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목사님들의 설교를 듣다가 보면 하나님 나라와 대비되는 단어로 세상이라는 단어를 쓴다. 도대체 세상이라는 곳이 어떤 곳이 길래 이 단어를 쓰게 되는가? 세상이라는 곳은 진리가 없는 곳이다. 즉 사람들의 정욕과 욕심에 의하여 진행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주도하는 것이 바로 유행이다. 이 유행은 변하기도 하고 돌기도 하여 왔다가 갔다가 하는 것이다. 사람들의 탐욕과 정열에 의하여 변화된다.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으시게 판결을 한 빌라도의 이야기이다. 유대인들의 고소로 인하여 예수님을 빌라도의 법정에 가셨다. 예수님에게 심문을 하던 빌라도는 예수님이 어떤 잘못이 없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이와 같은 사실을 전하였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소리쳤다. 만일 당신이 그와 같은 판결을 한다면 로마황제에게 불충성하는 종이라고 한다. 로마의 황제는 가이사인데 어찌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자를 가만히 놔둘 수 있냐는 것이었다. 더 나아가 로마 황제에게 당신의 판결을 알리겠다는 협박이었다. 협박을 받은 빌라도는 죄가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판결을 한 것이다.

이것이 세상을 대표하는 정체성이다. 빌라도의 고백은 자기는 진리를 모른다고 하였다.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움직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의견을 존중한다는 원리를 가지고 있다. 다수결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은 진리를 추구함이 아니라 힘의 논리를 전개하기 위한 것이다.

나라의 법을 결정하는 입법부의 국회의원이 지역구 주민들에게 선택을 받는데 있어서 진리의 내용을 들고 나가는 것이 아니라 지역주민의 유익을 공약하여야 당선이 된다. 즉 나라의 정의와 질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의 욕심을 채워주어야 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의 지도자는 상황에 따라서 리더십이 바뀌는 것이다. 새로운 지도자를 세우고 희망과 기대감에 부풀어 있지만 세월이 지나면 실망과 한숨만이 나오게 된다. 그러나 교회는 다수의 원칙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따르고 순종하는 곳이다.

사람인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아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신분이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의 본질, 특성, 필요함, 부족함에 대하여 너무나 자세히 알고 계시다. 그러므로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창조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살아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곳이고, 사람들의 욕심과 힘을 자랑하는 곳이기에 하나님의 나라와 대비가 된다.

"이러하므로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유대인들이 소리 질러 이르되 이 사람을 놓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니이다 무릇 자기를 왕이라 하는 자는 가이사를 반역하는 것이니이다"(요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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