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마 22:43)

 “이르시되 그러면 다윗이 성령에 감동되어 어찌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여 말하되”(마 22:43) 바리새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지만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그들에게 질문을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의 자손이냐 하니 그들의 대답은 다윗의 자손이라 하였다. 이어지는 질문에서는 어찌하여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하였느냐 라고 한다. 그리하였더니 그들은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한마디도 능히 대답하는 자가 없고 그날부터 감히 그에게 묻는 자가 없더라”(마 22:46) 시편 110편 1절에서의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말씀을 근거로 하셨다.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 사건으로 깨달은 것이 있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범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부패한 마음을 새롭게 창조되지 않으면 의로운 자가 될 수 없음을 알았다. “내가 죄악 중에서 출생하였음이여 어머니가 죄 중에서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그러면서 자신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해 달라고 한다.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 51:10) 이렇게 하실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12) 이와 같은 구원을 주셔야 죄인들이 돌아올 수 있고, 그 하나님의 구원을 세상에 알리는 일에 열심을 다하겠다는 찬양을 하였다. “하나님이여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여 피 흘린 죄에서 나를 건지소서 내 혀가 주의 의를 높이 노래하리이다”(시 51:14) 그 구원을 내게 주시면 내 입을 열어 찬양을 하겠다는 것이다.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시 51;15) 즉 죄에서 신음하는 우리를 구원하시려면 그리스도가 와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이 나타나야 함...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것에 대해서는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모이게 한 곳이 교회이다. 그런데 교회에 모인 사람들 가운데는 갈등이 있다. 즉 교회의 직분이나 많은 복에 따라서 불만이 있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 본문의 말씀이 지혜와 교훈을 한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되고 택함을 받은 백성들은 그의 몸에 지체가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교훈을 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몸의 지체끼리는 상호 비교를 하지 않고, 머리의 명령에 따라야 한다.  무엇을 강조하는 것인가? 순종이다. 만일 어느 지체가 머리에 순종하지 않으면 병이 난 것이다. 머리와 연결되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런데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상호 비교를 한다. 나는 왜 저 사람처럼 복을 주시지 않았는가로 생각하면 안 된다. 이것에 대하여 더 자세히 말씀하신 것은 그릇 비유이다. 집에는 그릇이 많지만 주인에게 쓰임을 받는 그릇이 좋은 것이라 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런 것에서 자기를 깨끗하게 하면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거룩하고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모든 선한 일에 준비함이 되리라”(딤후 2:21) 그래서 신자들에게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라 하는 것이다. 만일 준비되지 않은 자가 높은 자리에 앉게 되면 그것은 고통과 두려움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은혜를 주셨다. 그러면 신자들은 나에게 주신 복을 누리며 살아야 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머리가 되시는 교회에는 여러 가지 직분을 정하셨습니다. 그 정한 모든 자리가 사랑을 베풀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들은 높...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삼하 20:12)

  “아마사가 길 가운데 피 속에 놓여 있는지라 그 청년이 모든 백성이 서 있는 것을 보고 아마사를 큰 길에서부터 밭으로 옮겼으나 거기에 이르는 자도 다 멈추어 서는 것을 보고 옷을 그 위에 덮으니라”(삼하 20:12) 다윗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라진 마음을 봉합하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그런데 다윗을 돕고 있는 자들 가운데 방해하는 자가 있다. 즉 다윗을 돕는 것 같지만 해가 되는 존재이다. 그 사람의 이름은 군대장관이었던 요압이다. 이 사람은 하나가 되려 하는 일에 초를 치는 자이다. 요압은 이전에도 사울의 군대장관인 아브넬을 죽였다. 그때도 사울 정권이 이스보셋으로 넘어가 다윗의 왕국과 합치기 위하여 아브넬이 다윗에게 화친을 청하였다. 그런데 아브넬이 전쟁에서 요압의 동생 아사헬을 죽인 일이 있었다. 그래서 다윗을 만나고 돌아가는 아브넬을 성 안으로 불러 죽였다. 그리고 압살롬을 죽인 자가 요압이다. 