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 마 15:22)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땅에서 복음을 전하시다가 잠시 쉬시러 가나안 땅으로 가셨다 . 그곳에서 여인 하나가 나아와 소리를 지르며 ‘ 주 다윗의 자손이여 ’ 하며 나를 불쌍히 여겨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고 한다 .   자신을 불쌍히 여기고 자신의 딸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것이다 . 그런데 제자들의 반응은 그 여자를 돌려보내라고 한다 .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반응도 냉정하시다 . 그 이유는 아버지께 보냄을 받은 것은 먼저 잃어버린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   여인의 간청이 이어진다 . “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 마 15:27 하 ) 이스라엘 민족에게 복음이 전하여지고 나면 이방인에게도 기쁜 소식이 전하여짐을 내가 믿나이다 . 여인은 자신을 개로 여기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간구하는 것이다 .   그리하였더니 “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15:28) 는 칭찬을 받았다 .   믿음이 좋다는 것은 하나님을 많이 아는 것이다 . 그분께서 말씀하시고 , 이루셨고 , 이루시고 , 이루시려 하는 일을 믿는 것을 말한다 . 가나안 여인이 믿음이 크다고 칭찬을 받은 이유도 ‘ 주 다윗의 자손이여 ’ 라는 고백 속에 있다 .   다윗의 자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시려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것을 이사야의 글을 통하여 믿음이 생긴 것이다 . 이방 땅에도 구원의 빛이 비추어 흑암이 물러가고 어둠의 세력으로부터 자유케 된다는 약속을 알고 그분 앞에 나왔다 .   제자들은 믿음이 작은 자들이라며 그분에게 질책을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 계 1:1)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로 말미암아 종말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다 . 지구상에서 자연재해가 나면 등장하는 것이 세상의 종말이다 . 그런데 이단과 마귀는 이것을 교묘하게 이용한다 . 공포와 두려움을 조장하고 자신들의 집단에서는 특별한 방법이 있다고 한다 .   본문 말씀의 배경은 AD95 년 로마 황제 도미티안 때이다 . 황제숭배를 하지 않으면 정치 , 사회 ,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다 . 각 종의 방법으로 처형을 당하고 , 여행을 할 수 없었고 , 물건을 판매하거나 구입을 할 수 없었다 .   본문의 저자인 사도요한은 밧모섬에 갇히었다 .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살아 있다 .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유배를 보냈다 . 그래서 일곱 교회와 말씀을 전하는 자들에게 서신을 보내게 된 것이다 .   계시록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어날 일들에 대한 기록이다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있을 것을 천사들이 요한에게 보여 주고 , 그는 기록하여 교회들에게 보낸 것이다 .   요한이 하는 일은 계시를 받았고 전달하는 일이다 . 그 내용은 성삼위하나님께서 직접하신다는 것이다 . 그런데 가짜들은 자기가 그 일을 맡았다고 한다 . 그래서 하나님이라고 주장을 한다 .   환상을 보여 주시는 때가 있다 . 특별한 상황일 때이다 . 에스겔과 다니엘에게 환상이 임할 때에도 나라를 잃고 포로생활을 하며 낙심을 하고 있을 때이다 .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내용이 있을 때에 눈으로 보여 줌으로 확실히 이해하며 정확하게 증거하기 위함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름을 타고 오신다 .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구원을 받은 신자들은 어떻게 ...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 다만 여호와를 거역하지는 말라 또 그 땅 백성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은 우리의 먹이라 그들의 보호자는 그들에게서 떠났고 여호와는 우리와 함께 하시느니라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 ”( 민 14:9)   열 명의 정탐꾼의 보고를 들은 백성들은 가슴을 치며 통곡을 하였다 . 그리고 생명을 지키지도 못하시는 하나님 , 가나안으로도 인도하시지 못하는 하나님으로 인식하게 되었다 .   지금 백성들에게는 민족의 지도자인 모세가 있고 , 열 명의 정탐꾼이 있다 . 누구에 말을 믿느냐에 달려 있는 것이다 .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말씀을 하시고 ,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고 계시다 .   그런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있다 . 이들에게는 믿음이 없다 . 믿음이 어떠한 마음의 상태로 작용을 하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 히 11:6)   광야에 있는 백성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다 . 애굽에서의 기적과 광야에서의 기적을 보고도 믿지 못하고 있다 . 무엇이 문제일까 ? 부패된 마음 때문이다 . 그 썩은 마음은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신의 생각이 제일이라 한다 .   부패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특징이 하나님의 말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 왜 그런가 하면 자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뜻보다 위에 있다는 교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   불순종의 신앙을 갖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이 있다 . 그분은 나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 하나님은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 주지 못하고 약속의 땅으로 인도할 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 그래서 자신의 생각으로 가나안 땅을 판단하여 보니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되는 것이다 .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 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정탐하게 하되 그들의 조상의 가문 각 지파 중에서 지휘관 된 자 한 사람씩 보내라 ”( 민 13:2)   가데스 바네아에 도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커다란 분기점을 맞이한다 . 그것은 가나안 정탐꾼들의 보고로 말미암음이다 . 열 두 지파에서 한 사람씩 하여 열두 명을 보낸다 . 갈렙과 여호수아 이외에는 모두 정복할 수 없는 땅이라 한다 .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은 하나님께 불신앙으로 인한 것이다 . 이미 오래 전에 아브라함 , 이삭 , 야곱에게 약속하신 것을 믿지 못함이다 .   어떻게 해서 열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게 되었는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 신명기 1:22 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먼저 나아와 가나안 땅을 살펴서 어느 길로 가야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알기 위함이라 한다 .   “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아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 신 1:22) 모세는 하나님께 아뢰었고 가라하는 명령을 받은 것이다 .   가나안 땅은 하나님이 그 백성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 그렇다면 하나님께 가나안 부족을 몰아내시고 주시는 것이다 . 