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설교는 목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근거로 하여 전달할 수 있는 언어로 듣고자 하는 회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설교의 목적은 듣는 자의 삶을 변화시키는데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설교는 좋은 말씀과 유익한 정보를 얻는 정도로만 생각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것들은 신앙 강좌나 교양세미나가 되고 마는 것이다.

내가 사역하고 있는 이곳 아이다호 보이시라는 곳은 약간 고지대이며 태풍이나 홍수나 자연재해의 피해가 전혀 없는 곳이다. 넓은 땅에 아주 적은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날씨는 아침에는 몹시 춥지만 낮에는 따듯하다. 그래서 겨울철인 지금도 새벽에는 히터를 켜야 하지만 낮에는 히터를 끄고 다닌다.

아이다호의 자연의 풍경은 몹시 아름답고, 땅은 기름지어서 농사가 잘되는 곳이다. 그래서 감자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 사는 한국 분들은 집 뒤에 있는 텃밭에 온갖 종류의 채소는 물론이고 어떤 분들은 배추와 무, 알타리 무, 마늘, 부추도 직접 재배한다.

자연이 주는 풍요로움과 자연 재해가 없음으로 인하여 이곳에는 토속신도 물론 없다. 생명을 위협하는 요소들이 없음으로 인하여 신앙의 절심함도 없다. 그러다 보니 자기의 경험과 체험이 상식이요 법이 된 것이다.

나는 이곳에 와서 이들의 삶을 변화시키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설교를 하고 있다. 그런데 교인들끼리는 20년 이상 알고 지나온 분들인데, 그동안 쌓였던 앙금들을 풀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잘 해보려 하는 것이 오히려 충돌로 나타나는 것이다. 그래서 더 거룩한 고민을 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더 은혜로운 설교를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며 성령하나님의 도움을 구하고 있다.

성령하나님의 증거와 역사하심으로 인하여 설교를 들으러 오는 자들의 마음을 각인하셔서, 설교는 좋은 말씀이나 유익한 정보를 듣는 것이 아니라, 삶을 변화시키는 말씀으로 듣게 하여 달라는 것이다. 교인의 삶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설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가 아닌 것이다.

만일 교인들에게 찔림이 있는 설교를 하게 되면 자기를 공격하였다고 오히려 되받아치는 현실 속에서 설교자에게는 보통 이상의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즉 죄를 죄로, 허물을 허물이라고 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교회에 온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죄와 허물을 용서 받기 위함이다. 그러나 현실은 죄와 허물의 용서에 중요성을 두기보다는 재미있고 유익한 정보를 전하려 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대세이다 보니 설교다운 설교를 하기 위해서는 설교자는 단단한 각오를 하여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고민을 한다. 내가 사람들을 기쁘게 하랴 아니면 하나님을 기쁘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다시금 타협할 수 없는 의지가 생기는 것이다.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골 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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