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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말씀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 12;13)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 12;13) 안식일에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이 논쟁을 벌이고 있다. 먼저 바리새인들의 주장은 안식날의 규례대로 향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안식일에 선한 일과 생명을 살리는 일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면서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은 것을 보고 정죄하였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 12:2)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 하시며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마 12:7) 저들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며 공격을 하는 것이다. 즉 오른손 마른 자는 저주를 받은 자이므로 자비를 베풀 수 없다고 생각을 한 것이다. 그래서 고쳐주는 것을 거부하면 자비가 없는 예수님이 되고 병을 고치면 안식일을 범한 자가 됨으로 죽일 수 있는 조건들을 채워 가려한다. 결국에는 병든 자의 손을 고쳐 주자 저들은 모의를 한다.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마 12:14)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른 손 마른 자에게 하시는 말씀이 ’손을 내밀라‘ 한다. 다른 병자를 고치실 때와는 달리 몸에 손도 대지 않으시고 오직 말씀으로만 하셨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 옳다는 확실한 증거를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손 마른 자의 즉각적 순종으로 고침을 받았다. 여기서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다. 손 마른 자는 손을 내밀 수가 없다.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마 12;13) 오른 손 마른 자는 예수님의 명령에 대해 순종과 믿음의 고백으로서 그가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생명의 말씀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10)

  “한쪽 손 마른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10) 인자가 안식일에 주인이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뜻과 목적에 새롭게 되어야 함을 말한다. 즉 죄인에게 새 생명을 주어서 사람답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일하시는 것은 죄인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키는 것으로 죄인을 사망과 고통에서 구원하여 새 생명을 주신다. 즉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 주심은 죄를 사하여 주시고 생명을 주심으로 인하여 인간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켜 주는데 있다. 바리새인들은 오른손이 마른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로서 고쳐주면 안 된다고 생각하였다.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왕은 교만하여 제사장이 하는 일인 제사드리는 일을 직접하였다. 그 일로 인하여 여로보암 왕은 제단에서 편 손이 말라 거두지 못하였다. “여로보암 왕이 하나님의 사람이 벧엘에 있는 제단을 향하여 외쳐 말함을 들을 때에 제단에서 손을 펴며 그를 잡으라 하더라 그를 향하여 편 손이 말라 다시 거두지 못하며”(왕상 13:4)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는 것을 놓고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냐는 질문이다. “한쪽 손 마름 사람이 있는지라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물어 이르되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마 12;10) 저들의 생각은 안식일에 법규를 지키는 데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적극적으로 선을 행하여야 한다고 한다. 즉 안식일은 선을 행하기 위하여 존재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선은 불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일이다. 그래서 안식일에 주인되시는 예수님에게는 안식일에 손 마른 자를 고치시는 것은 선한 것이 된다는 것이다. 바리새인의 주장과 예수님의 말씀을 정리하면 이러하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 날에도 율법을 지켜야 한다. 반면에 예수님께서는 다만 규정된 법규만을 지키는 것을 넘어서 안식일에 선을 행하기 위하여 존재하는가 아니면 악을 행하기 ...

생명의 말씀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의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는데 주의 말씀으로 전하고 있음을 확인하여야 한다.  재림의 날에 대해서는 아버지 이외에는 아는 자가 없다고 하였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살전 5:1)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갑자기 온다는 것이다. 산모가 아이를 낳을 때에 갑자기 산통이 오면서 출산을 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살전 5:3) 재림의 날을 기다리는 자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늘 믿음을 지키고 사랑으로 거룩함을 나타내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살전 5:8)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신 것은 고통을 주기 위함이 아니라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심이라”(살전 5:9) 예수 안에서 구원을 받은 자에게 십자가의 사랑을 주어 서로 사랑하게 한다. “그들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살전 5:13) 십자가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되 먼저 구원의 은혜가 임하도록 하고 약한 자와 소외된 자를 격려하고 붙들어 주라 한다.  모든 사람을 대하되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에게 항상 기뻐할 수 있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일이 넘치게 하겠다는 약속이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신자들을 구원하시고 주시는 복이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생명의 말씀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신 11:1)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여 그가 주신 책무와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키라”(신 11:1) 모세는 가나안에 들어가는 백성들에게 간절히 부탁을 한다. 그 땅에서 복을 받으며 오래 살기 위해서는 각종 절기와 제사를 지켜며 법도와 규례와 명령을 항상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항상 지켜야 한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을 중단하지 말라는 의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함은 그분의 말씀을 준행하려는 열심히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에 대한 오해가 있다. 찬양인도자가 두 손을 들고 ’하나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면 따라서 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다고 함은 그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 즉 여호와의 계명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눈 감고 두 손 들고 찬양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으로 믿으면 안 된다함을 말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다.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듣는 말은 내 말이 아니요 냐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니라”(요 14:24) 그동안 헌신과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 하여 가르쳤다. 그러나 진리의 말씀을 기준으로 하여 전한 말씀은 아니다.  하나님께 복을 받는 길은 오직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신 11:27)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지라도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나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신 11:28)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거짓 교사의 가르침이 속으시면 안 됩니다. 주님의 재림 때에 심판대에서 변명을 하셔...

