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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노라”(빌 1:18)

  “그러면 무엇이냐 겉치레로 하나 참으로 하나 무슨 방도로 하든지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써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노라”(빌 1:18) 사도 바울이 감옥에 갇힌 사건에 대해서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하나님의 영광으로 본다. 즉 그의 투옥은 단순한 박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로마 황실(시위대)에 복음을 심기 위한 전략적인 사건이다. 심지어 그를 시기하는 자들의 다툼까지도 하나님은 사용하신다. 왜 그런가 하면 전하는 자의 인격이나 동기가 불순할지라도 선포되는 복음(진리)에 구원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이 감옥에서 기뻐하는 것은 개인적인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정하신 뜻이 성취되는 것을 목도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삶의 목적을 그리스도와 연합으로 보여준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이러한 믿음을 교회들에게 보여 주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는 것이다. 즉 감옥에 갇혀 있지만 모든 고난과 고통을 이기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함께 하심임을 말한다. 구원을 받은 백성들은 천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천국 나라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들은 거룩한 성화의 삶을 살아야 한다. 신자들이 당하는 고난은 징벌이 아니라 구원을 받을 때에 그 속에 함께 있는 패키지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빌 1:29) 교회가 외부로부터 공격을 당할 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가 되어 행함으로 지켜야 한다. 즉 말씀으로 한 마음이 되어야 함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의 투옥, 경쟁, 생사, 고난을 통하여 자기 백성을 거룩하게 하시고 결국에는 그리스도의 ...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대하 15:4)

  “그들이 그 환난 때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가서 찾으매 그가 그들과 만나게 되셨나니”(대하 15:4) 아사 왕은 구스와 전쟁을 하여 대승을 하였다.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아사를 선지자 아사랴가 맞이 한다. “하나님의 영이 오뎃의 아들 아사랴에게 임하시매”(대하 15:1)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 전쟁에서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승리를 하였으니 더욱 더 의지하라는 것이다. “그가 나가서 아사를 맞아 이르되 아사와 및 유다와 베냐민의 무리들아 내 말을 들으라 너희가 여호와와 함께 하면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실지라 너희가 만일 그를 찾으면 그가 너희와 만나게 되시려니와 너희가 만일 그를 버리면 그도 너희를 버리시리라”(대하 15:2) 이스라엘의 어두운 과거는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었고, 제사장도 없었고, 율법을 지키지도 않았었다. “이스라엘에는 참 신이 없고 가르치는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은 지가 오래 되었으나”(대하 15:3) 이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주셨으니 더욱 더 믿음을 강건하게 하라는 것이다. “그런즉 너희는 강하게 하라 너희의 손이 약하지 않게 하라 너희 행위에는 상급이 있음이라 하니라”(대하 15:7) 그리하여 아사 왕은 유다와 베냐민 지역에 가증한 물건을 없앤다. 그리고 여호와의 제단을 재건하고,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찾기로 언약을 한다. “또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찾기로 언약하고”(대하 15:12) 심지어 왕의 어머니가 아세라 목상을 만들자 그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우상을 빻아 불사른다. “아사 왕의 어머니 마아가가 아세라의 가증한 목상을 만들었으므로 아사가 그의 태후의 자리를 폐하고 그의 우상을 찍고 빻아 기드론 시냇가에서 불살랐으니”(대하 15:16) 아사 왕의 부흥의 원동력은 선포된 말씀을 듣고 시작되었다. 즉 아사가 스스로 행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개혁주의에서는 모든 부흥과 회심이 말씀이 선포로부터 시작된다. 성령께서 ...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은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대하 14:6)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은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대하 14:6) 아비야의 아들인 아사가 남 유다의 왕 위에 올랐다. 