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목회자로서 깊이 회개를 한다 . 어쩌다가 교회가 이렇게 되었는지 생각을 할 때에 많은 부분에 목회자에게 책임이 있다 .   한동안 교회는 교인들의 소원과 치유를 하는 곳이라 자유신학이 강세를 띤 적이 있었다 . 교인들이 원하는 모든 소원이 이루어지고 상처 치료라는 명목 하에 잘잘못을 묻지도 않았다 .   그러다보니 사회에서 얻지 못한 명예를 세워주는 곳이 되어 교회의 직분은 계급장으로 변질되었다 . 교회에 일정기간 출석을 하고 헌금을 하면 당연히 받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   죄에 대한 회개 없이 용서와 위로가 있다고 가르쳤다 . 그래서 교회 안에는 진리도 없고 질서도 없는 곳이 되었다 .   매해 년 말이 되면 목회자들은 반복되어 상황을 겪는다 .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사람들을 즐겁게 할 것인가에 고민을 한다 .   그 첫 번째가 사람의 생각으로 교회를 판단하고 운영하려는 것이다 . 사람의 생각은 자기 생각이 언제나 옳다는 주장이다 .   그 두 번째는 섭섭하다는 것이다 . 내가 그동안 교회와 목사에게 호의를 베풀었던 것을 열거하여 목사는 아주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으로 몰고 간다 .   그 세 번째가 목사가 미리 알아서 교인들의 마음을 헤아려 달라는 것이다 . 이 문제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이다 . 사람의 마음은 감정적이고 주관적이어서 정하여진 원칙이 없다 .   이러한 문제의 답이 있다 . 목회자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교인들도 그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 즉 그분에게 묻고 그분에게 답을 듣는 것이다 .   이러한 상식이 통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 예수 그리스도에게 묻고 그분에게 답을 듣는 교회가 주님이 세운 교회가 되는 것이다 . 그래서 오늘도 외쳐야 한다 .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 ...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성탄절이 삼일 앞으로 다가 왔다 . 신자들은 성탄의 깊은 의미를 새겨야 한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평강을 주시고 사랑의 공동체를 세우신 것이다 .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통하여 창조주이시며 전능자 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다 . 하나님은 사랑이시다는 깊은 뜻을 깨닫게 되면 사랑을 나누며 섬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   그런데 언제부터인지 교회에 자기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사람들이 모여 변질되었다 . 믿음의 생활이 배부른 돼지가 되는 것으로 목적이 바뀌었다 .   교회에서 가르침은 개인이 부자되는 가르침이 아니다 . 각 개개인이 말씀에 따라 순종을 하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내려 주셔서 부요하게 하시고 받은 그 부요함으로 공동체에 나누어 줌으로 인하여 균등한 사랑을 누리라는 것이다 .   사랑을 많이 받은 자는 그 받은 사랑을 나누어 주라고 주신 것이다 . 즉 사랑의 배달부로 쓰시려 함이다 . 성경 말씀에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되다고 하셨다 . 사랑을 나누는 자에게는 더 많은 복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도 가난하고 외면 받은 자들이 있었다 . 이들은 로마 관리에게는 세금으로 , 성전에서 제사를 드릴 때에는 제사장들에게 돈을 더 지불하고 제수용품을 구매하여야 했고 , 바리새인들에게는 보호자라는 명목으로 그나마 있는 재산마저 빼앗기는 신세가 된 자들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배를 불리는 기득권자들에게 책망을 하신 것이다 . 즉 배부른 돼지들에게 심하게 질책을 하신 것이다 .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 나는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고 긍휼을 원하신다고 말이다 .   서신서에서도 배를 불리려는 돼지들을 경계하고 있다 . 저들은 자기의 유익을 위하여 교회 안에 들어온 자들이라 하였다 .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사람을 판단할 때에 어떤 관점으로 보는가는 참 중요하다 . 사람이 흥하거나 패하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기준이 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며 말하는가에 그 사람의 마음의 생각이 드러난다는 것이다 .