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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불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 16:20)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불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 16:20)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을 잡아 죽이기에 힘썼다. 그래서 삼손이 가는 곳에는 저들이 있었다. 삼손은 소렉 골짜기에 들릴라라 이름하는 여인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래서 불레셋 사람들은 삼손의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지를 알기를 원했다. 낙타의 새 턱으로 천명이나 죽이는 능력이 궁금하였던 것이다. 그리하여 들릴라를 매수하여 그 힘의 근원을 알고자 하였다. 그녀는 사랑이라는 조건으로 삼손에게 비밀을 알아내려한다. 그러나 삼손은 세 번이나 진실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그러자 들릴라는 더 귀찮게 말고자 하여 삼손은 번뇌한다. “날마다 그 말로 그를 재촉하여 조르매 삼손의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삿 16:16) 삼손은 마침내 힘의 근원이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음에 있음을 말해 준다. 그리하여 여인은 삼손의 머리를 밀어 버린다. “들릴라가 이르되 삼손이여 불레셋 사람이 당신에게 들이닥쳤느니라 하니 삼손이 잠을 깨며 이르기를 내가 전과 같이 나가서 몸을 떨치리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이미 자기를 떠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더라”(삿 16:20) 블레셋 사람에게 잡힌 삼손은 두 눈을 뽑히고 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되었다. 그는 자신이 나실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잊었던 것이다. 그러고 난후에 삼손은 다시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한다. 즉 머리털이 자시 자라기 시작하였다.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삿 16:22) 죽기 마지막까지 블레셋 신을 의지하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삼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 여호와여 구하옵나니 나를 생각하옵소서 하나님이여 구하옵나니 이번만 나를 강하게 하사 나의 두 눈을 뺀 블레셋 사람에게 원수를 단번에 갚게 하옵소서 하고”(삿 16:2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삼손을...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삿 15:18)

  “삼손이 심히 목이 말라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주의 종의 손을 통하여 이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나 내가 이제 목말라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니”(삿 15:18) 삼손에 관한 이야기는 영화로도 제작이 되어 남녀 간의 사랑 이야기로 소개되곤 하였다. 그러나 성경이 전하는 말씀은 그렇게 단순한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압제를 당하고 있다. 그것도 무려 사십 년 동안 가장 악한 민족에게 말이다. 그런데 블레셋에게로부터 구원을 삼손을 통하여 이루시겠다고 하셨다.  “보라 네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의 머리 위에 삭도를 대지 말라 이 아이는 태에서 나옴으로부터 하나님께 바쳐진 나실인이 됨이라 그가 불레셋 사람의 손에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시작하리라 하시니”(삿 13:5) 그런데 이스라엘이 블레셋으로부터 압제를 피하게 된 것은 다윗 왕 때에 이를 때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전하시고자 하는 뜻은 무엇인가? 택함을 받은 백성들이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기까지는 핍박을 당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압제를 당하지만 꺾이지 아니하고 망하지 않음을 말한다. “무명한 자 같으나 유명한 자요 죽은 자 같으나 보라 우리가 살아 있고 징계를 받는 자 같으나 죽임을 당하지 아니하고”(고후 6:9) 삼손이 위기를 당할 때마다 여호와의 영이 함께 하신다. 블레셋 사람을 죽이고 유다 사람들에게 결박을 당하여 적군에게 넘겨질 때에 여호와의 영이 역사하신다. 그리하여 결박 당한 밧줄이 불탄 삼과 같이 떨어지고 나귀의 새 턱빼를 들고 천명이나 죽인다.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부고 손을 내밀어 집어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삿 15:15) 천명을 죽인 삼손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이르되 주께서 종의 손을 통하여 큰 구원을 베푸셨사오니 이제 목이 말라서 죽어서 할례받지 못한 자들의 손에 떨어지겠나이다 하였다. 그러자 여호와 하나님께서 즉시 물을 터뜨리셔서 물을 마시게 하고 정신을 들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을 엔학고...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삿 14:6)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삿 14:6) 삼손이 딤나에 내려가서 블레셋 사람의 딸들 중에서 한 여자를 보고 아내로 삼고자 한다. 그러나 그의 부모들은 이방여자와 결혼을 하는 것을 반대한다.  그런데 이 일이 통하여 나실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또한 여호와께서 택함을 받은 백성을 어떻게 지켜 주시는지를 알 수 있다. 삼손은 그의 부모와 함께 여인보기 위하여 딤나로 내려간다. 가는 길에서 젊은 사자를 찢어서 죽인다. “여호와의 영이 삼손에게 강하게 임하니 그가 손에 아무것도 없이 그 사자를 염소 새끼를 찢는 것같이 찢었으나 그는 자기가 행한 일을 부모에게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삿 14:6) 얼마 후에 여인을 데려 가기 위하여 내려가는 길에 젊은 사자의 주검을 보았다. 그런데 그 주검 안에 벌 떼와 꿀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삼손은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도 먹게 하였다. “손으로 그 꿀을 떠서 걸어가며 먹고 그의 부모에게 이르러 그들에게 그것을 드려서 먹게 하였으나 그 끌을 사자의 몸에서 떠왔다고는 알리지 아니하였더라”(삿 14:9) 결혼 잔치를 벌이며 그곳에 삼손의 친구들을 데려와 수수께끼를 낸다. 