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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에서 세관에 앉아 있는 마태를 보시고 나를 따르라 하셨다. 마태는 즉시 일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서 그분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가 된 마태는 옛 직장의 동료들을 집으로 불러 함께 식사를 한다. 그때에 그곳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함께 하셨다. 이 장면을 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너희 선생은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마 9:11) 바리새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회개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저들이 말하는 죄인이란? 어떠한 실정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유대사회의 도덕법규와 전통을 지키지 않았음을 말한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이 말한 것을 들으시고 이르시기를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하셨다.(마 9:12) 즉 의인을 고치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고치려 오셨음을 말하신 것이다. 바리새인들의 신앙관은 하나님께 제사(제물)를 드렸으니 복을 달라는 것이다. 이것은 잘못된 믿음이다. 거룩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사함을 받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가서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마 9:13) 이 말씀은 너희는 너희가 좋아하는 다윗에게서 배우고 오라는 것이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동침 사건으로 제물을 드리며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은 제물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상한 심령이라는 것이다. 즉 상한 심령이라 함은 나라는 존재가 하나님 앞에서 쓸모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심은 약한 자를 위하...

생명의 말씀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5) 야고보서 5장에서는 재물이 많아서 교만한 자들에게 임할 진노의 결과이다.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약 5:1) 그 교만함으로 의인을 비판하고 죽였다. “너희는 의인을 정죄하고 죽였으나 그는 너희에게 대항하지 아니하였느니라”(약 5:6) 의인은 악인과 싸우지 않는다.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1) 오히려 저들을 불쌍히 여겨야 한다. 왜 그런가 하면 저들은 하나님에게 심판을 받아 뜨거운 불못 지옥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은 죄인이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구원을 받는 것을 기뻐하신다. “너는 그들에게 말하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 하셨다 하라”(겔 33:11) 그러므로 아직도 구원받지 못한 자들을 위하여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하여 기도할지니라”(약 5:14) 병자란 영적 감각이 없어서 죄에 대한 아픔이 없고 심지어 살점이 떨어지며 갈라지는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나병환자 같음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가 임하도록 말씀을 전하면서 기도를 하라는 것이다.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 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약 5:15) 하나님은 의인의 기도를 들어 주신다. 그 예 로 엘리야 때를 말라고 있다, 엘리야가 가뭄을 달라 하니 비를 내리지 않으셨고 다시 비를 달라 하니 비를 주셨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생명의 말씀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7)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7)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목표로 출발을 한다. 그 목적지를 가기 위해서는 광야 길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가는 과정에서 인간의 탐욕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불평을 한다. 탐욕이란 마음의 욕심이다. 일용한 양식을 넘어서 과도한 욕심을 부리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벽돌 만드는 일을 하였다. 그런데 본문에서 그들이 애굽 땅에 있을 때에 값없이 생선과 음식들을 먹었다고 한다. 탐욕에서 나온 거짓말이다. 그들은 혹독한 종살이를 살면서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런데 거짓을 더하여서 불평을 극대화하고 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내려주는 만나는 값없이 먹는 음식이다.  이와 같이 마음이 부패한 백성들이 모세에게 원망을 한다. 이에 모세도 백성들에게 시달려서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죽게해 달라고 간구한다. “주께서 내게 이같이 행하실진대 구하옵소서 내게 은혜를 베푸사 즉시 나를 죽여 내가 고난 당함을 내가 보지 않게 하옵소서”(민 11;15) 이제 타락한 백성들에게와 지친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친히 내려가서 너와 함께 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강림하여 거기서 너와 말하고 네게 임한 영을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리니 그들이 너와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고 너 혼자 담당하지 아니하리라”(민 11:17) 즉 하나님이 성육신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오셨다. 그리하여 인간의 모든 문제는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또 성령을 주신다. 구약의 백성들에게는 성령이 함께 하시기도 하다가 떠나셨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이후에 오시는 성령은 우리들 안에 거하시며 떠나지 않으신다.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모든 ...

