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성경에서 말하는 어리석은 자는 자신이 어떠한 상태에 있는지를 모르는 자이다. 즉, 하나님을 의식하지 못하고 사는 자를 말하는 것이다.
탕자는 이방나라에서 방탕한 생활을 동경하였다. 그래서 아버지의 유산을 미리 받아서 이방나라에 가서 마음껏 즐겼다.
그러다가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 조차도 마음껏 먹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자 아버지의 집이 생각났다. 아버지 집의 종들도 이러한 상황에 처해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탕자는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하다가 아버지를 기억하지 못하였다함을 전하려는데 메시지의 초점이 있다.
우리들의 삶이 그렇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다가 보면 하나님을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이것이 어리석은 자의 삶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신자는 어떻게 살아야하는가? 지금 내가 하는 일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 아니면 슬퍼하시는 것인가로 확인을 하여야 한다.
우리를 낳아주신 육신의 부모의 마음이 이러하다. 자식이 몸을 망쳐가며 돈벌이를 한다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도 이러한 마음을 갖고 계신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부모의 마음을 생각하면서 적당히 하여야 한다. 부모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효도이고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 믿음이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이르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눅 15:17)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