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마 7:24)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 행하는 자는 반석 위에 세움과 같다. 예수님의 말씀은 한 개의 거대한 반석과 같지만 거짓 선지자들의 말은 모래알과 같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은 영생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래서 생명력이 있어서 능력을 나타내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히 4:12) 반면에 거짓 교사들의 말은 죽은 것 같아서 능력이 없고 바람에 날리는 모래와 같다는 것이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마 7:27) 거짓 교사와 따르는 자들의 실체가 폭풍우가 몰아치면 드러난다는 것이다. 즉 생명력이 없으므로 바람에 날려가는 풀과 같고 물을 떠내려가는 모래와 같음을 말한다. 본문에서 지혜로운 건축자와 어리석은 건축자가 있다. 지혜로운 건축자는 집을 짓는데 터가 든든하여야 함을 알며 장차 폭풍우가 올 것을 예비하는 짓는다. 반면에 어리석은 건축자는 이와 같은 것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신자들의 믿음 생활에서 언제 어떻게 시련과 고난이 임할지를 준비하여야 한다. 그러나 반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잡으면 폭풍우가 몰려와도 집이 무너지거나 떠내려가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거짓 교사의 가르침의 차이는 하나님의 생명에 있다. 우리 주님의 말씀은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이다. 그래서 생명력이 있는 것들은 거센 바람이 불면 흔들가리기는 하지만 꺽기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명력이 없는 나무는 바람이 불면 부러진다. 거짓 교사의 가르침으로는 고난과 환난을 견디지도 못하고 이기지도 못한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신자라면 수 없이 많은 설교를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영생이 있는...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 7:15) 거짓 선지자라 함은 넓은 길로 이끄는 자이다. 저들은 양의 옷을 입고 있지만 외식으로 겸손하여 사랑도 있다. 믿음의 모든 유익을 자신들의 교훈으로 약속을 한다. 그러나 저들의 가르침에는 생명의 성령님이 없고 다만 자신들을 위하는 야욕만이 가득하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를 노략질하는 이리와 같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를 구분하는 방법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른 교훈인가를 확인하여야 하고 행함에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야 한다. 저들의 가르침과 행위는 가시나무와 엉겅퀴와 같다는 것이다. 가시나무와 영겅퀴는 인간이 범죄한 결과로 나타났다.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네가 먹을 것은 밭의 채소인즉”(창 3:18) 반면에 포도와 감람나무의 열매는 의와 선함으로 택한 백성들에게 약속된 풍성함이다.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식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니리라”(시 128:3)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들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벌하신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마 7:19) 즉 이 세상에서 악한 사상의 소유자들은 다 심판을 받는다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들은 마지막 때에 더 극성을 부린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의 은혜를 주셨다. 그것은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을 이긴 것이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롬 8:2) 바른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아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한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하나님의 영생의 복이 임합니다. 달리 말하면 하나님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은 예수 그리...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 11:13)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임을 증언하였으니”(히 11:13) 히브리서 11장을 믿음 장이라 한다. 앞 절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야곱 이다. 그들이 갖고 있었던 믿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믿었던 것이다. 즉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셨음을 말한다.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떠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 11:10) 하나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진다. 그래서 믿음의 선조들이 믿고 계시하셨던 것은 예수 그리스도이다. 믿음의 선조들은 오실 메시야를 외치고 외쳤지만 정작 보지는 못하였지만 메시야가 오시기를 간절히 사모하였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믿음을 사는 동안에 여러 가지 시험이 있었다. 시험을 받을 때에도 천국의 소망을 사모하였다.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지금 히브리서의 수신자들이나 그리스도인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이러하다. 믿음의 선조들도 많은 시련과 고난이 있었다. 그들이 고난을 받으면서도 믿음을 버리지 않은 이유는 이 땅에서 사는 즐거움보다 천국에 이르러 하나님과 함께 사는 기쁨이 더 크다는 것이다. 모세는 애굽 왕궁에서 사는 것보다 하나님의 믿음을 따르는 기쁨으로 살았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히 11:26) 그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그리스도인들도 고난 가운데 있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사자의 밥이 되기도 하고, 칼에 죽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도 하였다. 이러한 고난을 당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약속하심을 굳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였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히 11:40)...