생명의 말씀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리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민 10:29)

  “모세가 모세의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하신 곳으로 우리가 행진하리니 우리와 동행하자 그리하면 선대하리라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내리리라 하셨느니라”(민 10:29) 출애굽 둘째 해 둘째 달 이십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을 행하여 출발하였다. 여호와께서 정해준 위치에서 행진을 하다가 모세의 장인 르우엘(이드로)에게 이르렀다. 모세가 장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의 눈이 되어 달라 한다. “모세가 이르되 청하건대 우리를 떠나지 마소서 당신은 우리가 광야에서 어떻게 진칠지를 아나니 우리의 눈이 되리이다”(민 10:31) 하지만 르우엘은 거절한다. 그러나 모세의 강권적인 설득으로 행진에 동참을 한다. 앞 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불 기둥으로 인도하신다고 하셨다. 그런데 호밥에게 이스라엘의 눈이 되어달라는 모세의 간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즉 약속으로 주시는 가나안 땅을 인도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고자 하는 목적지가 분명이 있는데 함께 동참을 하자함을 말한다. 여호와 하나님의 복은 한 개인이나 한 집단에만 주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에게 개방되어 있다.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 12:2) 하나님 나라에 동참한 자에게는 풍족한 은혜가 주어진다. 그래서 가나안 땅을 정복하였을 때에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도 거주한다. “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의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종려나무 성읍에서 올라가서 아랏 남방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주하리라”(삿 1:16)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동역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이루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에 많은 사람들이 동참하도록 권유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일에 인간의 지혜와 재능을 최대로 활용하시는 분이시다. 이드로와 호밥의 지혜로 노약자나 유아 ...

생명의 말씀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에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민 9:5)

  “그들이 첫째 달 열넷째 날에 해 질 때에 시내 광야에서 유월절을 지켰으되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것을 다 따라 행하였더라”(민 9:5)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의 능력을 기억하고 찬양하는 날이 유월절이다. 즉 종 되었던 이스라엘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다. 출애굽 제 이년 첫째 달 열넷째 날에 유월절을 지켰다. 절기를 기키기 위해서는 어린 양을 취하여 그 피를 번제단에 뿌리고 고기를 구워 먹어야 한다. 광야에서 그 많은 사람들이 유월절 예식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많은 양이 필요하였지만 애굽에서 가져나온 양으로 절기를 지킬 수 있었다. 유월절을 광야에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지켜 따랐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 초기에는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지키었다. 성막 위에 불같은 것이 있었는데 낮에는 구름으로 가리었고 밤에는 불 모양으로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행진을 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다. “구름이 성막에서 떠오르는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곧 행진하였고 구름이 머무는 곳에 이스라엘 자손이 진을 쳤으니”(민 9:17) 또한 구름이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면 이스라엘은 머무르고 있다가 떠오르면 행진을 하였다. “이틀이든지 한 달이든지 일 년이든지 구름이 성막 위에 머물러 있을 동안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진영에 머물고 행진하지 아니하다가 떠오르면 행진하였으니”(민 9:22) 이스라엘 백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탁한 명령을 잘 지키었다. “곧 그들이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행진하고 또 모세를 통하여 이르신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여호와의 직임을 지켰더라”(민 9:23)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광야 길을 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다. 그분은 택한 백성들의 울타리가 되시며 모든 위험으로부터...

생명의 말씀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민 8:19)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레위인을 취하여 그들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어 그들로 회막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대신하여 봉사하게 하며 또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속죄하게 하였나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성소에 가까이 할 때에 그들 중에 재앙이 없게 하려 하였음이니라”(민 8:19) 여호와 하나님께서 레위인을 택하신 이유를 말씀하신다. 출애굽 당시에 애굽 땅에서 처음 태어난 것들은 다 죽었지만 이스라엘의 첫 태생은 죽지 않았다. 그리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소유임을 말씀하셨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첫 태생을 속량하여 주시고 레위인을 택하였다. 본문의 말씀은 레위인이 왜 필요한지를 말씀하시는 것이다.  레위인이 필요한 이유는 거룩하신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을 정결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는 일을 맡기셨다. 레위 지파에서 아론의 자손들은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한다. 그들이 하는 일은 부정한 자들을 정결하게 하는 제사의식을 행한다. 그리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만일 정결하지 못한 자가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게 되면 죽음을 당하게 되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사장을 통하여야만 한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누군가가 죄인의 죄를 속죄하여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자이시며 중보자가 되신다. 즉 하나님에게로 가는데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선한 마음으로 묵상을 하면 만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분명한 이단이다. 어찌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하나님에게 다가 갈 수 있는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이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사랑...

