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024의 게시물 표시

생명의 말씀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불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매달아라 물린 자마다 그것을 보면 살리라”(민 21:8) 이스라엘은 에돔의 방해로 지름길을 제쳐 놓고 또 다시 고통스러운 광야 길로 나가야 했다. 그 일로 인하여 백성의 마음이 상하였다. 백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극한 분노를 일으키고 말았다. 그리하여 이번에는 모세뿐만 아니라 하나님까지 노골적으로 대적을 하고 있다. 이스라엘의 습관적인 불평은 ’어찌하여 죽게 하는가‘ 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불평은 하나님의 능력을 무시하고 모욕하는 행위가 된다. 하나님의 능력은 애굽에서 종이었던 자들을 구원하여 자유를 주어 생명의 풍성함을 주신 것이다. 그 생명의 가치를 모르고 누릴 자격조차 없음으로 죽어야 할 자들이다. 그리하여 여호와께서 불뱀을 백성에게 보내어 물게 하시므로 죽은 자가 많게 되었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민 21:6) 백성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모세에게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부탁한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민 21:7)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기를 불뱀을 만들어 장대에 매달라 하신다. 그 불뱀은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온 몸에 열이 생기며 죽어간다. 죽음 가운데서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허물을 알고 용서를 구하는 자만이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중보자인 모세를 통하여 하나님께 간구를 할 수 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 이르러는 온 인류의 중보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누구나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게 되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요 14: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경에서 사건 속에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하심이 담겨 있습니...

생명의 말씀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 20:1)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 20:1)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여호와께 범죄함으로 징계를 받았다. 그래서 광야 1세대는 갈렙과 여호수아 외에는 다 광야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삼십팔 년 동안 세일산 주변을 돌아다니다가 다시 가네스로 돌아왔다. 그곳에서 미리암이 죽었다. “첫째 달에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이 신 광야에 이르러 백성이 가데스에 머물더니 미리암이 거기서 죽으매 거기에 장사되니라”(민 20:1) 그곳에 다시 돌아왔는데 마실 물이 없으므로 인하여 지도자를 원만하게 된다. 출애굽 직후에 르비딤에서도 물이 없어서 백성들은 불평한 적이 있었다.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에서 떠나 그 노정대로 행하여 르비딤에 장막을 쳤으나 백성이 마실 물이 없는지라”(출 17:1)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의 진노하심의 심판으로 광야 1세대가 죽는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께 대적을 한 것이다. 광야의 여정은 모세와 아론이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인도하신다. 이 백성들의 특징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냈음을 기억하지 못하며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께 의로하는 믿음이 없다는 것이다. 심지어 광야에서 죽는 것도 모세와 아론에게 있다고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여호와의 회중을 이 광야로 인도하여 우리와 우리 짐승이 다 여기서 죽게 하느냐”(출 20:4) 또한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없고, 없고, 없고, 없고, 없도다‘ 한다. “너희가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여 이 나쁜 곳으로 인도하였느냐 이곳에는 파종할 곳이 없고 무화과도 없고 포도도 없고 석류도 없고 마실 물도 없도다”(민 20:5) 부정적인 발언은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이 있고 가나안...

생명의 말씀 “귀신이 쫓겨가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마 9:33)

  “귀신이 쫓겨가고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거늘 무리가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런 일을 본 적이 없다 하되”(마 9:33) 성경에서는 외적인 현상과 육체적인 현상이 많이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외적인 현상을 통하여 내적인 현상을 설명하기 위함이다. 육체의 나병환자의 증상을 통하여 영적인 나병환자를 소개하기 위함이다. 살이 썩고 손가락이 곪아 떨어져 나가도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과 같이 영적인 증상이 같다는 것이다. 몸에서 흘러나오는 유출병을 통해서는 사람의 몸 안에는 더러운 것이 있음을 말하면서 구원받지 못한 영혼을 통해서 더러운 것들이 나옴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병자를 고치실 때에 각각 병자들 앞에 ’귀신들린 자‘라 한다. 귀신은 하나님을 아는 것과 듣는 것과 찬양하는 것을 방해하는 자이다. 각각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보게 되고, 말씀을 듣게 되고, 찬양과 기도를 하며, 성전으로 나아가 예배를 드린다.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행 3:8)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화목한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볼 수 있고 듣고 찬양하며 예배드릴 수 있는 복을 얻었다. 이것에 구원을 받은 증상이며 현상이다. 병든 자의 외적인 것을 고쳐 주시며 영혼의 병든 자들의 실상을 전하려 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임하면 영혼 안에 분명한 증거들이 나타난다. 왜 그런가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누구도 막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은혜를 주시러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같은 믿음이 있다면 쇠퇴할 수 있는가를 생각하여야 한다.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타난 믿음은 붙잡지 않고 바리새인이나 우상숭배하는 자들이 전하는 가짜 복음을 설치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의 말씀을 보고 듣고...