그는 하나님 여호와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였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 보시기에 선과 정의를 행하여”(대하 14:2) 그리하였더니 하나님께서 평안을 주심으로 견고한 성읍을 건축할 수 있었다. “여호와께서 아사에게 평안을 주셨으므로 그 땅은 평안하여 여러 해 싸움이 없은지라 그가 견고한 성읍들을 유다에 건축하니라”(대하 14:6) 아사의 군대는 30만 명이고 베냐민의 군대는 28만으로 총 58 만 명의 군대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구스 사람 세라가 100만 군대를 이끌고 아사를 치러 왔다. “구스 사람 세라가 그들을 치려 하여 군사 백만 명과 병거 삼백 대를 거느리고 마레사에 이르매”(대하 14:9) 이와 같은 상황에서 아사를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아사가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여호와여 힘이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 줄 이가 없사오니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우리를 도우소서 우리가 주를 의지하오며 주의 이름을 의탁하옵고 이 많은 무리를 치러 왔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우리 하나님이시오니 원하건대 사람이 주를 이기 못하게 하옵소서 하였더니”(대하 14:11) 기도의 내용은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이다. 즉 여기서 약한 자는 군대의 수나 힘이 부족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우리는 전적 무능력한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과 승리는 오직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전쟁에서 승리를 한다. 그래서 반복적으로 찬양을 하기를 우리가 주를 찾았으므로 주님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것이다.  개혁주의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인간의 책임을 강조한다. 본문에서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구원의 은혜로 승...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대하 13:12)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대하 13:12) 남 유다에 아비야가 왕이 되었을 때에 북 이스라엘 왕 여로보암이 군대 팔십 만 명과 전쟁을 하게 된다.  그래서 아비야는 군대 사십 만 명을 모아서 대항을 한다. “아비야는 싸움에 용감한 군사 사십만 명을 택하여 싸움을 준비하였고 여로보암은 큰 용사 팔십만 명을 택하여 그와 대진한지라”(대하 13:3) 싸움에 앞서 아비야는 스마라임 산 위에 서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유다 지파를 통해서 왕권이 나올 것을 약속하셨다는 것이다. 이 약속은 변치 않는 약속이기에 소금 언약이라 한다.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소금 언약으로 이스라엘 나라를 영원히 다윗과 그의 자손에게 주신 것을 너희가 알 것 아니냐”(대하 13:5) 그러면서 북 이스라엘의 죄악을 지적하고 있다. 우산을 섬기는 것과 일반인을 제사장으로 세운 것과 여호와의 절기를 마음대로 바꾼 것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니 남 유다와 싸우지 말고 돌아가라고 권면하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사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그의 제사장들도 우리와 함께하여 전쟁의 나팔을 불어 너희를 공격하느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싸우지 말라 너희가 형통하지 못하리라”(대하 13:12) 여로보암은 아비야가 산 위에서 위치고 있는 동안에 뒤로 군대를 보냈다. 유다 사람들이 복병을 보고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었다. “유다 사람이 뒤를 돌아 보고 자기 앞뒤의 적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부르짖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부니라”(대하 13:14)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변치 않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신다는 것이다. 남 유다는 하나님을 따르는 정통성을 지키고 있다. 나팔을 분다고 함은 기도를 하고 있음을 말한다....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대하 12:2)

  “그들이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르호보암 왕 제오 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러 올라오니”(대하 12:2)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자 그가 여호와의 울법을 버린다. “르호보암의 나라가 견고하고 세력이 강해지매 그가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니 온 이스라엘이 본받은지라”(대하 12:1) 즉 왕이 버리니 온 이스라엘도 본받아 함께 타락을 한 것이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애굽 왕 시삭을 들어 막대기로 치신다. 병거가 1,200대, 마병 6만명 등 엄청넌 대군이 예루살렘 코 앞까지 진격한다.  그렇게 되자 유다 방백들이 예루살렘에 모이자 선지자 스마야가 말하기를 너희가 하나님을 버렸기에 하나님도 너희를 버렸다. 이에 왕과 방백들이 스스로 회개 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왕이 스스로 겸비하여 이르되 여호와는 의로우시다 하매”(대하 12:6) 그리고 의로우신 하나님을 찬양하였다.  그들이 깨달은 것은 약속을 지키시는 의로우신 하나님이신 것을 알게 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것을 받으셔서 예루살렘 멸망을 막으시고 애굽 사람들의 압제를 받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를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하였더라”(대하 12:8) 즉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세상 나라의 왕을 따르는 것에 대한 차이를 알게 하신다는 것이다. 그 결과로 성전의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다 빼앗아 갔다. 인간은 고난 속에서보다 번영할 때에 하나님을 떠난다. 