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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

  “또 하늘에 크고 이상한 다른 이적을 보매 일곱 천사가 일곱 재앙을 가졌으니 곧 마지막 재앙이라 하나님의 진노가 이것으로 마치리로다”(계15:1)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일곱 재앙이 펼쳐진다. 하나님의 진노가 짐승의 이름을 받은 자들에게 임하게 된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슨 일을 하시는지를 말하려 한다. 그래서 일곱 인을 통하여 계시의 비밀을 밝히시고, 일곱 나팔을 통하여 죄인들은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회개 하라는 것이다. 이제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면 일곱 재앙이 시작이 되는데, 짐승의 이름을 받은 자들이 받을 저주와 고통을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에게는 찬양과 영광의 자리로 나간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온 후에 장면을 생각하여야 한다. 그들은 홍해를 건너왔지만 애굽 사람들은 건너오지 못하고 물에 잠겨 죽는다. “또 내가 보니 불이 섞인 유리 바다 같은 것이 있고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기고 벗어난 자들이 유리 바다 가에 서서 하나님의 거문고를 가지고”(15:2) 찬양을 한다. 그 장면을 보았던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린다. 출 15장의 말씀을 보며 하나님의 기이한 능력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의 노래이며, 어린 양의 보혈의 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의 찬양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놀라우시도다 만국의 왕이시며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나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15:3-4) 결국에는 짐승의 이름을 받아 저주를 받아 사망에 이르는 자들도 하나님의 능력을 눈으로 확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계시하고 있으니 회개하라는 것이다. 아직도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믿음에 게으르고 불순종하고 있는 자들에게 경고하는 말...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

  “그 살인자는 회중 앞에 서서 재판을 받기까지 또는 그 당시 대제사장이 죽기까지 그 성읍에 거주하다가 그 후에 그 살인자는 그 성읍 곧 자기가 도망하여 나온 자기 성읍 자기 집으로 돌아갈지니라 하라 하시니라”(수 20:6) 여호수아 20장은 이스라엘 땅에 도피성들을 세우라 하신다. 도피성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민수기과 신명기에서 이미 말씀하셨다. 도피성은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피의 보복자를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고의로 살인한 자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있다. 사람을 죽이기 위하여 계획을 세웠다든가 생명을 헤칠 수 있는 무기를 사용하였을 때는 고의로 살인한 자가 된다. 그러나 실수로 사람을 죽였을 때는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된다. 도피성에 들어가는 자는 성문 앞에 있는 장로들에게 자초지종을 말해야 한다. 그러면 장로들은 그가 머무를 곳을 마련하여 주어야 한다. 그곳에서 대제사장이 죽을 때까지는 나올 수 없다. 왜 대제사장이 죽어야 나올 수 있는가 하면 대속이라는 의미가 있다. 부지중에 살인자를 대신하여 대제사장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생각하게 한다. 그분이 십자가의 죽음은 대속의 은혜가 있다. 도피성은 여섯 곳으로서 요단 동편에 세 군데, 서편에 세 군데로 정하였다. 또한 도피성은 살인자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거류하는 거류민들도 거주할 수 있었다. “이는 곧 이스라엘 모든 자손과 그들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을 위하여 선정된 성읍들로서 누구든지 부지중에 살인한 자가 그리로 도망하여 그가 회중 앞에 설 때까지 피의 보복자의 손에 죽지 아니하게 하기 위함이니”(수 20:9)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인들을 대신 죽으신 십자가의 사랑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죄인이 그분이 죽으심으로 인하여 자유를 얻은 것입니다. 또한 지나가는 나그네를 안전하게 머물게 하기 위하여 도피성을 세웠습니다. 그들에게 ...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가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