다윗 왕이 전쟁에 나가는 용사들에게 압살롬을 만나면 살살 다루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청년들을 시켜 칼로 죽였다. 북이스라엘에서 세바라 하는 자가 반역을 일으켰다. 그래서 반역의 세력이 결집하기 전에 세바를 죽이려 아마사가 달려간다. 아마사는 세바를 잡으러 가는 길에 요압을 만난다. 아마사와 요압은 사촌관계이다. 요압은 아마사의 형의 안부를 묻는 척 하면서 칼을 뽑아 배를 찌른다. “아마사기 요압의 손에 있는 칼은 주의하지 아니한지라 요압이 칼로 그의 배를 찌르매 그의 창자가 땅에 쏟아지니 그를 다시 치지 아니하여도 죽으니라”(삼하 20:10) 요압이라는 인물을 우리 주변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공동체의 연합이나 화합에는 전혀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위하는 자들이다. 즉 다윗의 왕국을 위하여 일하는 것 같지만 결단코 아니다. 나라의 안녕과 화합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고 양보하여야 하는데 그런 마음이 눈꼽만치도 없다. 이러한 자의 결국은 다윗을 배신한다. 즉 하나님의 뜻을 거역한 자이다. 그래서 다윗을 대적한 자인 아도니야를 따라간 것...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삼하 19:14)

  “모든 유다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같이 기울게 하매 그들이 왕께 전갈을 보내어 이르되 당신께서는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돌아오소서 한지라”(삼하 19:14) 삼하 19장의 말씀은 전쟁이 끝난 후에 일이다. 즉 다윗을 따랐던 사람들과 압살롬을 따랐던 사람들 간의 갈등이다. 이것을 국민 대통합이라는 명목하에서 진행한다. 그런데 반발이 만만치 않다. 즉 하나의 자리를 놓고 두 사람이 경합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윗의 군장이 요압이었는데 압살롬의 군장을 새로운 군대 장관으로 임명을 하였다. “너희는 또 아마사에게 이르기를 내 골육이 아니야 네가 요입을 이어서 항상 내 앞에서 지휘관이 되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바라노라 하셨다 하라 하여”(삼하 19:13) 이 일에 섭섭함을 가진 요압은 나중에 아도니아를 왕으로 세우려는 세력에 합류한다. “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그들이 따르고 도우나”(왕상 1:7) 그리고 다윗을 다시 왕위에 오르는 것에 반대하는 자들이 있었다. 즉 열두 지파 가운데 북쪽 지파들은 이 일에 자기들과 상의하지 않았다고 강경하다. “이스라엘 사람이 유다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는 왕에 대하여 열 몫을 가졌으니 다윗에게 대하여 너희보다 더욱 관계가 있거늘 너희가 어찌 우리를 멸시하여 우리 왕을 모셔 오는 일에 먼저 우리와 의논하지 아니하였으냐 하나 유다 사람의 말이 이스라엘 사람의 말보다 더 강경하였더라”(삼하 19:43) 왕자의 난으로 시작한 이스라엘의 왕권 다툼이 전국적으로 번진 것이다. 그래서 반대하는 세력 가운데서 세바라 하는 자가 일어선다.  여호와께서 이 사건을 통해서 무엇을 보여 주려 하시는가? 이스라엘의 왕권은 유다 지파로 이어져 진정한 왕이 오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왕들 가운데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있었고 거역하는 자들도 있었다. 즉 나라의 통치를 하나님의 법으로 하려는 왕들과 자신의 생각으로 하였던 왕들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의...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이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이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왕의 마음이 심히 아파 문 위층으로 올라가서 우니라 그가 올라갈 때에 말하기를 내 아들 압살롬이 내 아들 내 아들 압살롬이 차라리 내가 너를 대신하여 죽었더면, 압살롬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더라”(삼하 18:33) 하나님께서 세우시는 나라는 사람의 생각이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 논리로 볼 때에 압살롬이 전쟁에서 패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는 교만하며 간계한 자이다. 동생 다말이 강간당한 것을 기회로 삼았다. 그래서 암논을 죽인 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사실은 경쟁자인 형을 죽인 것이 된다. 그리고 왕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는 아버지를 물러나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성문 앞에서 왕의 무능함에 불만을 표한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훔치었다. 자신의 군대를 조직하기 위하여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하고 헤브론으로 갔다. 거기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동요하여 다윗을 공격한 것이다. 이와 같은 압살롬은 머리털이 많은 자라고 한다.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그의 머리털을 깎을 때에 그것을 달아본즉 그의 머리털이 왕의 저울로 이백 세겔이었더라”(삼하 14:26) 이것은 간교함과 거짓과 술수가 많다는 우회적인 표현이다. 그래서 결국은 머리털 때문에 죽음을 당하게 된다. “압살롬이 다윗의 부하들과 마주치니라 압살롬이 노새를 탔는데 그 노새가 큰 상수리나무 번성한 가지 아래로 지날 때에 압살롬의 머리가 그 상수리나무에 걸리매 그가 공중과 그 땅 사이에 달리고 그가 탔던 노새는 그 아래로 지나간지라”(삼하 18:9) 그의 긴 머리는 사람들에게 자랑거리였다. 지금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는 사람들은 거짓과 선동에 능한 자들이다. 하지만 결국에는 그 거짓과 술수로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는 것이다. 교만한 사람 가운데 바벨론 왕이었던 벨사살이 있다. 그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져온 기물들로 잔치상에서 술을 마셨다. 그런데 잔치 날이 죽음의 날이었다. “그날 밤에 갈대아 왕 벨사살이 죽임을 당하였고”(단 5:3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압살롬 같은...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어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기 아니하고”(삼하 17:8)