생명의 말씀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마 9:32)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마 9:32)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을 기록한 사 복음서(마태, 마가, 누가, 요한)를 읽을 때에 깊이 생각하여야 할 것이 있다.  즉 성경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인 것과 그에게 영생과 부활이 있다는 것이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그분의 공생애 사역에서 병고침을 보여 주시는 이유는 메시야이며 구원자이심을 믿게 하기 위함이다. 이사야에서 약속한 것을 성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맹인과 듣지 못하고 말 못하는 자와 걷지 못하는 자들을 고치시는 분이 구원자라는 것이다.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그러면 그분이 메시야임을 믿으라는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약속의 구원자로 믿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귀신의 왕이라 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이르되 그가 귀신의 왕을 의지하여 귀신을 쫓아낸다 하더라”(마 9:34) 오늘날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병고침에만 집중하여 정하고 믿고 있는 자들이 있다. 이것에 대하여 반박하는 것이 나병 환자 열 명이 고침을 받았지만 한 사람만 구원을 받았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눅 17:17) 바리새인들이나 병고침에 집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되 자신의 욕심을 이루려 하는데 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우상숭배라고 한다. 그러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무엇을 이루려 하는가를 알아야 한다. 이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제물이 되셨다는 것을 확인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병자를 고칠 때에 각각 병자 앞에 ’귀신들린‘이란 수식어가 붙는다. “그들이 나갈 때에 귀신들려 말 못하는 사람을 예수께 데려오니”(마 9:32) 이 귀신은...

생명의 말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사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하는 것이 당연함을 증거하고 있다. 왜 고난을 당하고 있는지를 증거한다. 이전과 지금의 삶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악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따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때문에 세상이 핍박을 한다. 핍박을 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악함이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벧전 4:2) 그렇게 핍박을 당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며 또한 그 위에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시는 증거라 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벧전 4:14)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산 위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마 5:10) 베드로는 제자로서 그리스도를 본받아 복음을 전하는 자였다. 그가 당한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이 함께 하심을 몸소 체험을 하였기에 초대교회들에게 서신을 보내는 것이다. 약속의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을 세상에 알리는 자들에게 함께 하심이 당연함을 말한다. 여러 시대에 말씀을 전하던 선지자들에게도 이러한 고난이 있었다.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그들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으로 인함이니이다”(요 17:14) 하나님 나라와 세상은 사상이 서로 다르다. 세상을 힘을 이용하여 빼앗아야 잘 살 수 있는 곳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더 복을 받고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가 큰 자로 인정을 받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이전과 이후의 삶이 다...

생명의 말씀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 10: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막 10:51) 맹인의 고침을 통하여 성령의 거듭남을 설명하고 있다. 메시야를 보아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교훈한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에 놀라지 말라 하신다.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놀랍게 여기지 말라”(요 3:7) 성령의 거듭남의 역사 마치 바람이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고 소리와 현상은 느낄 수 있으나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성령의 거듭난 사람을 예수를 주시라 고백을 한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고전 12:3) 그러므로 성령이 없으면 구원을 받은 것도 아니고 성령의 역사하심이 없으면 교회도 아니다. 성령이 계셔야 하나님의 사람이고 성령이 계셔야 하나님의 교회가 되는 것이다.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계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성령이 우리 안에서 새 생명을 주시고 아버지의 말씀을 보고 듣고 만질 수 있도록 하신다. 그래서 천국의 소망을 두고 살게 된다. 그래서 맹인의 병고침이 구원에 이르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막 10:52) 맹인은 눈을 뜨게 되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분을 주인으로 섬기며 종으로서 따른다. 즉시 구원이 임하고 즉시 따른다는 것을 말한다. 성령의 거듭남의 역사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임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에 바리새인들에게는 거듭남의 역사 없으므로 인하여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는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성령의 역사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즉각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택함을 받은 자들 안에는...

생명의 말씀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막 10: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막 10:46) 사복음서는 각 권마다 특징이 있다. 기록한 자가 있고 수신자가 있다. 그래서 기록한 자는 수신자들의 환경과 처지에 맞게 내용을 서술하였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는 여리고에서 거지맹인 바디매오가 등장한다. 바디매오는 거지인데 정말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는 자이다. 보통의 거지들은 재산은 없을지언정 자신의 이름은 가지고 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이름도 없다. 바디매오란 이름은 디매오의 아들이란 뜻이다. 즉 누구의 아들이라 불리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리고에는 레위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제사장들과 성전에서 봉사하는 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레위 사람들은 구약의 말씀에 대하여 잘 알고 있고 늘 하나님과 가까이 한다. 그러나 마가는 본문에서 레위 사람들의 무지함을 고발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메시야에 대하여 자세히 계시하였다. 예수님은 지금 구약의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는 레위 사람들이 살고 있는 여리고를 지나가고 계신다. 그렇다면 당연이 레위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아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알아보지 못하는데 오히려 거지 바디매오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막 10:47) 여리고 있는 사람들은 소리를 지리고 있는 맹인을 저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막 10:48) 그렇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맹인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를 부르신다. 그리고 물으신다.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러자 맹인의 대답은 주님을 보기를 원한다. 맹인의 소원이 이루어졌다. 마침내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본 것이다. 누구의 믿음이 큰 것인가? 구약의 약속을 말씀을 붙들고 구원자를 기다리...

