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지혜를 넘어 전능자의 숨결로(욥 32:2)
사람의 지혜를 넘어 전능자의 숨결로(욥 32:2)
“람 종족 부스 사람 바라겔의 아들 엘리후가 화를 내니 그가 욥에게 화를 냄은 욥이 하나님보다 자기가 의롭다 함이요” (욥 32:2)
길고 지루했던 욥과 세 친구의 논쟁이 교착 상태에 빠지며 무거운 침묵이 흐를 때, 젊은 청년 엘리후가 등장합니다. 엘리후의 등장은 인간의 전통과 지혜가 한계에 부딪혔을 때 영적인 통찰력이 어떻게 그 한계를 돌파하는지 보여줍니다. 그는 사람의 연륜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영’에 근거하여, 세 친구의 무능함과 욥의 자기 의를 동시에 질타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영광을 선포합니다.
1. 인간 신학의 파산과 성령의 조명하심
욥의 세 친구는 평생 쌓아온 경험과 변하지 않는 전통적 인과응보의 신학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신학은 욥이 당한 고난의 현실 앞에서 아무런 답도 주지 못한 채 완전히 파산하고 말았습니다(욥 32:12). 엘리후는 나이가 많고 어른이라고 해서 무조건 지혜롭거나 정의를 깨닫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합니다. 참된 깨달음은 오직 사람 속에 있는 영, 곧 전능자의 숨결이 주시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이성과 학문적 전통을 가졌을지라도, 성령의 조명하심 없이는 결코 하나님의 오묘한 뜻을 깨달을 수 없음을 깊이 교훈합니다.
2. ‘자기 의’의 덫과 창조주를 경외하는 중심
엘리후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는 데 너무 몰두한 나머지, 은연중에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의롭다 여기며 하나님의 공의를 의심하는 자리까지 나아간 욥의 한계를 정확히 짚어냅니다. 욥 역시 결국은 ‘인간의 의’라는 좁은 틀에 갇혀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 엘리후는 사람의 낯을 보거나 아부하지 않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를 보입니다. “이는 아첨할 줄을 알지 못함이라 만일 그리하면 나를 지으신 이가 속히 나를 데려가시리로다” (욥 32:22). 성도의 말과 신앙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오직 하나님 한 분만을 의식하는 중심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3. 새 가죽 부대에 담기는 천국의 의
엘리후가 전하고자 한 하나님의 절대 주권과 영광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통해 선명하게 완성됩니다. 주님은 바리새인들의 낡은 율법주의와 인간적 전통을 책망하시며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마 9:1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구원받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는 것은 인간의 지혜나 신학적 지식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생각나게 하실 때만 가능합니다(요 14:26). 또한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5:20) 하신 말씀처럼, 인간의 부패한 의를 내려놓고 성령의 역사로 주어지는 그리스도의 참된 의를 덧입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간이 쌓아 올린 지혜와 경험은 고난의 풍랑 앞에서 힘없이 무너지지만, 우리 안에 거하시는 전능자의 숨결, 곧 성령의 능력은 모든 한계를 돌파하게 만듭니다. 나의 의로 가득 찬 낡은 가죽 부대를 과감히 버리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새 포도주를 구하십시오.
이번 한 주도 내 지식과 경험을 의지하기보다 보혜사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며,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높이고 그분의 영광만을 드러내는 복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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