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리한 세상의 침묵 속, 십자가의 빛을 보라(욥 24:1)
부조리한 세상의 침묵 속, 십자가의 빛을 보라(욥 24:1)
“어찌하여 전능자는 때를 정해 놓지 아니하셨는고 그를 아는 자들이 그의 날을 보지 못하는고” (욥 24:1)
그동안 욥은 자신에게 닥친 고난과 억울함을 토로하며 하나님을 향한 개인적인 갈망과 씨름해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인 욥기 24장에 이르러 욥은 시선을 밖으로 돌려 세상에 만연한 악과 사회적 불의, 그리고 이를 두고만 보시는 듯한 하나님의 거대한 침묵에 대하여 질문하기 시작합니다.
그는 악인들이 권력을 쥐고 득세하며, 오히려 사회적 약자들이 가혹한 고통을 당하는 부조리한 현실을 통렬하게 고발합니다. 권력자들은 제멋대로 땅의 경계표를 옮기고, 고아의 나귀와 과부의 소를 빼앗으며, 가난한 빈민들을 길에서 거칠게 몰아냅니다. 성 안에서는 억압받고 죽어가는 자들의 신음과 비명이 가득한데, 어찌하여 하나님은 이 참상을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으시는지 욥은 눈물로 울부짖습니다.
이러한 악행들은 철저히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자행됩니다. 살인자는 새벽에 일어나 빈궁한 자를 치고, 간음하는 자는 해가 저물기를 기다리며, 도둑은 밤의 어둠을 틈타 타인의 집을 뚫습니다. 그들은 빛을 증오하고 흑암과 친숙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아침을 죽음의 그늘같이 여기니 죽음의 그늘의 두려움을 앎이니라” (욥 24:17)
그러나 욥은 이 악인들이 결코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결국 그들은 잘려 나간 곡식 이삭처럼 비참하게 시들고 말 것이며, 자신의 이 고발이 결코 거짓이 아님을 강하게 항변합니다.
드러나는 인간의 죄성,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적 작정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깊은 죄성과 하나님의 섭리를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 한 사람에게서 숨겨진 개인적인 죄를 찾아 정죄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아담 이후 타락한 인간의 전적 부패가 어떻게 사회 구조와 관계 속에서 잔혹한 악으로 드러나는지를 폭로하고 있습니다.
타락한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공의는 당장 눈앞에 즉각적으로 실행되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형통은 잠시뿐이며, 하나님의 정의는 그분의 주권적인 작정 아래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의 능력으로 강포한 자들을 끌어내시나니 일어나는 자는 있어도 살아남을 확신은 없으리라” (욥 24:22)
어둠을 밝히는 참된 빛, 예수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토록 어둡고 부조리한 세상 속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된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오자 비로소 어둠 속에 숨겨져 있던 악인들의 부끄러운 죄악이 천하에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한복음 3:19)
예수님은 단순히 세상의 불의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으시고, 불의에 짓밟히고 압제당하는 자들을 위해 친히 ‘대속의 은혜’가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 말씀하시며(마 25:40), 고통받는 자들과 자신을 철저히 동일시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인류 역사상 가장 불의하고 억울한 재판을 몸소 받으시며, 온갖 수치와 아픔을 당하신 채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불의에 신음하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이 친히 화목 제물이 되어 주심으로, 우리를 어둠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하나님의 영원한 공의의 나라로 옮겨 주신 것입니다.
세상의 부조리와 불평등을 바라보며 마음이 낙심되십니까? 어둠을 뚫고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바라보십시오. 주님이 우리의 억울함과 아픔을 아시며, 최후의 날에 당신의 공의를 온전히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 영원한 공의의 나라를 소망하며, 오늘도 세상의 어둠에 타협하지 않고 주님의 빛을 발하며 살아가는 복된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