그는 자신이 경함하였던 것으로 문제를 낸다.  수수께끼는 히브리 시의 형태로 평형법에 의한 것이다. 즉 ‘먹는 자’와 ‘강한 자’는 같은 것을 지칭하면서 동시에 서로의 내용을 보충하는 한다. ‘먹는 것’과 ‘단 것‘도 같은 의미이면서 서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밝혀 준다.  그러므로 먹는 자중에 가장 강한 자는 사자가 된다. 또한 먹는 것 중에 가장 단 것은 꿀이 된다. “삼손이 그들에게 이르되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 하니라 그들이 사흘이 되도록 수수께끼를 풀지 못하였더라”(삿 14:14) 즉 가장 강하신 분이 죽어서 기쁨과 즐...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삿 13:25)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영이 그를 움직이기 시작하셨더라”(삿 13:25) 삼손이 출생하는 내용이다. 단 지파 사람 가운데 마노아라 하는 사람이 있는데 아내 사이에 자녀가 없었다. “소라 땅에 단 지파의 가족 중에 마노아라 이름하는 자가 있더라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므로 출산하지 못하더니”(삿 13:2) 그런데 여호와의 사자가 마노아의 아내에게 나타나 임신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라 한다. 그러면서 포도주와 독주와 어떤 부정한 것도 먹지 말라 하였다. 그리고 아들을 낳으면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아야 할 것이며 나실인으로 키워야 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이스라엘을 블레셋에서 구원을 하게 할 것이라 한다. 이 말을 들은 아내는 급히 남편에게로 가서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말씀하신 것을 말한다. 그의 아내도 말씀하신 이가 여호와의 사자임을 알지 못하였다.  그래서 마노아는 여호와께 기도를 한다. 주께서 보내셨던 하나님의 사람을 다시 보내셔서 우리가 낳을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를 가르치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마노아의 기도를 들으신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다시 보내셨다. “하나님이 마노아의 목소리를 들으시니라 여인이 밭에 앉았을 때에 하나님의 사자가 다시 그에게 임하였으나 그의 남편 마노아는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삿 13:9) 여인은 급히 달려 남편에게 달려가서 하나님의 사자가 오셨음을 알린다. 그리하여 여호와의 사자와 대화를 하며 말씀하시는 이가 여호와의 사자인가를 확인한다. 마노아가 염소 새끼와 소제물을 가져다가 바위 위에서 여호와께 드릴 때에 기적이 일어났다. 불꽃이 제단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간 것이다.  이 장면을 본 마노아와 그의 아내는 땅에 얼굴을 대고 엎드린다. “불꽃이 제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제단 불꽃에 휩싸여 올라간지라 마노아와 그의 아내가 그것을 보고 그들의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리니라”(삿 13:20) 그들은 하나님을 보았는데 죽지 않았다. “그의 아내에게 이르...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 16:12)

  “그제서야 제자들이 떡의 누룩이 아니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교훈을 삼가고 말씀하신 줄을 깨달으니라”(마 16:12)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대속의 죽음으로 이루어진 구원의 은혜가 있다. 그것은 죄에 대하여 죽고 말씀 앞에 산 자로 세우기 위함이다. 이와 같은 구원의 은혜는 하나님의 선물로 우리들에게 주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구원에 대하여 스스로 자랑할 것이 없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에게 구원의 은혜를 주시는 목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2:10) 하나님은 택함을 받은 자들이 선한 일을 하기 위하여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셨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 5:17) 어떻게 새로운 피조물로 창조하셨는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새 생명이 들어갔다는 것이다. 그것은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다고 한다(고후 4:6) 그러므로 새 생명을 얻은 자는 하나님의 생명을 얻은 자로서 그분의 성품과 선함을 알고 행하는 자리에 이르게 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2:14) 선한 일을 하게 하기 위함이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선하신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면 아버지께 사랑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 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마 16:6-7)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 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마 16:6-7)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나 지금이나 같은 것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어떻게 믿느냐는 것이다. 본문에서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과 제자들이 등장한다. 이들의 믿음이 어떠한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다.  먼저 바리새인들은 자기들은 구원자가 필요없다고 생각하며 오히려 하나님 나라가 임하면 상을 받는다고 한다. 사두개인들은 모세오경만 믿고 부활을 믿지 않는다. 그래서 이 땅에 살면서 적당히 타협을 하며 권력과 부를 따르며 산다. 이들의 공통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셔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하는 자들이다. 