그런데 사람의 생각으로 점령 하겠다 하니 두려움이 생겼다 .   그 백성들은 생각에서부터 행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아니한 것이다 . 가나안 땅에 들어가 보니 과연 그 땅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데 그러나 그 땅 거주민은 강하고 성읍은 심히 크고 강한 군대가 있음으로 올라 갈 수 없는 곳이라 한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성도 여러분 ! 가나안 땅을 점령하는 일과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은 하나님께 직접 하십니다 . 그런데 이 일을 하시기 전에 ...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하매 여호와께서 이 말을 들으셨더라 ”( 민 12:2)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을 한다 . 그 이유를 구스 여자를 택하였기 때문이라 하는데 뒤에 있는 말씀을 보면 다른 것이 이유가 있다 .   미리암은 여 선지자 자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하기도 했었다 ( 출 15:19-21). 아론은 대제사장의 에봇을 입고 우림과 둠밈의 판결 흉패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도 했고 모세와 함께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기도 했었다 .   모세는 특수한 권위와 기능 곧 중보자의 자격으로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일을 한 것이다 . 직분과 사역에 대한 시기이었다 . 즉 , 모세의 권위에 도전을 한 것이다 .   모세에 대한 권위의 도전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함이 되어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게 된다 . 아론은 모세에게 나아와 어리석음을 용서하고 벌을 받지 않게 해 달라고 한다 .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를 한다 . “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하나님이여 원하건데 그를 고쳐 주옵소서 ”( 민 12:13)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중재자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신다 .   하나님은 중재자 모세의 들어 주시고 말씀하신다 . 자식이 그의 아버지 얼굴에 침을 뱉으면 , 자식이 아버지를 저주함이 되므로 징계를 받아야 한다 .   하물며 미리암이 하나님 앞에 범죄하였는데 간과할 수 없으니 회개와 반성을 위하여 진영 밖으로 나가서 칠일 동안 있다가 성 안으로 들어오라는 가벼운 벌을 주신다 .   민수기는 하나님에게 반역하는 인간의 악함을 기록하고 있다 . 모세는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항변을 하였고 , 미리암과 아론은 시기와 질투로 모세를 대적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범죄하였다 .   사랑하는 엘파소열린문장로...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 여호와께서 들으시기에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진노하사 여호와의 불을 그들 중에 붙여서 진영 끝을 사르게 하시매 ”( 민 11:1)   민수기 11 장 ~14 장 까지는 하나님을 불신앙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이 나온다 . 지도자인 모세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원망이 나온다 .   이스라엘은 지금 광야에 있다 .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한다 . 만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알지 못하면 반역으로 나타난다 .   하나님의 생각과 사람의 생각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 난다 . 원망은 내 생각하는 기대와 다르기 때문이다 . 그러다보니 거부를 하게 된다 .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시다 . 일부러 그들을 골탕을 먹이거나 괴롭히게 하기 위하여 광야의 길을 걷게 하는 것이 아니다 . 가나안 땅 주변의 나라의 정세를 살펴야 한다 .   가나안 땅에는 강대한 일곱 부족이 거하고 있다 .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면 먼저 하여야할 일이 일곱 부족을 물리치고 쫓아내어야 한다 . 그 정도의 실력과 수준이 되어야 약속의 땅을 들어가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   광야에는 길이 없다 . 그곳에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를 하여 주셔서 안전할 길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 물론 다른 평평한 길이 있다 . 왕의 길이라 불리는 길이 있다 . 그러나 그들이 그 길로 가게 되면 강대국의 칼에 죽임을 당하고 여자들과 자녀들을 빼앗기게 된다 .   그래서 그 백성이 가장 안전하게 갈 수 있는 길이 광야 길이다 .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한다 . 그런데 사람 안에는 죄성이 있어서 반역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   광야의 사건을 통하여 사람 안에는 하나님을 반역하는 마음이 있음을 알게 된다 . 그래서 부패된 성품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함이 등장...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니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니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 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 고후 4:16)   주일 설교를 통하여 하나님 중심의 믿음과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 종교의식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 우리들이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도 사람을 중심으로 하는 것들이 있다 .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은혜는 날마다 새롭게 해주시는 은혜이다 . 거듭나고 새롭게 된다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깨달음으로 인한 성품의 변화이다 .   우리들이 사용하는 단어 가운데 ‘ 상처 ’ ‘ 회복 ’ ‘ 치유 ’ 라는 것들이 있다 . 성경에서는 회개 , 깨달음 , 돌이킴이라는 단어가 있다 .   사람이 중심이 된다함은 , 내가 중심이 되어 자신이 듣기 싫은 말을 들었을 때에는 상처를 받았다고 한다 . 그러나 성경에서는 찔림이 되어 회개의 자리로 나아간다 . 그 자리는 예수 그리스도 앞이 된다 . 이 둘의 차이는 누구 앞이며 , 누가 기준이 되느냐가 된다 .   회복과 치유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이다 . 자신의 감정이 본래의 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 그러나 새롭게 되었다는 것은 새 사람이 되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말한다 . 죄를 씻음을 받고 거룩한 하나님 앞으로 나와 화목한 관계이며 평강을 얻었다는 것이다 .   성경적인 믿음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다 .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 . 그러면 그분의 마음을 닮아서 인격에 변하게 된다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감정 변화에 따라서 은혜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람의 생각으로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 된다 .   그분의 성품을 닮으면 어떠한 조롱과 핍박을 당하여도 참고 인내할 수 있다 . 참 신자에게는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견딜 수 있는 믿음이 있다 .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신데 유대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