 요구대로 세바의 머리를 베어 내어 준다. 하나님께서 세운 다윗 왕을 대적한 자의 반란은 여인의 손에서 끝이 난다. 본문에서 요압은 세 번째 살인을 한다. 군 지휘관에 아마사가 임명되는 것을 보고 시기와 질투로 살인을 한다. 자신의 권력의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사울의 군대장과 아브넬, 다윗의 압살롬, 사촌지간인 아마사를 죽였다. 요압은 다윗의 신하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은 아니다. 그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따라 묻고 맡겨야 한다. 그러나 그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라 권력에 집착을 하여 늘 시기와 질투가 가득하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윗 왕국에서 여러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압살롬은 개인적인 욕심에 의하여 왕권에 반란을 일으켰지만, 세바의 반란은 오랜 지역감정으로 인한 반란 이었습니다. 문제의 해결 실마리는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이미 ...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골육이 아니냐 네가 요압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삼하 19:13) 다윗의 군대가 압살롬과 이스라엘을 이겨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을 한다. 시므이가 제일 먼저 나와서 용서를 구하고, 므비보셋의 억울한 누명이 벗겨지고, 겸손한 자 바르실래가 소개 된다. 이제 다윗이 하여야 할 일은 갈라진 백성들의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데 있다. 달리 말하면 국민대통합을 위한 정책을 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은 시므이를 용서하고 압살롬의 군 지휘관이었던 아마사를 요압에 이어 군 지휘관으로 삼는다. 그런데 다윗과 함께 하였던 자들이 반발을 한다.   다윗이 다시 예루살렘에 왕으로 돌아오자 백성들의 마음은 갈라진다. 왜 그런가 하면 압살롬을 따랐던 자들은 자신들에게 불이익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유다지파와 북쪽 이스라엘로 나뉘어져 갈등이 시작된다. 왕을 다시 모셔오는 일에 북쪽 지파 사람들과 상의를 하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결국에는 불량배인 세바가 또 반역을 일으킨다. 이스라엘의 왕권 다툼이 다윗의 집안에서 시작을 하여 이제는 이스라엘 지파 간에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다. 그러나 왕권은 유다지파에서 나옴을 야곱을 통하여 계시되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 앞에 출입하는 자로서 그분의 명령을 따라 행하여야 함을 망각하면 칼을 들고 권력을 잡으려 하는 것이다.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이다. 교회의 주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런데 목사나 교인들이 칼을 들고 권력을 잡으려 하면 안 된다. 이것을 모르는 자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분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의 말씀 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공통된 점은 늘 권력을 향하여 아부하며 시기하며 거짓말하는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께서 사람을 세워서 통치를 하기에 기름부음을 받은 왕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빠져나간지라”(삼하 18:9) 삼하 18장은 다윗의 군대와 압살롬의 이스라엘의 전투가 있다. 당연히 다윗의 군대가 승리를 하였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전투에 나가는 신하들에게 당부를 한다. 만일 압살롬을 만나거든 나를 위하여 압살롬을 너그러이 대하라고 한다. 압살롬은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게 된다. 나귀를 타고 급히 피하다가 그만 머리가 상수리나무 가지에 걸려 매달리게 된 것이다. 이 장면을 목격한 군사가 요압에게 알린다. 그는 지체하지 아니하고 칼로 압살롬의 심장을 찌른다. 압살롬은 그가 자랑하던 것이 올무가 되어 죽음의 자리로 갔다.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6). 머리털이 많은 것과 빨리 자라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간교함과 행함에 힘이 뻗치는 것을 말한다.   그래서 분노를 힘으로 삼았고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즉 다말의 강간 사건을 자기가 왕의 자리에 오르는 기회로 삼은 것이다. 본문을 통하여 탐욕에는 경계선이 없음을 확인할 수 있다. 지금 압살롬이 하는 짓은 아버지를 죽이러 전쟁에 나온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에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출 20:12).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 진노의 심판을 받았다. 다윗은 압살롬의 소식을 듣고 몹시 슬퍼한다. 이미 두 아들의 죽음에 이어 압살롬도 죽었기 때문이다. 그 아픔의 표현을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아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받은 자들에게는 특별함이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루신 은혜를 받았고 깨달을 수 있는 지혜를 얻은 것이다. 그분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은 구약에서 선포되었던 것을 이루기 위함이다. 죄인들의 속량하셨다는 것은 율법의 말씀 가운데 고엘의 법에 근거한 것이다. 종은 그의 몸값을 치루어야만 자유인이 된다. 안식년이 되어야 종에서 풀림을 받는다. 그리고 희년이 되면 팔았던 토지도 원래의 주인에게로 돌아온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사회보장제도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희년의 해를 선포하셨다. 죄인들의 죄값을 대신 치루어 주시고, 죄에 종되었던 자들에게 자유를 주셨다. 그래서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리라 거룩한 의의 종이 된 것이다. 이 은혜의 법칙을 아는 자들은 시행하는 자리로 나갈 수 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 15:1) 한다. 성경에서 부요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는 자이며, 가난한 자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이 없는 자이다. 그래서 부요한 자 다른 말로는 믿음이 강한 자는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여야 한다. 믿음이 강한 자가 될 수 있도록 기도하여 주고 주님 앞으로 인도함을 말한다. 그래서 교회에 출석을 독려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예배에 참석을 하게 한다. 이것이 믿음이 강한 자가 담당하여야 할 책임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교회에는 고엘과 희년의 제도가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질서이며 하나님의 은혜가 임하는 방식입니다. 이렇게 하셔야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이웃이 기뻐하고 우리는 기쁨의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COVID-19 사태로 사람들은 고독하고 우울해 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위로하여 주고 함께 하여줄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 교회가 이 은혜를 베풀어야 합니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

  “가난한 자를 보살피는 자에게 복이 있음이여 재앙의 날에 여호와께서 그를 건지시리로다”(시 41:1) 본문에서 가난한 자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가난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궁핍함을 말하는 것이다. 말씀의 배경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하여 예루살렘을 떠났을 때이다. 그의 친한 친구인 아히도벨에게 배신을 당할 뿐만 아니라 시므이에게 저주의 욕을 듣게 된다. 다윗은 그들이 배반하고 저주할 때에 불쌍히 여겼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것을 가난하다고 한다. 가난은 궁핍함을 말한다. 즉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못한 자가 됨으로 당연히 심판을 받아야 함이 마땅한 것이다. 반면에 다윗은 하나님을 알므로 계명을 지켜서 “여호와께서 그를 지키사 살게 하시리니 그가 이 세상에서 복을 받을 것이라 주여 그를 그 원수들의 뜻에 맡기지 마소서”(시 41:2). 그 원수들의 손에서 벗어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것이다. 그 원수들이 다윗을 대적하며 술수를 썼지만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윗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였을 때에 그의 능력과 보호하심의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다윗은 육체에 병이 들었다고 고백을 하고 있다. 이것은 죄로 인한 마음의 고통을 말하는 것이다. 그 고통이 가난한 자들에게 긍휼을 베풀었더니 없어졌다.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깨닫는 것은 믿음이 큰 자와 작은 자가 다툴 수 없음을 말한다. 죄를 짓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믿음이 큰 자라면 작은 자의 믿음을 담당하는 자리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뻐하심이라 한다. 그리고 악인은 결단코 의인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내 원수가 나를 이기지 못하오니 주께서 나를 기뻐하시는 줄을 내가 알았나이다”(시 41:11)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이 작은 자를 돌보는 자는 복을 주시는데 재앙의 날에 건져주신다고 합니다.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