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거짓과 음모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을 바라보면 깊은 한숨만 나온다 . 깊은 한숨이 잦아지다가 보면 낙심이 되어 사기가 떨어지게 된다 .   세상을 올바로 바라볼 수 있는 시기는 삶의 육십 줄이 넘어야 된다고 생각된다 . 노동력에서 제외되고 , 몸도 쇠퇴해지고 , 주변에 있던 사람들도 떠나가는 시기이다 .   자신을 돌아봐도 그렇고 세상을 바라봐도 그렇다는 생각이다 . 외로움과 쓸쓸함이다 .   이러한 문제가 당면하였을 때에 해결할 수 있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 술이나 약물을 통하여 고통을 잊으려 하기 보다는 내면의 외로움을 새로운 기쁨으로 채워야 한다 .   내 마음의 눈을 새롭게 하는 것이다 . 죽음과 고통이라는 가치관으로 바라보면 절망만이 보인다 . 그러나 고난과 고통을 넘으면 새로운 세계가 있음을 깨닫게 되면 소망이 생기게 된다 .   가치관의 차이는 누구나 절망과 고통 속에 살지만 그 속에서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가에 대한 차이이다 . 고통과 죽음을 넘으면 영생의 세계가 있는데 그것을 지금부터 누리며 사는 것이 소망의 믿음이다 .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주시는 ‘ 생명수 ’ 라 한다 . 천국에도 길 가운데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생명나무의 열매가 풍성하다 . 즉 , 영생의 기쁨이 충만한 곳이란 말이다 .   생명수의 기쁨을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면 된다 . 그러면 이전에 느끼지 못하였던 기쁨과 희열을 느낄 것이다 .   하나님의 말씀은 암기를 하거나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 행하여야 구원의 기쁨을 얻는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가 되어야 한다 .   “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 요 7:38)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 영적전쟁 ‘ 은 참 신자들만 이해할 수 있는 단어이다 . 영적전쟁을 하기 위해서는 ’ 하나님 말씀의 전신갑주 ‘ 를 입어야 한다 .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아니하고 , 교회 안에는 하나님의 의가 아닌 인간의 생각을 가진 자들과 싸움을 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   하나님의 전심갑주는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다 . 여섯 가지의 전투장비가 인간의 것이 아니다 . 즉 , 하나님의 선하심을 입어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인간의 생각과 싸워야함을 말하는 것이다 .   그래서 영적전쟁을 선과 악의 싸움이요 , 진실과 거짓의 싸움이라 한다 . 오직 선한 것은 하나님에게만 있다 . 타락한 인간들로부터 나오는 것은 거짓이다 .   독수리가 떠 있는 곳에는 썩은 시체가 있다 . 세상의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거짓과 살인을 위한 음모가 있다 .   오늘도 우리들은 입으로 여러 인간을 죽였다 . 내 썩은 마음에 여러 인간을 말로 죽이지 않고는 내가 죽을 것은 같은 심정이었다 . 그 인간들을 말로 살인을 한 후에야 내 마음이 편하여졌다 .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음으로 악함과 부패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고 죄의 유혹을 물리칠 수 있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에서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 . 모든 죄는 거짓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   교회 안에서 거짓말하는 자는 누구인가 ? 하나님의 생각이 아닌 인간의 생각으로 말하고 주장하는 자이다 . 이러한 자들은 결국에는 교회 안에 거짓말을 잔뜩 퍼트려 놓고 급히 떠나며 이 교회 저 교회로 옮겨 다니는 특징이 있다 .   “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들이 모일 것이니라 ”( 마 24:28)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참된 신자가 되면 거룩한 인격체가 된다 . 생각하는 것이나 감정을 억제하는 자제력이 뛰어나며 의로운 행동을 하는 자가 된다 .   교회 안에는 이러한 사람들이 있고 이것을 훈련하는 곳이다 . 그런데 신자라고하면서 교회 안에서 상처를 너무나 많이 받았다고 한탄하는 사람들이 많다 .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서는 서로에게 상처를 주기도하고 받기도 하는 곳이다 . 그런데 이기적인 사람들은 자기가 상처받은 것만을 기억하지 남에게 상처를 준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   이기적인 사람들의 특징은 본인 스스로가 의롭다고 생각을 하는 자들이다 . 자기 말이 법이고 의롭다고 생각을 한다 . 그래서 자기의 말에 다른 의견을 제시하면 자기를 공격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   그런데 이렇게 약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다는 것이다 . 성경의 가르침은 속사람을 강건하게 하여 타인이 주는 상처를 오히려 이기는 힘을 배우는 곳이다 .   성경의 가르침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을 가르치는 것이다 .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이 주는 고난을 어떻게 이겼는지를 증언하고 있다 . 항상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인한 승리이다 .   아버지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는 곳마다 함께 하셨고 , 성령도 함께 하셨다 . 이것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는 장면이 성경에 있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영광을 우리에게도 주셨다 . 우리들의 일상의 삶에서도 삼위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교회의 가르침은 삼위하나님의 역사하심에 대한 확신을 전하여야 한다 . 이것이 성경적인 교회임을 생각하여야 한다 .   “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 하나님의 은혜에는 언약은혜와 행위언약이 함께하고 있다 .   쉽게 말하면 애굽 땅에서 그들을 구원하고 행위언약인 율법을 주셨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들은 ’ 믿으면 살고 , 행하면 사는 ‘ 은혜이다 .   하박국 선지자의 고백으로는 “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이다 . 야고보서 기자의 주장으로는 ’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 ‘ 이라 하였다 .   천박한 복음주의자들의 주장은 은혜와 율법을 대립시켜서 설명을 해왔다 . 그러나 그렇지 않다 . 은혜로 구원함을 받은 자들은 반드시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   사도요한은 요한 1 서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지 않는다고 선포를 하였다 .