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네가 나를 잊었고 또 나를 네 등 뒤에 버렸은즉 너는 네 음란과 네 음행의 죄를 담당할지니라 하시니라”(겔 23:35) 에스겔서 23장의 말씀을 읽으면 성경에도 이러한 말씀이 기록되어도 되는가 하는 마음이 생긴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 숭배한 것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내용이다. 그런데 그 비유가 음란한 여인이며 잘 생긴 남자에게 능욕을 당하는 장면이다.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가 결국에는 같은 길을 갔다. 그 길은 여호와를 버리고 애굽과 앗수르와 바벨론을 의지하며 따랐다. “그 이름이 형은 오홀라요 아우는 오홀리바라 그들이 내게 속하여 자녀를 낳았나니 그 이름으로 말하면 오홀라는 사마리아요 오홀리바는 예루살렘이니라”(겔 23:4) 형인 오홀라가 이방 나라를 의지하다가 먼저 멸망을 하였다. 그 멸망한 것을 보고도 동생인 오홀리바가 같은 길을 간 것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탄식을 하시는 것이다. 사람의 죄성은 죄악의 심판을 보아도 돌이키지 않는다. 그래서 죄악이 가득한 마음을 새롭게 창조받기 전에는 결단코 죄의 길에서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죄인들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분이 우리들의 마음 안에 들어오셔서 선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순종의 자리로 나가게 하십니다. 선과 악을 판단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분만이십니다. 이것이 마지막 날의 심판의 기준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선한 길을 가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고 가지 않겠노라 하였으니”(렘 6:16) 가나안 열두 정탐꾼들이 갔던 길을 생각해보면 선한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가나안으로 갔지만 나머지 열 명은 죽음을 당하였습니다.

네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

  “내가 네게 보응하는 날에 네 마음이 견디겠느냐 네 손이 힘이 있겠느냐 나 여호와가 말하였으니 내가 이루리라”(겔 22:14) 여호와께서 분노를 쏟으시는 때가 진노의 심판의 때이다. 사람들이 금속들의 지꺼기를 제거하기 위하여 풀무불에 녹임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녹인다는 비유를 쓰셨다. “은이 풀무 불 가운데에서 녹는 것 같이 너희가 그 가운데에서 녹으리니 나 여호와가 분노를 너희 위에 쏟은 줄을 너희가 알리라”(겔 22:22)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대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거짓을 예언하며 죄악을 눈 감아 주었다. “그 가운데에서 선지자들이 반역함이 우는 사자가 음식물을 움킴 같았도다 그들이 사람의 영혼을 삼켰으며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가운데에 많게 하였으며“(겔 22:25) 제사장들은 죄악은 하나님의 율법과 성물을 더럽혔다. 즉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을 구별하지 않았고 안식일을 더럽혔다는 것이다.   고관들은 의로운 자들을 피흘리게 하였다. 즉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였다는 것이다. 불의한 이익을 얻으려는데 권위를 사용하였다. 거짓 선지자들은 불의와 부정을 보고도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평안을 외쳤다. ”그 선지자들이 그들을 위하여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며 여호와가 말하지 아니하였어도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하였으며“(겔 22:28) 그래서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의 심판을 하시는 것이다. ”내가 내 분노를 그들 위에 쏟으며 내 진노의 불로 멸하여 그들 행위대로 그들 머리에 보응하였느니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2:3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선지자는 선지자의 책임과 사명으로, 제사장도, 고관들도, 백성들도 각각 맡겨진 책임과 사명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각 자가 맡은 사명의 자리를 확인하셔야 합니다. 왜 그런가 하면 그 자리에서 행한 대로 심판을 하시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

  “이스라엘 땅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를 대적하여 내 칼을 칼집에서 빼어 의인과 악인을 네게서 끊을지라”(겔 21:3)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와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즉 약속하신대로 행하셔야 한다. 그래서 약속한 대로 율례와 규례를 지키지 않은 자들에게는 공의의 심판을 하여야 한다. 심판의 도구로 바벨론을 사용하신다. 그것에 대한 비유로 칼집에서 칼을 빼었다고 한 것이다. “그 칼이 날카로움은 죽임을 위함이요 빛남은 번개 같이 되기 위함이니 우리가 즐거워하겠느냐 내 아들의 규가 모든 나무를 업신여기는도다”(겔 21:10)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의 칼에 죽고 그 나라의 왕은 포로로 잡혀간다. 그뿐만 아니라 고관들도 죽임을 당하며 높은 자리에서 내려오게 된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관을 제거하며 왕관을 벗길지라 그대로 두지 못하리니 낮은 자를 높이고 높은 자를 낮출 것이니라”(겔 21:26)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올바르게 살지 못하므로 인하여 여호와께 버림을 당합니다. 이것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마 5:13)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것도 아닌 것이 되어서 밖에 버리게 되는 것과 같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림을 당하여 바벨론 사람들에게 밟힘을 당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 족속아 내가 너희의 악한 길과 더러운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고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한 후에야 내가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20:44)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에는 인격과 성품이 담겨있다. 즉 정의와 공의를 시행하시는 분이시며 사랑과 긍휼이 많으신 분이다. 그렇게 판단하시고 행하셔야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다. 그러하신 여호와 앞에 택한 백성들이 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다. 그런데 그 백성들은 여호와와 맺은 약속을 행하지 아니하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그러면 약속한 대로 정의와 공의의 심판을 하여야 한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 거룩한 내 이름을 위하여 행하신다고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은 정의와 사랑이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을 심판하신 후에 남은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여 약속을 행하신다. “내가 내 손을 들어 너희 조상들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 곧 이스라엘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여 들일 때에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 알고”(겔 20:42) 즉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은 죄에 대하여 심판을 하셔야 하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자에게는 사랑과 자비를 베풀어 주신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이 함께 있는 곳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는 죄에 대한 심판과 용서가 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함은 죄에 대하여 심판을 받은 것이고 사랑을 받으므로 시온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은혜를 깊이 깨달은 신자들은 다시 죄악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의 죄는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하여 여호와의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우상을 따라 나의 규례를 업신여기며 나의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나의 안식일을 더럽혔음이라”(겔 20:16)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