왜 그런가 하면 바리새인들은 스스로 거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기 때문이고 사두개인들은 영생과 부활을 믿지 않으므로 이 땅의 것에 만족하며 산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믿음을 지적하였다면 이제는 제자들의 믿음의 상태를 지적한다. 즉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을 하고 있는가? 그들의 생각은 세상에 떡을 나누어 주러 오신 분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제자들이 건너편으로 갈 새 떡 가져가기를 잊었더니”(마 16:5) 바리새인과 사두개인과 제자들의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으실 이유가 없다는데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루시기를 저들의 누룩을 조심하라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 제자들이 서로 논의 하여 이르되 우리가 떡을 가져오지 아니하였도다 하거늘”(마 16:6-7) 그 이유는 제자들은 오병이어와 칠병이어의 기적을 보고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우리들이 받은 구원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친히 만들어 가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롬 3:1)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롬 3:1)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율법과 할례를 갖고 있으므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면할 것이라 생각하였다. 즉 구원을 이미 얻었다고 생각을 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기 위한 것이고 죄사함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께 나오게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에게 율법과 할례를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 즉 유대인의 유익은 먼저 회개할 수 있어서 약속된 복을 먼저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이 어떠한 존재인지를 광야 40년 동안을 통하여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은혜를 누리면서도 불평과 하나님을 시험하는 악한 존재라는 것이다. 율법은 무엇인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다스리는 통치이다. 즉 하나님과 피조물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셨지만 최종권위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선악과를 주셨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하여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리로 가게 하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과 율법으로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은혜를 약속하였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을 가지고는 있었지만 순종하지 않았다. 새 언약을 약속하시면서 율법을 마음에 새겨주신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는 은혜와 자죄로 형성이 된다. 죄를 깨닫고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 관계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약속하는 최고의 복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을 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 된다. 관계로 인하여 형통의 길을 간다는 것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시 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복이 무엇인지를 아십니까? 그분과 관계를 맺는 것이며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이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삿 12: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보다 앞서 요단 강 나루턱을 장악하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하건대 나를 건너가게 하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이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삿 12:5) 옛 속담에 ‘너 오늘 임자 만났다’하는 말이 있다. 즉 제일 강한 상대를 만났다는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깐족거리며 잘난체를 하던 지파였다. 이전에 기드온이 미디안과 전쟁에서 승리하였을 때에 시비를 걸었다. 그 이유는 왜 전쟁에 나갈 때에 알리지 않았냐는 것이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찌 됨이냐 하고 그와 크게 다투는지라”(삿 8:1) 그런데 이 버릇을 버리지 못하고 오늘 입다에게도 똑 같이 행한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쪽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하니”(삿 12:1) 기드온은 에브라임 지파에게 좋은 말을 하여 달래주었다. 그러나 입다는 에브라임 지파 못된 것에 손을 본다.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으며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무찔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으라”(삿 12:4) 그래서 요단 강 나루터에서 강을 건너고자 하는 사람에게 ‘쉽볼렛’이라 발음하여 보라 한다. 그런데 만일 ‘십볼렛’이라 하면 죽이라 한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쉽볼렛’이란 발음을 할 수 없었다. 즉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별하기 위한 방법이었다. 그리하여 그날에 요단 강 나루터에서 입다와 길르앗 사람들의 손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죽은 자의 수가 사만 이천명이었다. “그에게 이르기를 쉽볼렛이라 발음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그렇게 바로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 발음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