생명의 말씀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마 9:3)

  “어떤 서기관들이 속으로 이르되 이 사람이 신성을 모독하도다”(마 9:3)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들은 서기관들은 이것이 신성모독에 해당 된다고 한 것이다. 그 이유는 죄인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만 속죄제를 드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기적의 현장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있는 가버나움에서 일어났다. 이와 같은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질문을 한다. 죄사함을 받는 것이 쉬우냐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 쉬우냐는 것이다.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걸어가라 하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마 9:5) 서기관들의 대답은 당연히 일어나 걸어가는 것이 쉽다고 생각을 하였다. 오직 죄사함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에서만 있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전이 되실 것에 대한 계시이다. 제자들과 성전을 바라보시며 성전을 헗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짓겠다고 하셨다. 예루살렘 성전에서 떠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시므로 성전이 되시는 것이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매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라”(요 4:24)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전하시고자 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사함의 능력과 은혜가 있음을 전하려 하신 것이다.  그래서 이제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짐승의 피로 제사를 드려서 죄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사함을 받음을 보이셨다. 십자가의 보혈의 피를 통하여 구약에서 용서받지 못한 죄도 사함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큰 구원의 은혜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이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그의 뜻하심을 알고 예배를 드리게 되면 더 큰 영광과 찬송을 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계시하시고 이루신 것을 믿고 영광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이 받은 구원을 값으로 계산...

생명의 말씀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에서 중풍병자를 고치셨다. 그분께서 이적을 행하시는 것을 표적이라 한다. 즉 이적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려 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중풍병자를 데리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나왔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안심하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마 9:2하) 중풍병자와 죄 사함을 받은 것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즉 중풍병자는 죄인인데 고쳐 주시면서 네가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였다. 그리고 자유함을 얻어 침상을 들고 자기의 집으로 돌아갔다.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 집으로 돌아가거늘”(마 9:6하-7)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무엇을 전하려 하는가? 죄인의 삶이 중풍병자와 같다는 것이다. 마치 사람의 모습은 갖고 있지만 비참한 생활을 하여야 함을 말한다. 중풍병자의 특징은 머리와 몸의 신경이 단절된 상태이다. 즉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병자를 예수 그리스도가 고치실 수 있다. 이 일을 위하여 그분이 이 땅에 오셨다. 그리고 십자가에 죽으시는 것이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이유는 죄인들의 죄를 대속하셔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십자가의 구원의 은혜를 얻은 자들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걸을 수 있고 뛸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자신에게 구원의 은혜를 베풀어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성전으로 간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이전에 영적인 중풍병자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생명의 말씀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

  “입법자와 재판관은 오직 한 분이시니 능히 구원하시기도 하시며 멸하시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이기에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 그리스도인이 형제와 싸우고자 함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 싸우려 함에는 이웃을 압제하려는데 있다. 하나님의 계명에는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다.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마 22:39) 즉 형제를 미워하고 다투는 것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명령을 어기는 것이다. 그런데 다투는 자들은 자신이 여호와의 계명을 범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러한 자들에게 경고를 하신다. 율법의 말씀을 누가 제정하였는가, 율법을 판단하시는 분은 누구신가를 생각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며 다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자들에게 묻고 있다. 너희가 율법을 제정하였느냐 그리고 너희가 심판관이냐는 것이다. 더 나아가 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율법의 최고의 법을 지키는 것이라 한다. “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 그러므로 형제들아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는 자임을 깨달으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계명을 알면서도 지키지 않는 것은 죄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약 4:17) 하나님의 사람은 자기의 마음대로 사는 자가 아니라 그의 뜻대로 사는 자들이다.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약 4:15)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들은 다 악한 것이다. 즉 사람의 생각에서 나오는 것은 악함과 탐욕으로 가득하다.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약 4:1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주의 뜻대로 살기를 원한다고 하면서 자신의 생각으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자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