그리고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고 배가 부르면 죄된 본성은 즉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다. 애굽 나라는 하나님의 징계의 막대기이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죄를 지을 때에 세상의 군왕이나 환경을 사용하여 징계하신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사랑의 매를 때리므로,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게 하는데 있다. 그리고 약속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 유익함을 깨닫게 하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속박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행 8:21)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행 8:21) 시몬의 사건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참된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과 지적인 동의와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을 말하려 하는 것이다. 즉 참된 믿음은 단순히 기적을 보고 놀라거나 교리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그리스도에 대한 전적인 인격적 위탁을 포함한다. 그래서 성령이 임하게 되면 회개의 자리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의 체험이 없다면 매우 심각한 일이 된다. 시몬은 빌립이 행한 표적과 큰 능력에 놀라 따랐지만, 성령이 임하는 것을 보고 돈으로 권능을 사려 함으로써 그의 믿음이 자기중심적 욕망에 기초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따라서 시몬을 '알곡과 가라지' 비유에서의 가라지나, '씨 뿌리는 비유'에서의 돌밭(잠시 믿다가 뿌리가 없어 넘어지는 자)과 같은 전형적인 '거짓 신자'의 모델로 해석할 수 있다. 이것을 증명하는 결정적인 교리가 중생(거듭남)이다. 즉 근본적인 마음의 상태가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거듭남의 역사가 있다면 그 사람의 기질이 주님을 행하게 된다. 세상의 노래를 연주하던 자가 그 재능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마술사는 자신의 본업을 위하여 성령을 받으려 하였다. 이것은 거듭난 자의 모습이 아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즉 거듭난 자들에게는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는 자가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나타날 수밖에 없는 현상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은 단순히 지적 동의를 하며 지적 동의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의 현상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고 믿는 것입니다. 이 분이라면 자신의 생명을 걸고 충성할 수 있다는 신뢰가 있어야 합니다. 그러...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리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행 8:9)

  “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리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행 8:9) 빌립 집사를 통하여 사마리아 성에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다. 그 성에 마술사 시몬이라는 사람이 등장을 한다. 이 두 사람을 비교하여 구원의 진실이 무엇인지를 밝힌다. 시몬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마술이 하나님의 큰 능력이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이 마술사에게 임했다고 한 것이다.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따르며 이르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행 8:10) 그리하여 빌립을 따르며 세례를 받고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란다.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행 8:13) 빌립 집사가 큰 능력을 행할 수 있음은 성령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사마리아 땅에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만 아직은 성령을 받지 못하였다. 그러한 이유는 거짓 사도들과 참된 주님의 사도들을 구분하기 위함이다. 성령의 능력은 주님의 제자들을 통하여 전하여짐을 밝히는 것이다. 베드로와 요한이 사마리아 땅에 내려와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안수함으로 성령을 받는다. “이에 두 사도가 그들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행 8:17) 이 장면을 마술사 시몬이 보고 돈을 사도들에게 주고 성령을 받으려 한다. “시몬이 사도들의 안수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행 8:19) 그는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인격적으로 믿고 신뢰하는 것이 아니라 초자연적인 것으로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그 능력으로 자신의 영광과 부를 누리려고 한 것이다. “이르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행 8:19) 그러자 베드로가 책망을 한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을 주고 사려는 마음은 바르지 못한 것이라 하였다. “베드로가 이르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 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