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도다



대한민국에 선거철이 다가오면 표를 얻기 위하여 모든 곳을 다 다니고, 연줄만 있으면 다 만나려 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욕심이다. 그런 것 중의 하나가 교회를 찾아오는 것이다. 그리고 광고시간에 자기에게 특별한 시간을 주어서 직접 인사를 하게 해 달라든가 아니면 잘 소개를 해 달라는 것이다. 그런데 왜 기독교인으로서 정치에 참여하여야 하고 왜 국회의원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납득이 될 만한 충분한 설명이 없다. 당선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열심히 하겠다는 것이 소견의 전부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정치가의 힘이나 나라의 권력으로 일을 하시겠다는 것이 아니다. 정치인들의 욕심은 힘을 얻으면 낮은 자리에서 섬기겠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섬길 기회를 달라고 목청이 터지도록 외치고 있다.

만일 하나님께서 정치의 힘을 빌리려 하셨다면 모세를 사용하지 않고 그 당시에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애굽의 바로 왕을 훈련시켜서 사용을 하시거나, 로마의 황제들을 사용하셨을 것이다. 하나님이 기쁘게 사용하시던 방법은 십자가의 도이다. 낮은 자리로 내려와 그들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다. 섬기는 자의 자세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섬김은 주님을 따라 하는 것을 말한다.

섬기겠다는 자들이 막상 당선이 되면 금방 자세가 돌변을 한다. 그들이 보여 주었던 겸손은 일부러 하는 겸손인 것이다. 즉 겉과 속이 다른 겸손이다. 우리 주님이 보여 주신 겸손은 겉과 속이 같은 것이다.

정치의 세계라는 곳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다루는 곳도 아니다. 그곳은 타협의 세계이다. 서로의 유익을 위하여 챙길 것은 챙기고 줄 것은 주는 곳이다. 그래서 유능한 정치인은 타협과 술수를 잘 쓰는 사람이다. 한국이 정치의 후진국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바로 타협을 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자기들의 고집만을 주장하는 자들이 모인 곳이 정치집단이다.

우리 기독교인을 순한 양이라고 비유한다. 양은 다른 동물을 공격하거나 위협적인 것이 아니다. 많은 수의 양들이 있어도 늑대 한 마리의 공격을 막을 수 없다. 기독교인들이 정치인을 만들어서 세상을 지배하려 하는 것은 마치 양이 늑대로 변하는 것과 같다. 다수의 힘을 정치적으로 나타내자는 생각이다.

양은 양으로서의 본분을 다하면 된다. 천지만물과 세상의 나라를 다스리시는 지존자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양의 본분을 다하면 되는 것이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셨도다”(사 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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