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셨다 . 그의 부모는 율법의 관례대로 아기 예수를 데리고 성전에 올라갔다 .   예루살렘에 거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고 성령이 함께 하였다 . 예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않으리라는 약속을 받은 사람이었다 .   성전에서 시므온이 아기 예수를 앉고 찬양을 한다 . “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 눅 2:29-32)   그리고는 마리아에게 놀라운 말을 한다 . 예수 그리스도가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또한 그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는가에 사람의 마음의 생각을 판단한다고 하였다 ( 눅 2:34-35).   다시 말하면 흥망성쇠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사람의 가치관의 기준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말하는가에 달렸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알고 말하는가에 사람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   “ 시므온이 그들에게 축복하고 그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라 이는 이스라엘 중 많은 사람을 패하거나 흥하게 하며 비방을 받는 표적이 되기 위하여 세움을 받았고 ”( 눅 2:34)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사물을 보는 관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 사람을 판단할 때에 외모를 볼 수도 있고 , 내면의 중심을 볼 수도 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셨는데 부류마다 생각이 달랐다 . 나사렛 동네에 살았던 사람들은 목수의 아들로 기억을 하였고 , 민족의 지도자였던 바리새인들은 율법으로 정죄하였고 , 정치지도자들은 기득권을 빼앗기기 위하여 로마 정권에 고발할 죄항목을 찾기 바빴다 .   그러나 거지 맹인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로 알았다 .   내 눈이 보는 대로 판단하는 것에 대한 위험한 경고를 바디매오를 통하여 알게 하는 것이다 . 바디메오는 앞을 볼 수 없는 맹인이다 . 그런데 그가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 봤다는 것이다 .   성령께서 말씀하시는 성경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 그래야 올바른 성탄절을 맞아할 수 있다 . 사람의 가치관으로는 먹고 마시고 쉬는 날이지만 , 성경의 가치관으로 보면 인류에게 소망과 평화가 시작된 날이 된다 .   “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 막 10:47)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작금의 교회나 신자들의 상황을 보면 염려가 되는 상황이다 . 행복한 삶은 물질에서 온다는 가치관으로 믿음의 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   이성이 과학이 발달하면 사람은 행복할 것이라 생각했다 . 그러나 정반대의 현상이 나타났다 . 산업화 사회 아래에 갇혀서 오히려 지배를 받게 되었다 .   그래서 이성과 과학으로도 인간을 행복하게 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 그러면서 과거의 전통적인 사고에서 이탈하는 현상이 생겼다 . 그것을 포스트모던니즘이라 한다 .   이성적인 사고에서 감성적인 사고로 바뀌었다 . 책을 보면서 생각하려 하지 않고 영상물을 보면 그것을 받아들인다 .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니라 옳고 싫음으로 판단을 한다 .   또한 어떠한 사고가 생기면 미래에 어떤 득과 실이 있는가를 살피기보다는 지금 당장의 좋고 싫음으로 판단을 하게 된다 .   그리고 모든 판단의 기준이 자기중심으로 바뀌었다 . 내가 좋으면 되고 , 내가 하는 것이 옳고 , 나의 감정을 표출하는 것에 구속받으려는 것을 싫어하며 , 자기 마음대로 살기 위해서는 진리보다는 돈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   이러한 사고를 갖은 사람들이 교회 안으로 들어왔다 . 그러다보니 진리와 미래지향적인 말씀 즉 , 종말과 재림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다 . 이러한 설교는 그들에게는 고리타분한 것이 된다 .   그들을 만족하게 설교를 하여야 하기에 이성적인 설교보다는 감성적인 설교를 하여야 한다 . 그래서 설교 중에 감동적인 영상물이 등장한다 .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라고 하는 설교에는 관심이 없다 . 왜냐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삶을 닮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 자기만의 독특한 삶을 살겠다는 생각이다 . 