  “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는도다”(시 130:5) 예수 그리스도가 메시야 이시다. 메시야가 오시는 이유와 목적을 이사야의 글에서 살필 수 있다. 그의 백성들을 죄사함과 영생의 복을 주시기 위항 초청이다. 그래서 값없이 와서 먹고 마시라 한다. “오호라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사 55:1) 여호와의 말씀은 값을 치루지 않아도 들을 수 있다. 성전에 들어와 헛된 것에 마음을 두고 헛 고생하지 말라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시 55:2) 영원하신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 들어야 약속한 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사 55:3)   이것이 다윗과 맺은 영원한 언약이다. 그 언약의 약속은 죄사함과 영생의 복이다. 이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다. 그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영접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와 죄사함을 받을 수 있고 영원하신 하나님 앞에서 영원히 함께 할 수 있는 복을 받은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의 연원한 약속의 말씀을 듣고 또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의 영혼이 풍요롭게 살 수 있습니다. COVID 사태로 인하여 교회에서 함께 하던 점심식사가 중단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전염병의 위험한 고비를 넘김으로 인하여 다시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점심을 거대하게 먹는 교회라 자랑을 하고 있습니다. 참으로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

  “여호와여 주께서 죄악을 지켜보실진대 주여 누가 서리이까”(시 130:3) 시편의 기자는 죄의 깊은 가운데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다.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고 싶지만 죄악으로 인하여 설 수 없음을 한탄하다. 그래서 죄인들의 죄사함을 용서 받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는 죄사함과 영생의 구원을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다. 이 은혜는 다윗과 맺으신 언약 가운데에 있다. 다윗에 하나님의 집인 성전을 건축하려 할 때에 여호와께서 내가 언제 집을 지어달라고 한 적이 있었느냐고 반문을 하신다. 오히려 내가 네 몸에서 날 씨를 세워서 성전을 세우시겠다는 것이다. 그 성전은 사람의 손으로 지은 성전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세워지는 것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이다. 네 친구가 중풍병자를 상에 누이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집의 지붕을 뚫고 상을 내렸다. 그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작은 자야 네 죄 사람을 받았느니라”(막 2:5하) 하셨다. 이 장면을 보았던 서기관들은 이것을 신성모독죄라 하였다.   서기관의 직분을 갖고 성경을 열심히 필사를 하였지만 정작 여호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모르는 서기관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장면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교회에 나오시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입니까? 본문의 말씀처럼 죄사함을 받고 풍성한 구원의 은혜를 받고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호와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됩니다. 그리고 값없이 주시는 영원한 약속의 말씀인 생명의 양식을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친구를 만나러 오거나 점심이나 먹으러 온다면 심각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제 주님 앞에서 서서 죄를 낱낱이 고하시고 죄사함을 받아야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행 21:4) 사도바울은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가 로마로 가려는 전도계획을 세웠다. 그런데 두로에 상륙하였더니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예루살렘에 올라가지 말라고 한다. 그 뿐만 아니라 아가보라는 선지자는 더 자세히 말한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이라 하며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우리에게 와서 바울의 띠를 가져다가 자기 수족을 잡아매고 말하기를 성령이 말씀하시되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이 이같이 이 띠 임자를 결박하여 이방인의 손에 넘겨 주리라 하거늘”(행 21:11) 제자들과 선지자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는데 바울은 그 뜻을 굽히지 않는다. 결국에는 제자들과 말리는 사람들도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하며 말리던 것을 멈춘다. “그가 권함을 받지 아니하므로 우리가 주의 뜻대로 이루어지이다 하고 그쳤노라”(행 21:14)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사도바울은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을 기뻐하였습니다. 즉 주인이 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것이 종으로서의 자세입니다. 바울의 제자들과 선지자 아가보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그곳에는 바울을 박해하며 죽이려는 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의 권유를 물리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갑니다. 왜 그렇게 합니까? 그것은 주인의 뜻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께서 바울을 택하였던 목적이 있습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행 9:15) 그리고 제자들이 성령에 감동되어서 바울에게 고난과 핍박이 있음을 알려 주어서 더 기도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하게 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주장은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것도 관원들에게 잡혀서 감옥에 가는 것도 주인의 뜻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바울의 계획대로 로마에 가장 안전하게 가는 길이 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