생명의 말씀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 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신 10:1)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 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신 10:1) 여호와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은 백성들에게 친히 돌 판을 준비하시고 친히 써 주셨다. “여호와께서 시내 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출 31:18) 모세를 돌판을 들고 내려오다 백성들이 금송아지 앞에서 예배하며 춤추는 모습을 보고 돌 판을 던졌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사 백성들을 진멸하려 하셨다. 그때에 중보자인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절한 중보 기도로 용서를 빌었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너희를 멸하겠다 하셨으므로 내가 여전히 사십 주 사십 야를 여호와 앞에 엎드리고”(신 9:25) 그러자 여호와께서는 그들의 죄를 용서하여 주셨다. 이는 아무리 흉악한 죄일지라도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통회하며 용서를 구하는 자는 긍휼히 여김을 받는다는 사실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돌 판을 준비하고 나무궤를 만들어 올라오라는 것이다. “그때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기를 너는 처음과 같은 두 돌 판을 다듬어 가지고 산에 올라 내게로 나아오고 또 나무궤 하나를 만들라”(신 10:1) 즉 첫 번째 돌 판을 받았을 때처럼 다시 깨트리지 말게 하기 위함이다. 언약을 맺은 증거의 말씀이 있으므로 여호와와 백성 간에 약속이 있는 것이다. 이 일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은 목이 곧은 백성이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 이유는 수고의 대갓도 없이 출애굽을 하고 가나안 땅을 얻게 되었는데 여호와께 감사하는 마음과 순종이 없기 때문이다. 모세는 백성들에게 부탁을 한다. 여호와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확인해 보라는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복해 진다. “내가 오는 네 행복을 위하여 내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규례를 지킬 것이 아니냐”(신 1...

생명의 말씀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 9:6)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 9:6)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셨다. 그것은 불순종과 거역 그리고 어리석은 거만 따위를 나타내는 은유적 표현이다. 그 백성들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광야 40년의 역사를 통하여 회고한다. 그 이유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 다시는 어리석은 불신앙과 행동을 하지 말라는 교훈이다.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과 어리석은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자로서의 어떠한 역할을 하였는지를 소개하고 있다.  모세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그 증거로 두 돌 판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에 백성들은 자신들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고 머리를 숙였었다.  그 광경을 여호와 하나님께서 보셨다. “여호와께서 또 내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았노라 보라 이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신 9:13) 그래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고 다시 시작을 하시려 한다. “나를 막지 말라 내가 그들을 멸하여 그들의 이름을 천하에서 없애고 너를 그들보다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하리라 하시기로”(신 9:14) 그 백성들이 여호와의 맺은 언약의 말씀을 속히 떠나므로 모세가 두 돌판을 깨트렸다. “내가 그 두 돌판을 내 두 손으로 들어 던져 너희의 목전에서 깨뜨렸노라”(신 9:17) 그리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가나안 땅으로 올라가 하신다. 그러면 올라가는 길에서 진멸할 것이라 하셨다. 그러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함께 가시지 아니하면 올라가지 않겠다고 하였다. “너희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길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출 33:3) 중보자인 모세의 중재로 말미암아 다시 산에 올라가 두 번째 돌 판을 받아 오게 된다. 그리고는 다시 언약을 세운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

생명의 말씀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 8:16)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광야로 인도하셨다. 백성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온 양식이 떨어지자 불평이 시작되었다. 그때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하셨다. 만나를 내려 주시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시험하신 것이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신 8:2) 즉 이스라엘의 먹고 사는 문제가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있음을 말한다. 광야에서는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다. 그런데 양식이 하늘에서 내려왔다. 이것을 알게 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시험을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길을 걸으며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그것은 약속의 말씀에 순종할 때에 재물의 복이 임한다는 것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제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르려 하심이니라”(신 9:18) 여호와를 잊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왜 이렇게 하셨을까? 가나안 땅에 들어가 여호와 하나님을 잊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 신자들에게 고통과 환난이 다가올 때에 막연히 인내하며 참으며 기다리면 된다가 아니라 능력을 베푸시는 여호와를 기억하게 하기 위함이다. 광야에서 고통을 견디면서 불평과 불신 하였던 백성들이 있었다. 즉 순종한 사람들과 불순종한 사람들의 차이는 여호와 하나님의 능력을 기억하고 믿느냐에 있는 것이다. 우리들이 복을 받지 못함은 여호와의 능력을 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신 8:14상) 그런데 만일 여호와를 잊은 백성들에게는 여호와께서 멸망시킨 민족...