  “또 후새가 말하되 왕도 아시거니와 왕의 아버지와 그의 추종자들은 용사라 그들은 들어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같이 격분하였고 왕의 부친은 전쟁에 익숙한 사람인즉 백성과 함께 자기 아니하고”(삼하 17:8) 다윗의 왕국은 여호와 하나님이 세워 가신다. 암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다윗은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상황에 처하여 있다. 그런데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것을 이루기까지는 다윗은 죽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친구인 후새를 통하여 아히도벨의 괘략을 물리치는 것이다. 아히도벨의 전략은 군사 만 이천명을 동원하여 오늘 밤에 지쳐있는 다윗을 치자는 것이었다. 이것은 다윗의 생명만 빼앗고 나머지는 포로로 잡아 올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이다. 그 이유는 다윗과 함께 하는 자들은 그의 부하들과 블레셋 가드에서 온 육백명이다. 훈련되지 않은 오합지졸의 군대인 것이다. “그의 모든 신하들이 그의 곁으로 지나가고 모든 그렛 사람과 모든 블렛 사람과 및 왕을 따라 가드에서 온 모든 가드 사람 육백 명이 왕 앞으로 행진하니라”(삼하 15:18) 그런데 후새가 말한 것을 암살롬이 택한 것이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모든 군사를 모아서 다윗을 추적하자고 한다. “나는 이렇게 계략을 세웠나니 온 이스라엘을 단부터 브엘세바까지 바닷가의 많은 모래같이 당신께로 모으고 친히 전장에 나가시고”(삼하 17:11) 그렇게 하면 이스라엘의 백성들이 압살롬을 왕으로 인정하게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을 하였기 때문이다. 암살롬은 후새의 말을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으로 받았다. 즉 여호와께서 후새를 통하여 암살롬에게 말씀하셨다는 것이다. “암살롬과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르되 아렉 사람 후새의 계략은 아히도벡의 계략보다 낫다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려 하사 아히도벡의 좋은 계략을 물리치라고 명령하셨음이니라”(삼하17:14) 여호와께서 친히 다윗 왕국을 세워 가시기 때문에 사람의 좋은 전략이라도 외면을 받게 된다. 이 일로 인하여 암살롬의 책사인 아히도벨은 자기 집으로 가서 ...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40) 모세오경은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에 근원이 된다. 즉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시지를 말씀하셨고 또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알 수 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택하시고 두 돌판에 십계명을 친히 기록하여 주셨다. 그리고 열 가지의 계명을 어떻게 지켜야 하는지를 모세를 통하여 자세히 말씀하셨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또는 언약의 백성이라 하면서 십계명의 말씀을 알지 못하고 지키지 않는 것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왜 여호와 하나님만 섬겨야 하는가? 그분은 산 자의 하나님이 되시고 나에게 생명을 주시고 나를 거룩한 길로 가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섬겨야 하는가? 나의 욕심이나 탐심을 이루기 위하여 섬기지 말라는 것이다. 그분을 섬기되 너희 생각으로 하지 말라 한다. 사랑의 생각은 선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왜 안식일 지켜야 하는가? 나의 신분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전에는 애굽의 종이었지만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기 때문이다. 왜 윗사람을 공경하여야 하는가? 순종을 생활화하기 때문이다. 여호와의 말씀은 명령이다. 이해가 되지 않아도 따라야 한다. 왜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가? 나의 유익을 위하여 이웃을 죽이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아야 한다.   왜 간음하지 말아야 하는가? 나의 욕정을 채우기 위하여 거짓으로 혼인을 빙자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왜 도적질을 하는가? 하나님이 주신 것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에 내 마음에 정한대로 이웃의 것을 빼앗는 것이다. 왜 거짓증거하는가? 이웃이 나보다 잘나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왜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아야 하는가? 내 욕심과 내가 정한 것으로 살지 말라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들은 이미 영생을 얻은 자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들입니다. 그런데 내 주변에 사람이 없고 외롭게 살고 계신다면 먼저 주변에 사랑이 필요한 자가 없는가 살펴보시기를 권합니다. 주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