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래하는 종교를 넘어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다(욥 34:10)
거래하는 종교를 넘어 하나님의 공의 앞에 서다(욥 34:10)
“그러므로 너희 총명한 자들아 내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악을 행하지 아니하시며 전능자는결코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시고” (욥 34:10)
엘리후는 하나님의 내면적 성품과 절대 공의를 선포하며, 고난 앞에서 “나는 의로우나 하나님이 내 의를 부인하셨다(욥 34:5)”라고 한 욥의 독백을 매섭게 반박합니다. 또한 “사람이 하나님을 기뻐하나 무익하다(욥 34:9)”며 인과론적 한계에 갇혀 탄식하던 욥의 고집을 책망하고 회개를 촉구하며, 우리를 온전한 공의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인도합니다.
1. 하나님의 절대 공의와 주권적인 통치
엘리후는 하나님이 결코 악이나 불의를 행하실 수 없는 공의로운 재판장이심을 증거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행위를 따라 고스란히 갚으시는 분이며(욥 34:11), 모든 피조물을 손수 지으셨기에 세상의 권력자나 불의한 자들을 외모로 취하지 않고 전지전능하신 눈으로 공평하게 심판하십니다. 인간의 이성이나 제한된 경험은 결코 진리의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온 우주는 하나님의 살아 계신 보존적 섭리 아래 통치되고 있기에, 피조물인 인간은 마땅히 그 통치를 겸손히 인정하고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2. 기복주의의 탈을 쓴 ‘자기 뜻’의 고집을 내려놓음
욥은 자신의 뜻대로 하나님이 보상해 주시기를 기대하며 고집을 부렸습니다. 이에 엘리후는 “하나님이 네가 거절한다고 해서 네 뜻대로 보상해 주시겠느냐(욥 34:33)”고 반문하며, “내가 죄를 지었사오니 다시는 범죄하지 않겠나이다(욥 34:31)”라고 고백하는 참된 회개의 자리로 나아갈 것을 권면합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경외하지 않고 오직 내게 돌아올 유익과 보상만을 위해 섬긴다면, 그것은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과 거래를 하려는 ‘기복주의’에 불과합니다.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은 내 뜻을 관철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을 영광스럽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3. 십자가에서 완전히 성취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하나님의 절대 공의와 주권적 순종의 완전한 모범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을 앞두시고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9)*라고 기도하시며,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복종하셨습니다. 또한 주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고 세상의 불의한 자들을 책망하셨으며, 인류를 향한 무서운 공의의 심판을 십자가 위에서 대속의 피로 다 담당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자기도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 (롬 3:26) 하신 말씀처럼, 공의와 사랑을 동시에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내 생각과 내 뜻을 고집하며 하나님과 거래하려는 어리석은 기복주의를 과감히 버려야 합니다. 내 유익을 구하는 수준을 넘어, 오직 하나님의 절대 공의를 신뢰하고 그분의 보존적인 통치에 나를 내어 맡겨야 합니다.
때로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삶의 자리라 할지라도,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온전한 공의를 담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바라보십시오. 오늘도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고백하며,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그분만을 즐거워하는 참된 자녀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엘파소열린문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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