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목회자들은 주로 믿음을 소유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런데 가끔 황당하게 하는 자들이 있다. 소위 기도하는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자들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의 공통점은 교회가 정한 예배에 참석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새벽예배나 기도회에 참석도 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의 생각은 자신이 하나님과 특별한 영줄을 붙잡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목사의 설교나 말씀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교만함이다. 이러한 말을 하니 평신도들은 물론이고 목회자들도 찔끔거리고 놀라서 할 말을 못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나 사도들의 기도에 대한 말씀을 보면 그렇지 않다. 기도는 하나님께 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나타내셨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기도를 받으신다. 이것이 기도의 원리이다. 이것을 무시하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구속사건을 계획하시고 집행하신 것은 영광을 받으시고 영화롭게 되시기 위함이다. 즉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을 나타내시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광과 찬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얼굴에 비추인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야 한다. 그분이 나타내신 것을 감사하고 찬양하는 것이다. 그래서 기도의 시작은 찬양과 감사이다.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찬양하는 것이다. 그리고 더 간구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자는 반드시 말씀을 통한 회개로 인함이라는 것이다. 회개를 통한 믿음과 사랑이 생김으로 인하여 기도할 수 있다는 것이 성경의 진술이다. 교회 안에서 행하여지고 있는 기도가 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이 찬양을 받으시는 기도는 입술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이 임하여 회개하고, 믿음으로 인하여 감사와 찬양의 기도를 받으신다. 즉 말씀을 통한 깨달음과 회개를 통한 기도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의 진술인데 소위 기도의 사람들이라는 자들은 이 경우에 해당이 되지 않는다. 기독교인들 가운데 이방신을 섬길 때 하던 기도의 방법을 가지고 들어와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자들이 있다. 이방인들의 기도는 나를 위한 기도이다. 내가 신을 마음껏 조종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오는 행위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기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감사와 찬양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기 위하여 피조물을 만드시고 죄인들을 택하여 구원을 주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나타나신 하나님의 영광을 알기 전에는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신자의 간절한 간구는 나에게 더 큰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이 나타나게 해 달라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크신 영광을 지속적으로 체험하기를 소망하기 때문이다.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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