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한국교회는 비상이 걸렸다. 카톨릭 교황이 방한을 한다고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고심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이 카톨릭으로 많은 수가 옮겨갈 것을 예상하고 있다. 그들의 선행과 검소한 모습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이 넘어갈 것이다.
 
분명 기독교인들의 선행이 타종교에 비하여 뒤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비판을 받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비도덕한 사람들도 인식이 되어 가고 있다. 우리들의 부족함을 솔직히 시인하고 당당하게 맞서야 한다.
 
기독교의 교리는 이신칭의의 믿음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내게 임함으로 인하여 그 구원을 믿는 믿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것을 붙잡고 전파하여야 한다. 착한 행실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성령하나님의 역사와 증거하심으로 구원이 이루어진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입이 삐뚤어지고 부도덕한 행실을 할지라도 하나님의 구원을 외치면 된다. 지금 한국교회는 하찮은 일에 겁을 먹고 있다. 기독교의 구원의 도리를 착한 행실로 구원을 받는다고 편승을 할 것인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의지할 때에 성령께서 역사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로 믿지 못하는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할 것이고, 그분을 통하여만 천국에 이를 것을 확인하게 되고, 세상의 권력과 마귀의 권세는 멸망할 것이라는 알게 된다.
 
우리들은 구원의 진리를 알고 있다. 이것을 전파하고 외치면 된다. 그러면 삼위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왜 올바른 구원의 교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떨고 있는가? 스스로 우리의 믿음과 신학이 옳은 것인지를 되묻고 싶다.
 
종교개혁자들이 목숨을 걸고 외쳤던 이신칭의의 교리가 왜 착한 선행 앞에서 작아지는가? 이와 같은 상황에서 과거의 종교개혁자들처럼 구원의 올바른 도리를 외치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닌가? 타종교를 향한 비난을 삼가고 우리의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확인하고 세우는 일이 급선무이다.
 
진리를 소유한 자는 관용을 베풀 수 있다. 어리석은 자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 새벽에 법당 뜰에서 기타치며 찬송가 부르지 말고 교황이 온다고 반대 데모하지 말고 우리의 것을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 되었으면 한다.
 
천국은 동전 몇 닢을 통에 넣거나 선한 행실로 갈 수 있는 곳이 아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그 안에서 택함을 받은 사람만이 가는 곳이다. 타종교의 잔치에 우리가 괜히 신경쓰지 말고 정신 차려야 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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