  “제사장 엘르아살과 눈의 아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자손의 지파의 족장들이 실로에 있는 회막 문 여호와 앞에서 제비 뽑아 나눈 가업이 이러하니라 이에 땅 나누는 일을 마쳤더라”(수 19:51) 여호수아 19장에서 베냐민, 시므온, 스불론, 잇사갈, 아셀, 납달리, 단 자손이 아직도 기업으로 땅을 분배 받지 못하였다. 그래서 각 지파는 세 사람씩을 보내어 원하는 땅을 두루 다니며 그 땅을 그려 가지고 오라 하였다. 그래서 베냐민 지파가 분배를 받고 두 번째로 시므온 지파가 땅을 분배 받는다. 그런데 분배 받은 땅이 유다 지파 가운데 있는 성읍이다. 왜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살피려 한다. 민 25장에서 바알 브올 사건(모압 여인들과 음행한 일) 에서 시므온의 한 지도자뿐만 아니라 많은 수의 지파 사람들이 죽임을 당하였다. 가나안 2차 인구 조사에서 “이는 시므온의 종족들이니 계수된 자가 이만 이천 이백 명이었더라”(민 26:14) 시므온 지파는 다른 지파의 인구 수에 절반 정도도 안 된다. 그래서 스스로의 힘으로 분배 받은 땅을 지킬 수 있는 힘이 없었다. 그래서 유대 지파 가운데 있는 성읍을 기업으로 분배를 받는다.   시므온 지파는 이스라엘이 남과 북으로 나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북쪽으로 이동하여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경내로 들어가 살다가 흩어져 살게 된다. 그들의 조상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다른 지파의 보호를 받으며 살다가 흩어진 역사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은 이미 야곱의 열두 아들을 위한 축복기도 가운데 저주가 있을 것이라 한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야곱의 딸인 디나가 세겜의 족장의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였을 때에 세겜의 남자들을 죽이고 그 성읍에 있던 물건들을 노략하였기 때문이다. “그 노여움이 혹독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요 분기가 맹렬하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내가 그들을 야곱 중에서 나누며 이스라엘 중에서 흩으리로다”(창 49:8). 레위 지파나 시므온 지파의 칼은 폭력의 도구라 하였다(창 49:5). 레위 지파는 하나님...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서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서 회막을 세웠으며 그 땅은 그들 앞에서 돌아와 정복되었더라”(수 18:1)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고 실로에 회막을 세웠다. 그동안 법궤는 길갈에 있었는데 이제는 실로로 옮겨졌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아직도 일곱 지파에게는 땅이 분배 되지 않았다. 그런데 회막부터 세우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새롭게 고취시키는데 있다. 전쟁으로 인하여 분주한 마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오게 한다. 요셉 자손들이 땅 분배에 불만을 갖고 여호수아 앞에 나왔을 때에 산지를 정복하고 개간하라고 하였다. 이것이 나머지 일곱 지파의 마음을 두렵게 하였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일곱 지파에게 명령하기를 “너희는 각 지파에 세 사람씩 선정하라 내가 그들을 보내리라 그들은 일어나서 그 땅에 두루 다니며 그들의 기업에 따라 그 땅을 그려 가지고 내게로 돌아올 것이라”(수 18:1). 베냐민 자손 지파가 그들의 가족대로 제비를 뽑았다. 그 땅은 유다 지파의 경계와 에브라임 지파 경계의 사이의 땅이다. 강한 지파는 유다 지파와 에브라임 지파이다. 이 두 지파가 경계를 마주하고 있으면 마찰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두 지파 사이에서 완충 역할을 하게 하기 위하여 베냐민 지파의 땅을 준 것이다. 이후에 베냐민 지파의 역사를 보면 유다가 강할 때는 유다 쪽으로, 에브라임이 강할 때는 이브라임 쪽으로 기우는 것을 볼 수 있다. 각 지파가 제비를 뽑더라도 하나님께서 결정을 하신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움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잠 16:9)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엘파소열린문 장로교회에 행하는 일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여 그분의 뜻대로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증거와 결과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교회 안에서 평강이 없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은 전 교인이 하나가 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몇 사람이 모여서 수군수군 거리는 것은 교회에...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

  “그 산지도 네 것이 되리니 비록 삼림이라도 네가 개척하라 그 끝까지 네 것이 되리라 가나안 족속이 비록 철 병거를 가졌고 강할지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 하였더라”(수 17:18) 여호수아 17장은 므낫세 지파가 제비를 뽑아 땅을 분배 받은 내용이다. 슬로브핫의 다섯 딸들이 모세가 약속한 대로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 그런데 요셉 자손들이 불만을 가지고 여호수아에게 나온다. 인구수에 비하여 적은 땅을 주었다는 것이다. 왜 그런가 하면 에브라임 지파는 산지를 받았기 때문이다. 여호수아가 요셉 족속에게 말하기를 “여호수아가 다시 요셉의 족속 곧 에브라임과 므낫세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는 큰 민족이요 큰 권능이 있은즉 한 분깃만 가질 것이 아니라”(17절).   너희 지파는 큰 민족이며 강한 힘을 갖고 있으니 너희가 산지의 족속들을 몰아내고 땅을 차지   하라 한다. 그리고 그 산지가 네 것이 되면 삼림이라도 개척을 하라는 것이다.   에브라임 지파도 다른 지파처럼 평지를 분배 받고 싶었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강한 지파에게는 직접 산지를 개간하여 필요한 땅을 얻으라고 하였다. 