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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내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이스라엘 자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여호와께서 이 땅 주민과 논쟁하시나니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내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호 4:1) 북이스라엘의 죄악은 언약의 하나님과 계약을 위반한 것이다. 계약을 위반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고 진실과 인애도 없다. 진실은 여호와의 품성으로 말과 행동의 신실함을 나타난다. 인애라 함은 언약에 기초한 하나님의 사랑으로서 긍휼을 의미한다.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다고 함은 하나님과 교제를 통하여 얻는 체험적인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거짓신들을 섬기고 있음을 지적한다. 언약을 지키지 않음은 살인, 간음, 도둑질로 나타난다.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 4:2) 폭력은 폭력을 낳고 피는 피를 부른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내리는 재앙으로 인하여 동물들도 고통과 파멸을 당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피조물의 지배권을 부여 했는데 인간의 타락으로 인한 죄악을 징계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인간이 타락을 한다고 함은 하나님께 불순종함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죄악으로 인하여 징계를 받으면 땅이 황무하고 땅의 소산은 시들고 동물들은 굶어 죽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율법의 내용 가운데 있습니다.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신 28:51) 그리고 죄악 가운데 있는 백성들의 특징은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든지 다투지도 말며 책망하지도 말라 네 백성들이 제사장과 다투는 자처럼 되었음이니라”(호 4:4) 언약의 백성들이 징계를 받음은 율법을 지키지 않음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

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

  “주를 향하여 손을 펴고 내 영혼이 마른 땅 같이 주를 사모하나이다 (셀라)”(시 143:6) 다윗의 간절한 기도는 악인들을 보면서 악에서 구하여 주시고 시험에 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다. 간절한 심정을 마른 땅으로 표현하였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은혜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기도를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마 6:13)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자들은 의인이 된 것이다. 그래서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보호하시고 인도하여 주셔야 한다. 그렇게 하셔야 여호와께서 의로우신 하나님이라 찬양과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다윗의 시에서도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려달라고 한다. “여호와여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를 살리시고 주의 의로 내 영혼을 환난에서 끌어내소서”(시 143: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구원은 믿음의 법으로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용서를 구하고 은혜를 구하는 자에게는 반드시 들어주십니다. 왜 그럴까요? 그렇게 하여야 찬양과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들을 세상 끝까지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이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