그래서 간섭이나 지시하는 것을 싫어한다 .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설교는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에게 보내는 사랑의 메시지이다 .   사랑의 편지에는 신랑이 신부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으며 , 지금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 나만 사랑하며 기다리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   신부가 되는 신자들은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알아야 한다 . 그래야 사랑이 성숙하여 지는 것이다 .   그러나 믿음이 성숙하지 않은 신부들은 신랑의 사랑에는 관심이 없고 돈만 달라고 한다 . 만약에 신부가 신랑과 결혼을 하는데 신랑의 돈만 바라고 결혼을 한다면 결혼생활이 힘들어 진다 .   ‘ 주 만 바라볼지어다 .’ 찬양은 열심히 부르지만 그 속에 담겨진 깊은 의미는 모르고 있다 . 사랑하는 부부가 서로 바라보지 않고 다른 남자나 여자를 바라보면 부부사이가 금이 간 것이다 .   부부간에 깊은 사랑을 주고받기 위해서는 진실과 정직함이 있어야 한다 . 그것이 기본이 되어야 신뢰가 쌓이게 된다 .   그리스도의 사랑을 신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설교이다 . 신자들이 들을 수 있는 언어와 해석된 문장으로 전하는 자가 설교자이다 . 그러므로 설교는 설교자의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메시지를 전하여야 한다 .   지금도 우리를 영원까지 변치 않고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알게 됨으로 인하여 신부도 사랑하며 순종하는 자리로 나아갈 수 있다 . 우리를 사랑하셨고 , 지금도 사랑하시고 , 영원토록 사랑하시는 예수님이 신랑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   지금 나와 함께 살고 있는 신랑은 자주 속 썩이고 말썽을 피우지만 하늘 보좌에 앉아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나를 위하여 자신의 몸을 아낌없이 내 주시고 영원토록 변함없이 사랑하신다고 피를 부으시며 약속하신 분이시다 . 그래서 그 사랑과 약속은 영원토록 지켜진다...

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당한 증언을 하지 말며

왜 거짓말을 할까 ? 성경의 답은 자기의 배를 불리기 위함이라 한다 . 즉 ,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는 거짓말도 할 수 있고 , 자신의 배를 위하여 집단을 이룬 것을 거짓세력이라 한다 .   사람은 창조될 때에 몸과 이성 , 양심 , 의지적인 요소로 되어 있다 . 그래서 이성의 판단과 양심적인 도덕적인 판단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라 한다 .   사람은 양심에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꺼림직 한 것을 하면 안 된다 . 그러한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곳을 도덕과 양심이 있는 사회라 한다 .   그런데 부끄러운 양심이 모이면 세력으로 변한다 .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 다수결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 양심에 부끄러운 것이라 할지라도 많은 수의 사람들이 함께 하면 정당하다는 논리이다 .   이러한 집단은 이익이 되는 것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 특히 나라 예산 가운데 복지지원이라는 항목에서는 사나운 짐승이 된다 .   백성들 가운데 생업을 꾸리지 못하거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는 국가의 예산으로 보살펴 주어야 한다 . 그런데 모든 사람이 다 나라의 예산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   성경에서는 고아와 과부 지나가는 나그네를 반드시 도와주어야 하는 사회법이 있다 . 내 이웃 가운데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것을 간과하면 율법을 어기는 자가 되는 것이다 .   세상이 점점 악하여져서 개인이 하여야할 일들을 나라에게 맡겼다 . 그래서 세금을 낸다 . 그런데 그것을 합법적으로 뜯어 먹겠다는 하이에나 같은 자들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   부패한 양심이 모여서 거짓세력이 되었다 . 이 거짓세력은 다른 사람의 재산을 빼앗는 행위도 서슴치 않고 있다 . 민주주의는 다수결의 원칙이라고 외치면서 말이다 .   그러나 사람은 선한 양심으로 이성적인 판단을 하며 도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