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는 자는 모세가 고발을 한다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 그의 계명을 지키지 못한 자들은 언제든지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면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은혜의 보호 약속을 갖고 있다 .   하나님은 율법의 근본정신과 제도를 세상에 펼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것이다 . 그의 나라는 정의로운 시민들을 세우고 사회 정의를 실천함으로 인하여 평강과 긍휼이 넘치는 곳이다 .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흘려 세우신 몸된 교회는 율법을 배우고 순종을 배워서 사회정의를 위하여 힘써야 한다 .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요 , 하나님의 열심이다 .   ” 내가 너희를 아버지께 고발할까 생각하지 말라 너희를 고발하는 이가 있으니 곧 너희가 바라는 자 모세니라 “( 요 5:45)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참 신자들의 소망은 ‘ 하나님의 안식 ’ 에 참여하는 것이다 . 하나님의 안식이란 ?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지 않았다 . 그리고 더 나아가 불신을 하고 하나님께 대항을 하였다 .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마음이 편치 않으셨다 . 그래서 하나님이 안식을 취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신 것이다 .   구속의 은혜는 죄에서 방황하고 고통받고 있는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용서해 주시기 위함이다 . 또한 하나님은 스스로 안식을 위하시는 방식이다 .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과 더불어 평안을 누리는 자가 된 것이다 .   지금도 예수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케 하는 자들이다 . 누가복음 15 장에서 등장하는 탕자와 같다 . 아버지는 방황하고 고생하는 아들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 .   그 아들이 돌아오기를 날마다 상거 밖에서 기다린다 . 탕자가 집에 돌아온 후에 아버지는 기쁘고 즐거워서 잔치를 베푼다 .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다 .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마음을 근심하신다 . 또한 성령은 탄식을 하신다 . 계명을 지키지 못함을 보고 성령께서 안타까워하신다는 것이다 .   ‘ 하나님의 안식 ’ 에 참여한 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므로 인하여 성부 , 성자 , 성령하나님을 기쁘게 한다 .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하나님의 약속이 복이 임하는 것이다 .   성읍에서도 들에서도 복을 받고 , 너와 자손들과 종들과 집에서 기르는 가축들에게도 복이 임하고 , 광주리도 떡반죽 그릇도 복을 받고 , 나가도 복을 받고 들어와도 복을 받는 것이다 . 이것이 ‘ 하나님의 안식 ’ 에 참여한 자들의 복이다 .   “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신자들이 받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 이것은 우리가 구원의 은혜에 대하여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인정하는 고백이다 .   ‘ 이신칭의 ’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 의롭게 되었다함을 말한다 . 이 은혜 속에는 은혜언약과 행위언약이 함께 있음을 기억하여야 한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구원되어 시내산 앞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는다 . 구원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언약백성이 된다는 것이다 .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이다 .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신다 . 성령께서 우리에게 새로운 마음을 주신다 . 우리 육체의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주시는 것이다 . 부드러운 마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에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마음이다 .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 안에 있는 자들은 성령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다 . 그러므로 하나님을 말씀을 깨닫고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리로 나아가게 된다 .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나님의 약속인 “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 는 은혜를 받게 되는 것이다 . 이 말씀을 요한계시록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   “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상속으로 받으리라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 계 21:7)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동상이몽 ’ 같은 행동을 하면서 속생각은 다른 것을 말한다 . 요즘 TV 대담 프로를 보면 같은 시대에 살고 있지만 속생각은 너무나 다름을 느끼게 된다 .   교회 안에도 같은 현상이다 . 같은 성경을 보면서도 , 한 주님을 믿으면서도 너무도 생각과 행동이 다르다 .   교회 안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 부자가 되기 위해서 , 성공을 위하여 , 사회적 지위를 위하여 또는 마음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한 사람들이 모여 있다 . 그런데 주님께 의지하고 있다는 것은 공통점이다 .   이러한 형상은 초대교회 안에도 있었던 현상이다 . 교회 안에서 저마다 큰 소리를 치고 있다 . 그래서 사도들은 서신서를 보냈다 .   교회 안에 참신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이다 . 만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았으면 우리의 중보자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면 된다고 하였다 .   왜냐하면 하나님의 계명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 더 나아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는 구원을 받지 못한 자라고 하였다 . 얼마나 무섭고 떨리는 말씀인가 ?   지금의 신자들 가운데 하나님의 계명과 상관이 없이 믿음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 교회 안에 있지만 주님을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이 지상의 교회의 모습이다 .   “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는 주 안에 거하고 주는 그의 안에 거하시나니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우리가 아느니라 ”( 요일 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