  “여호와여 내 기도를 들으시며 내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주의 진실과 의로 내게 응답하소서”(시 143:1) 시편 143편은 다윗의 시이다. 시를 쓰게 된 배경은 사울 왕이나 압살롬의 악한 세력에게 둘러 쌓여 있을 때이다. 즉 악인들을 보면서 자신에게도 죄악이 있음을 알게 된 것이다. 다윗의 시를 통하여 확인하는 것은 죄 용서를 구할 때에 하나님의 품성에 호소를 한다. 그분의 품성은 진실과 의로 소개되고 있다. 즉 약속을 맺은 백성에게는 성실함과 인자함으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다윗은 악인들의 악함을 보고 자신에게도 죄악이 있음을 알게 됨으로 하나님의 의를 구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인들에게 전가된다. 하나님의 의를 전가 받아야 의인이 될 수 있음을 다윗의 시를 통하여 알 수 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런데 다윗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취되었다. 그것은 그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이루어졌다.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롬 3:25) 죄인들이 의인되는 믿음을 갈라디아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갈 2:1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의 은혜가 이미 우리들에게 임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더 이상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 된 것입니다.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롬 6:18) 여호와께서 이와 같은 은혜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값 없이 주셨습니...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하나님의 의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말한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의가 있어야 창조주 하나님을 경외하며 사람답게 살 수 있다.   율법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의인이 하나도 없음을 말하며 죄인이라는 것이다.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 3:10) 그래서 죄인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확인시켜 준다. 절망 가운데 있는 죄인들에게 복음은 좋은 소식이 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롬 1:17) 즉 하나님의 의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전가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롬 3:24) 그래서 의인이 되어서 여호와를 경외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을 칭의라고 하는데 법정적인 용어로서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께서 의인이라 선포함을 말한다. 택함을 받은 자들이 의인이 된 것은 하나님께서 선포하심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이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하면 재판장은 여호와 하나님이시고 변호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시고, 사탄은 죄인을 고소하는 참소자로 있고 그 앞에 죄인이 서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죄인들의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속하여 주신 것을 재판장에게 아뢴다. 그러자 재판장 되시는 여호와께서 죄사함을 인정하시고 의인으로 판결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의 의인이 된 것은 하늘 법정에서 선포함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취소되거나 변경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누가 무엇이라 하여도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있습니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 3:5) 호세아서 3장에서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하심으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말씀이다. 그들은 우상숭배를 하고 있지만 값을 치루고 다시 데려오라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의 처지는 종으로 값을 매기면 은 열다섯 개 정도이다. “내가 은 열다섯 개와 보리 한 호멜 반으로 나를 위하여 그를 사고”(호 3:2). 이스라엘에서 종을 사고파는 가격은 은 삼십이다. 그런데 은 열다섯을 주고 사왔다고 함은 그들의 처지가 참으로 딱함을 말하는 것이다. 간음한 이스라엘이 여호와께로 오지만 근신하며 인내하며 기다리라 한다.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에게 그리하리라 하였노라”(호 3:3) 즉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새 결혼을 하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로에서 돌아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중간기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우상을 섬기는 일은 없다고 한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많은 날 동안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다가”(호 3:4)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므로 구원을 얻고 마지막 날에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그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와서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와 그들의 왕 다윗을 찾고 마지막 날에는 여호와를 경외하므로 여호와와 그의 은총으로 나아가리라”(호 3:5)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초림하셨던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재림의 날에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열립니다. 성자 하나님이 신랑이 되시고 택함을 받은 자들은 정결한 신부가 되어 결혼예식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말씀을 통하여 정결한 신부 수업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신부 수업이라 신랑되시는 예수 그리스의 성품을 닮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시니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시니라”(호 2:23) 호세아서 2장은 호세아 자녀들의 이름으로 시작되는 저주가 축복으로 변하는 내용이다. 북이스라엘은 저주 가운데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넘기고 다투고 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들을 죄악의 길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가시로 길을 막으신다. “그러므로 내가 가시로 그 길을 막으며 담을 쌓아 그로 그 길을 찾지 못하게 하리니”(호 2:6) 여호와께서 주신 곡식과 새포도주를 바알에게 바치므로 이제는 가뭄을 통하여 고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절기를 통하여 누리던 기쁨도 없애겠다고 하신다. 그와 같은 고통을 주시는 이유는 죄에 대하여 회개를 하는데 목적이 있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호 2:15) 그리고 새 언약을 통하여 새로운 결혼을 하시겠다는 것이다.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호 2:19) 그렇게 됨으로 인하여 다시 하나님은 내 하나님이 되시고 나는 그의 백성이 될 것을 약속하셨다.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시니라”(호 2:2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습니다. 죄악에 빠진 백성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지혜를 나타내시는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을 은혜와 보호와 인도하여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백성들은 우상숭배의 자리로 나아가 스스로 파멸과 멸망의 길로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백한 백성들이 죄악의 길로 ...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 1:11) 호세아서는 북이스라엘이 정치 경제적으로 안정될 때에 배경을 갖고 있다. 그러다보니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혼합 우상숭배 사상이 팽배하였다. 여호와께서 호세아 선지자와 간음한 아내 고멜의 이야기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다. 아내와 자녀를 낳았는데 이름이 이스르엘(하나님께서 씨를 뿌리신다), 로루하마(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자), 로암미(내 백성이 아니라) 이다. 이름을 통하여 어떠한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알 수 있다. 북이스라엘이 패망을 할 것이며, 앗수르가 쳐들어오지만 긍휼을 얻지 못할 것이며, 그리고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북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BC722년에 앗수르에게 멸망하였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멸망하더라도 족장들과 맺은 약속은 패하지 아니하며 그 백성의 수효를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이 일은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다. “이에 유다 자손과 이스라엘 자손이 함께 모여 한 우두머리를 세우고 그 땅에서부터 올라오리니 이스르엘의 날이 클 것임이로다”(호 1:1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경제적으로 부요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여호와의 말씀을 귀히 여기지 않았습니다. 자신들의 생각으로 우상숭배를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무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묻기를 한 것입니다.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라”(호 4:12) 왜 북이스라엘이 망하였습니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기 때문입니다. “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내 제사장이 되지 못하게 할 것이요 네가 네 하나님의 율법을 잊었으니 나도 네 자녀들을 잊어버리라”(호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