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의 정죄를 넘어 십자가의 속량으로(욥 20:29)

 율법의 정죄를 넘어 십자가의 속량으로(욥 20:29)


“이는 악인이 하나님께 받을 분깃이요 하나님이 그에게 정하신 기업이니라”(욥 20:29)


소발은 욥의 위대한 부활과 대속자의 신앙을 완전히 묵살하고, 더욱 거칠고 잔인한 어조로 악인의 비참한 종말을 선포한다.


그는 역사의 경험과 전통을 근거로 악인은 반드시 속히 망한다고 주장한다. 악인이 아무리 하늘 높이 부유해질지라도 결국 자기의 똥처럼 영원히 망할 것이며, 그 자녀들까지 가난의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욥을 저주하고 있다.


그의 신학은 인과응보적 율법주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의 세상을 통치하시는 일반적인 법칙(악인의 심판)을 절대화하여, 하나님의 주권적인 작정과 고난의 신비(특별한 섭리)를 제한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악인을 즉각 심판하기도 하시지만, 때로는 하나님의 깊으신 뜻 가운데 의인에게 고난을 허락하시기도 한다.


그는 죄의 일시적 달콤함과 필연적 부패성을 말하고 있다. “그의 음식이 창자 속에서 변하여 뱃속에서 독사의 쓸개가 되느니라”(욥 20:14) 하지만 고난 당하는 의인인 욥에게 무차별적으로 대입하는 것은 문제이다.


또한 악인은 아무리 채우려 해도 만족함이 없고, 결국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불이 그를 삼킬 것이라고 선언한다. 그리고 하늘과 땅이 모두 그 악인의 죄를 폭로할 것이라 하며 변론을 마친다.


소발의 잔인한 독설은 복음이 없는 율법의 정죄 기능만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인류가 저주 아래 놓인 악인이라는 점이다.


율법은 인간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할 뿐, 스스로 그 진노에서 벗어날 길을 제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 진노를 대신 받아줄 구속자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웅변하는 것이다.


우리를 대신해 소발의 저주를 당당하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의 죄의 빚을 갚으시려 십자가에 자기 생명을 통째로 쏟아내며 대속의 값을 치르셨다(갈 3:13).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인과응보적 종교 행위를 벗어나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만을 의지하라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즉 구원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인한 것입니다.

소발의 주장처럼 악인들은 서슬 퍼런 저주 아래 마땅히 죽어야 할 자들이 우리였습니다.

그러나 살아 계신 대속자(고엘) 예수님이 우리의 보증이 되어주셨기 때문에 더 이상 저주에 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 이미 그 진노를 끝내신 주님의 신실하신 사랑을 신뢰하며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엘파소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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