여덟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레 14:10)

  “여덟째 날에 그는 모든 털을 밀되 머리털과 수염과 눈썹을 다 밀고 그의 옷을 빨고 몸을 물에 씻을 것이라 그리하면 정하리라”(레 14:10) 레위기 14장은 나병 환자가 진찰을 받고 나았으면 정결 의식을 행하여야 한다. 먼저 1차 정결 예식을 치루고 7일이 지난, 그 다음날인 8일에 2차 정결 예식을 드린다. 1차 정결 예식은 진영 밖에서 제사장이 환자를 확인한 후에 나았으면 정결한 새 두 마리와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를 가져다가 새 하나는 흐르는 물위 질그릇 안에서 잡는다. 그리고 다른 새는 백향목과 홍색 실과 우슬초와 함께 흐르는 물위에서 잡은 새의 피를 찍어서 정결함을 받을 자에게 일곱 번 뿌린 다음에 들에서 놓아 준다. 물위에서 죽은 새는 일차적으로 나병환자의 부정을 속죄하기 위한 희생제물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이것은 죄인들의 짐을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을 상징한다. 그리고 들판에 날려보낸 새는 나병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얻음을 말하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모든 성도들이 죄와 사망으로부터 해방되어 영생을 얻게 된 것을 상징한다. 백향목은 곧게 위로 뻗어 품위가 있고, 강하며 광택과 향기가 있으며, 죽음을 극복한 생명의 능력을 상징한다. 홍색실은 붉은 피를 상징하는데 회복된 혈색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는 구원의 능력을 말한다. 우슬초는 박하초 식물로서 썩음의 악취로부터 해방되었음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이 된다. 1차 정결 예식을 마친 후에는 옷을 빨고 몸을 씻은 후에는 집으로 들어갈 수 없고 장막 밖에서 칠 일을 지내야 한다. 병자가 온전한 정결을 유지하는데 소요되는 날 수를 말한다.  칠 일이 되면 다시 옷을 빨고 몸의 털을 제거하고 목욕을 한다. 그리고 다음날 즉, 팔일째 되는 날에 여호와의 처소인 회막에 나아가 희생제사를 드려야 한다. 2차 정결 예식을 말하는 것이다. 팔일에 드린다 함은 죽었다가 살아남을 뜻하는 것으로 부활의 숫자이다. 나병환자가 드렸던 제사는 속건제...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이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레 13:3)

  “제사장은 그 피부의 병을 진찰할지니 환부의 털이 희어졌고 환부가 피부보다 우묵하여졌으면 이는 나병의 환부이라 제사장이 그를 진찰하여 그를 부정하다 할 것이요”(레 13:3) 레위기 13장에서는 나병에서부터 일반적인 피부병까지 소개하고 있다. 사람의 몸에 생긴 것과 가죽 옷과 가옥에 곰팡이가 발생해도 이를 나병이라 한다. 나병은 균에 의하여 피부라든가 점막, 말초신경, 내장 들에 발생하는 만성 전염병이다. 이 병에 걸리면 세균의 활동으로 눈썹, 빰, 코 및 귀에 결절이 생기며 심지어 손가락과 발가락이 떨어져 나가게 된다. 발병원인은 기후 및 환경 조건 그리고 위생학적인 부주의로 생긴다. 고대인들은 나병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형벌로 생각하였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나병을 저주의 결과라고 언급한 부분이 없다. 단지 미리암이 범죄했을때 하나님께서 형벌로 그 질병을 내리신 적은 있었다. “구름이 장막 위에서 떠나갔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민 12:10) 본문에서와 다른 곳에서 나병을 경계하는 것은 죄의 무서음을 지적하기 위함이다. 나병이 지니는 전염병, 치명성, 격리성 등은 죄의 무서운 속성으로 파괴성, 분리성, 전염성, 침투성 등을 생생하게 드러내 주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 성도들도 외형적이고 육체적인 나병을 통하여 내적이고 영적인 죄의 치명성과 무서움을 철저히 깨달아야 한다. 죄 가운데 있는 자들은 영적인 감각이 없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찔림이나 아픔이 없다. 이것에 대하여 바울은 양심에 화인 맞은 자라 하였다.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은혜로 말미암아 새롭게 된 자가 되면 영적인 감각이 생겨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죄에 대한 심각성과 두려움이 생기게 된다. 구약에서는 나병의 증세가 있는 자들은 제사장에게로 가서 진단을 받아야 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면에서 죄악의 상징으로 간주되어...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도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레 12:6)

