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된 보물이신 그리스도와 은혜의 화목(욥 22:2)
참된 보물이신 그리스도와 은혜의 화목(욥 22:2)
“사람이 어찌 하나님께 유익하게 하겠느냐 지혜로운 자도 자기에게 유익할 따름이니라”(욥 22:2)
엘리바스는 이전보다 더 과격하고 노골적인 인신 공격을 한다. 욥의 무죄함을 부정하고, 욥이 당하는 고난은 전적으로 그가 저지른 구체적인 악행 때문이라고 허위 사실을 단정 지으며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하나님은 완전히 자족하시는 분으로서 인간의 의로움이나 경건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네가 의로운 전능자에게 무슨 기쁨이 있겠으며 네 행위가 온전한들 그에게 무슨 이익이 되겠느냐”(욥 22:3)
따라서 하나님이 욥을 벌하시는 것은 욥의 경건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의 죄 때문일 수밖에 없다는 논리이다.
엘리바스의 신학은 하나님의 자족성과 초월성을 주장한다. 그리고 하나님은 피조물의 무언가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과 언약적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의 경건과 고난에 깊이 인격적으로 반응하시는 임재와 언약적 사랑을 모른다는 것이다.
또한 자신의 신학의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하여 욥의 인격을 말살하고 거짓 정죄를 서슴지 않는 율법주의 비정함과 한계를 폭로한다. “네 악이 크지 아니하냐 네 죄악이 끝이 없느니라”(욥 22:5)
그의 주장에서 하나님와 화목하고 율법을 마음에 두면, 하나님이 회복시켜 주시고 보물이 되어 주실 것이라는 억지를 부린다. 이것은 기복주의적 공로 사상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바른 믿음은 인간의 공로에 의한 구원과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조건 없는 은혜를 훼손하는 인간 중심적 종교관임을 말한다.
욥이 아무런 증거도 없이 온갖 사회적 악행의 죄목을 덮어씌워 정죄한 것은, 예수님이 평생 가난한 자를 돌보시고 병자를 고치시며 완벽한 의를 행하셨으나, 종교 지도자들과 세속 법정은 주님에게 신성모독죄와 반역죄라는 거짓 죄목을 덮어씌웠다(마 26:59-60).
하나님과의 화목은 인간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이루어지는 참된 화목이다.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 것이다(롬 5:10).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의 세속적인 종교는 ‘세상의 보물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가르칩니다.
그러나 구속사적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최고의 보물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 그분으로 인해 만족하며, 이해할 수 없는 고난과 박해 속에서도 오직 주님만이 나를 평안의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롤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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