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


 개혁(改革)은 체제나 제도를 새롭게 고쳐나가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혁명(革命)은 이전의 권위나 방식을 단번에 뒤집는 일을 말한다. (한컴 사전에서 참고하였음) 오늘날 교회 안에는 복잡다양한 일들이 많다. 이민교회도 세대교체가 이미 시작되었다.
 
새로운 후임자를 세워서 성공적으로 안착을 한 교회가 있는 반면에 복잡한 갈등 속에 있는 교회도 있다. 갈등의 대부분은 전임목사님과 후임목사님의 주도권 싸움에서 온다. 전임목사님의 생각은 그동안 쌓아온 토대 위에 후임자의 공적이 쌓기를 바란다.
 
그러나 후임목사님은 전임목사님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를 원한다. 그래서 외치는 것이 교회개혁이다. 그런데 개혁이 아닌 혁명이 되면 참으로 곤란한 일이 발생한다.
 
전임목사님과 후임목사님과 갈등을 겪고 있는 교회를 보면 명분상으로는 교회가 새시대에 맞게 새롭게 변화되어야 한다며 개혁을 외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일어나는 일들은 혁명에 가깝다.
 
전임목사님의 권위와 그분이 이루었던 공적을 싹 지워버리고 싶어한다. 그래야 주도권을 잡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니 정권을 잡았다는 것이 더 옳은 표현 일 것이다. 인사 및 재정을 손에 넣어야 권력의 힘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갈등을 잘 풀 수 있는 성경의 말씀이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이야기이다. 엘리야는 하늘로 올라갈 때가 이르자 엘리사에게 안수를 한다. 두 사람은 요단으로 갔다. 엘리야가 겉옷을 가지고 말아 물을 치니 물이 이리 저리로 갈라지고 두 사람이 마른 땅 위로 건너갔다.
 
그리고 엘리야는 엘리사에게 소원하는 것을 말하라 한다. 그러자 엘리사는 엘리야에게 말한다. “당신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라며 소원하였다. 잠시 후 두 사람은 함께 길을 가는데 불수레와 불말들이 두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 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게 된다.
 
이에 놀란 엘리사는 내 아버지여 내 아버지여 하며 엘리야를 찾았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다. 엘리사는 그의 몸에서 떨어진 겉옷을 주워 가지고 돌아와 요단 언덕에 이르러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니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갔다.
 
엘리야가 요단 강물을 이리 저리 갈라지게 하였듯이 엘리사도 요단 강물을 갈랐다. 엘리사가 물을 갈랐을 때에 그의 손에는 엘리야의 겉옷이 있었다. 엘리야의 겉옷은 성령의 역사하심이다.
 
후임목사님에게 갑절의 능력은 전임목사님의 능력의 갑절이다. 그러니 전임 목사님의 사역의 공로에 근거한 갑절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정하신 원리이다. 엘리야에게 역사하셨던 성령께서 전임자의 사역을 지키고 세우게 되면 갑절의 능력을 더 주신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은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더 새로워지는 것을 강조한다. 말씀으로 깨닫고 돌이키고 더 거룩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을 말한다. 어제를 근거로 한 오늘이다.
 
엘리야의 몸에서 떨어진 그의 겉옷을 가지고 물을 치며 이르되 엘리야의 하나님 여호와는 어디계시니이까 하고 그도 물을 치매 물이 이리 저리 갈라지고 엘리사가 건너니라”(왕하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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