생명의 말씀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8)

  “인자는 안식일에 주인이니라 하시니라”(마 12:8)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에 주인이라는 말씀은 새 생명을 주어서 사람답게 하는 것이다. 즉 생명을 주는 구원을 말한다.  죄의 고통에서 구원을 받아 본래 사람으로서의 회복하는 것을 안식일을 통하여 보여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안식일 행한 일곱 표적이 있다. 사람의 모양을 갖고 있지만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고치셨다. 회당에서 더러운 귀신을 쫓아냈고, 제자들이 밀을 자르고, 오른손 마른 자를 고쳤고, 38년된 걷지 못하는 사람을 일으켰고, 맹인의 눈을 뜨게 했고, 18년 동안 꼬부라진 여인을 펴 주었고, 수종병 환자를 고치셨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 안에 있으므로 인하여 생각과 몸을 더럽게 한다.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소리를 지며 나오는지라”(막 1:26) 안식일에 제자들이 밀을 자르는 사건을 통하여는 안식일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죄사함을 받을 수 있음을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마 12:6) 오른손 마른 자를 고치심은 몸을 자유롭게 움직이지 못하는 자를 본래의 모습으로 회복시킨다. “무리를 둘러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그리하매 그 손이 회복된지라”(눅 6:10) 38년된 병자를 고치심은 이스라엘 민족이 광야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거역하여 방황하다가 죽었다. 그러한 사람들도 구원을 받는다. “거기 서른여덟 해 된 병자가 있더라”(요 5:5) 맹인의 눈을 뜨게 했다고 함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요 9:3) 18년된 꼬부라진 여인을 펴 준 것은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 매인 아브라함의 딸을 매임에서 풀어주셨다.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생명의 말씀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마 12:1)

  “그때에 예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로 가실새 제자들이 시장하여 이삭을 잘라 먹으니”(마 12:1) 본문 말씀의 배경은 예수님과 제자들이 안식일에 길을 가다가 시장하여 밀밭에 들어가 이삭을 잘라 먹은 것으로 인하여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하게 된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에게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보고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당신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다”(마 12:2) 갈등의 요소는 율법의 말씀으로 이 문제를 해석을 할 것인가 아니면 바리새인들의 전통의 규례로 해석할 것인가에 대한 차이이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안식일에 지켜야 할 것은 노동과 수고로부터 쉼이며 육일 동안 창조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며 예배하는 날이다. 그리고 자유와 평안을 얻는 날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 그런데 바리새인의 전통의 규례에 의하면 39가지를 만들었는데 그것들을 지켜야 안식일을 지킨 것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마 15:9) 그래서 안식일에 밀밭에 들어가 이삭을 잘라 먹으면 안 된다고 한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 진설병을 먹은 이야기를 하신다. 그래도 죽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는 사랑의 계명을 실천하는 사랑과 자비의 성품을 좋아한다.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니라”(마 12:7) 즉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드리는 제사는 싫어하신다는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안식일을 규례와 전통으로 지키려한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자유와 참 평안을 주시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즉 생명을 살리고 풍성하게 하는 것임을 말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율법의 말씀을 누가 주셨습니까?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주셨습니다. ...

생명의 말씀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임한 것을 믿고 있으며 다시 오실 재림의 날을 믿고 있다. 살전 4장에서는 재림의 날까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끝으로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는지를 우리에게 배웠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살전 4:1) 여호와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서 신자들을 택한 것은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셨다.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이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벧전 1:15) 그러므로 재림의 날까지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먼저 음란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그리고 자기 아내를 사랑하여야 하고, 이방인들처럼 색욕을 따르지 말라 한다.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따르지 말고”(살전 4:5) 이웃을 사랑하는데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범위를 넘어서지 말아야 한다. 또한 이웃이 범죄하였을 때에 말씀을 따라 순종하여야 한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거룩한 자로 있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살전 4:7) 만일 이웃을 사랑하지 않고 이웃을 버리는 행위는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버리는 행위가 된다.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라”(살전 4:8) 재림을 기다리다가 주님의 다시 오심을 못 보고 죽은 것에 대하여는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께서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코 앞서지 못하리라”(살전 4:15) 주의 재림의 날에는 죽은 자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