여호수아는 에브라임 지파 사람이다. 그는 백십 세에 죽었는데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복쪽이었더라”(수 24:30)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였던 그는 에브라임 북쪽 산지를 개간하여 살다가 죽은 것이다. 진정한 지도자의 리더십을 볼 수 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강하고 큰 믿음을 가진 성도들은 작은 믿음을 가진 성도들에게 양보를 하여야 합니다. 만일 교회 안에서 큰 믿음을 소유한 성도들이 득세를 한다면 세상과 다름이 없습니다. 세상은 강한 자가 큰 소리 치며 권세를 부리는 곳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적인 큰 믿음을 소유한 신자라면 작은 자의 약한 부분을 담당하여야 합니다. “믿음이 강한 우리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멀리 보지 못하고 그의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었느니라”(벧후 1:9) 신약 성경에서 맹인이 고침을 받는 장면이 여러 번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능력을 베푸신 후에는 말씀을 하신다. 무슨 말씀인가 하면 고침을 통하여 전하시고자 하는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맹인은 앞을 보지 못한다. 능력을 나타내심으로 인하여 볼 수 있게 하신 것이다. 죄인들은 육체의 눈으로나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없다. 그러나 죄사함을 받은 신자들은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 다윗은 시 13편에서 하나님께 ‘나의 눈을 밝히소서“(3절) 하며 간절히 기도하고 있다. 이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를 임한 자에게만 있다.   본문의 말씀에서 ‘이런 것이 없는 자는 맹인이라’ 한다, 무엇이 없는 것인가? 그 답은 신자들을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로 부르신 소망을 모르는 것을 말한다. 신자들은 이전에 자신의 욕심으로 살았다. 그러나 구원을 받은 이후에는 하나님의 소원을 이루는 자로서 생각과 삶이 바뀌었다. 만일 이것을 모르면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를 잊은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이루려 하는 소망을 깨닫지 못한 것을 말한다. 그러한 자를 영적인 소경이라 한다.   성령의 말씀을 성령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묵상을 하게 되면 하나님을 밝히 아는 믿음을 소유하게 된다. 믿음이 시작할 때는 하나님을 쳐다보다가, 주목하여 보게 되고, 밝히 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 가운데 점진적으로 믿음이 성장한다. 그래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배워야 한다. 그러면 성경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다윗이 간절히 기도한 ‘나의 눈을 밝히소서’의 은혜가 우리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미 임하였습니다. 구원을 받고 믿음생활하시는 분들에게는 하나님이 멀리 계셔서 쳐다보는 단계에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이니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다윗이 하나님께 기도를 하여도 응답이 없다. 그래서 그는 몹시 괴로워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지 않는 것은 정말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을 떠나지 않으셨다. 늘 그와 함께 하셨다.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딤전 1:7) 그러나 성령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면 마음의 눈으로는 볼 수 있다. 이것은 새언약을 이루시면서 주신 은혜이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와 말씀을 깨달을 때에 하나님을 알 수 있고 확신을 갖게 됨으로 볼 수 있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엡 1:17)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임한 사람들에게는 영안이 새롭게 창조되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맹인을 고쳐 주시는 과정에서 밝히셨다. 안수를 두 번이나 하셨다. “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막 8:23), 그가 대답하기를 “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24절), 눈을 떴지만 사람이 나무로 보고 있다. 그러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안수하신다. “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25절). 무슨 말씀인가 하면 구원받은 자들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 성경말씀을 묵상할 때에 하나님을 밝히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마음의 눈으로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령하나님이 내 안에 계셔서 성경말씀을 묵상할 때에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