  “아들이나 딸이나 정결하게 되는 기한이 차면 그 여인은 번제를 위하여 일 년 된 어린 양을 가져가도 속죄제를 위하여 집비둘기 새끼나 산비둘기를 회막 문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레 12:6) 산모가 아이를 난 후에 정결해 지기 위한 법이다. 남자 아이를 낳으면 칠일 동안 부정하여 타인을 만날 수 없고, 삼십 삼일 동안에는 성물이나 성전에 나갈 수 없다. 여자 아이를 낳으면 십사일동안 타인을 만날 수 없으며, 육십육일 동안 성전에 나갈 수 없다. “여자 아이를 낳으면 그는 두 이레 동안 부정하리니 월경할 때와 같을 것이며 산혈이 깨끗하게 됨은 육십육 일을 지내야 하리라”(레 12:5) 남자 아이를 낳은 산모는 사십일이 지나면 성소에 나가 정결예식을 드려야 한다. 드려야 할 제사는 번제와 속죄제이다. 사십일 이라는 시간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낳은 아들이 죽음을 향하여 가고 있음을 알게 된다. 여인의 몸에서 흐르는 피는 부정한 것으로 여긴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그 기간동안에 자신이 정결케 하기 위한 것이다. 사십일을 상징하는 것은 모세가 여호와에게 두 돌판을 받기 위하여 두 번이나 사십일 동안을 지냈으며, 엘리야는 천사가 공급하여 주는 음식을 먹으며 사십일 동안 걸어서 호렙산에 도착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사십일 동안 금식을 하면서 기도하셨다. 즉 시험의 기간으로 믿음을 단련하는 것이다. 번제를 드리는 이유는 출산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마음을 표현하기 위함이며, 속죄제는 출산한 여인의 부정을 제거하기 위함이다. 제물로는 번제에는 어린 양을 드려했고, 속죄제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집비둘기나 산비둘기로 드렸다. 즉 인간은 모두 죄인이라는 점에서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때에도 번제드렸다. “이는 주의 율법에 쓴 바 첫 태에 처음 난 남자마다 주의 거룩한 자라 하리라 한 대로 아기를 주께 드리고”(눅 2:23) 그리고 속죄제도 드렸다. ...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려고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라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레 11:45) 여호와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에 택함을 받은 백성들도 거룩하여야 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 땅에서 살다가 나왔다. 그곳에서의 습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이방사람들과 구별된 정결한 식생활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먹을 수 있는 짐승은 굽이 갈라지고 되새김질하는 것들이다. 소, 양, 염소, 사슴, 노루 등이다. 이 짐승들은 풀을 먹고 사는 깨끗한 짐승들로 다른 것들에 해를 끼치지 않고 조용하고 평화스럽다. 굽이 갈라졌다함은 세상과 구별이 된 것이고, 되새김질한다는 것은 성도들이 주님의 말씀을 늘 묵상함으로써 영적으로 소화기키는 것을 암시한다. 특히 땅에 기는 것이나 죽은 것에 대하여 심히 경계하고 있는 것은 죄로 인한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정한 것으로 간주되어 먹지 말라한 것이다. 반면에 하늘을 향하여 뛰어오를 수 있는 메뚜기와 베짱이, 귀뚜라미, 팟종이는 먹을 수 있다. 성경에서는 하늘의 것은 영적인 것으로 땅의 것은 세속적인 것의 상징으로 많이 쓰였다. 주검을 만지면 옷을 빨아야 하고 해지기 전에는 집에 들어올 수 없다. 그 시간 동안에 회개를 하여야 한다. 또한 주검과 접촉된 물건들은 부정한 것으로 여겼다. 이렇게 외적 부정을 제거하는 각 종 정결법의 교훈은 곧 내적이고 영적인 정결의 문제로 연결됨을 보여 주고 있다. 신약에서 더럽고 추악한 옷을 입은 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으로 거룩한 흰옷을 입히고 마음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선한 말씀을 주셨다. 즉 새포도주를 담기 위하여 새부대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위함이다. 왜냐하면 거룩하신 하나님은 거룩한 자들만 상대하시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께서 택함을 받은 백성들에게 정결을 요구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전에 마귀의 종이었을 때의 습성과 죄악으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