생명의 말씀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마 9:30)

  “그 눈들이 밝아진지라 예수께서 엄히 경고하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셨으나”(마 9:30) 예수님께서는 놀라운 이적 후에는 당부의 말씀을 하신다. 오늘 본문에서도 맹인이 고침을 받았는데 엄중히 경고하시면서 삼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는 것이다. 왜 이렇게 말씀을 하셨을까? 그것은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들과 로마사람들에게 견제와 핍박을 받고 있다.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지만 정치 군사적 힘을 갖고 오는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다. 반면에 로마사람들은 메시야가 오면 로마정권에 대항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저들의 생각과는 거리가 멀다. 즉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는 것이다.  백성들의 선동과 분노가 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 사역에 방해가 된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말라 하신 것이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맛본 사람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요 6:15) 또는 로마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을 독립시켜줄 것으로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을 부추기는 것을 경계한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잘못된 메시야관을 가진 군중들로부터 추대를 받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사명을 감당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눈을 뜨게 된 사람들은 너무 기뻐서 세상에 소문을 내었다. “그들이 나가서 예수의 소문을 그 온 땅에 퍼뜨리니라”(마 9:3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자신이 받은 구원이 너무나 기쁘다고 할지라도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것을 기억하셔야 됩니다. 맹인은 기쁨을 누리며 세상에 알리었지만 정작 예수님의 메시야 사역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자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사역에 방해가 되는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마 9:29)

  “이에 예수께서 그들의 눈을 만지시며 이르시되 너희 믿음대로 되라 하시니”(마 9:29) 맹인들의 믿음은 어떠한 믿음인가? 예수님께 자비와 긍휼을 구하고 있고 그분에게는 눈을 뜨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것이다. 그와 같은 믿음을 가진 자에게 임하는 복이 ‘너희 믿음대로 된다’ 하셨다. 즉 약속하신 말씀을 듣고 그대로 믿고 순종함을 말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구원에는 소극적인 구원과 적극적인 구원이 있다. 속극적인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로 택함을 받은 것을 말한다. 그래서 이것을 하나님의 선물이라 한다. 반면에 적극적인 구원은 소극적인 구원을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 이제 죽음에서 부활의 은혜를 얻은 자가 되어서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었다. 이것을 병자의 고침으로 비유를 하면 눈이 밝아졌고, 들을 수 있고, 말할 수 있어서 찬양과 기도를 할 수 있고, 걸어서 하나님 앞에 나온 자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자가 되어 그의 영광을 돌리는 자가 되었음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에는 죽음의 은혜와 부활의 은혜가 있다. 그의 죽음의 은혜를 통해서는 대속의 은혜인 죄사함의 은혜를 받았다. 그리고 부활의 은혜를 통해서는 하나님과 교제하며 그분의 뜻을 이루는 은혜이다. 이 두 가지의 은혜 가운데서 부활의 은혜가 더 크다는 것이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회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무슨 말인가 하면 하나님 앞에 산 자가 되었으니 그분 앞에 나와서 구할 것을 구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바리새인처럼 구하면 아니되고 맹인들처럼 구하여야 한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호와 하나님 앞에 서시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야 합니다. 예수 그리...

생명의 말씀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마 9:28)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매 맹인들이 그에게 나아오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대답하되 주여 그러하오이다 하니”(마 9:28) 예수 그리스도께서 맹인들의 믿음을 시험하신다. 내가 능히 이 일을 너희에게 이루어줄 줄을 믿느냐는 것이다. 그들의 대답은 ‘그러하오이다’ 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번성기를 누렸다. 특히 경제적으로 부요함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았다.  웅덩이 파서 물을 고이게 하여 하늘을 행하여 기도하지 않았고 창고에 쌓인 곡식으로 인하여 하늘의 은혜를 구하지 않았다.  그리고 심지어 왕조차도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하스가 이르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나는 여호와를 시험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한지라”(사 7:12) 그래서 여호와께서 이웃 나라인 앗수르와 바벨론을 막대기로 사용하셔서 이스라엘을 치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다.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에게 외면을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증거의 말씀을 싸매여 봉합하라 하신다.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내 제자들 가운데서 봉합하라”(사 8:16)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을 다시 돌아오게 하신다. 그들에게 새 언약을 선포하시며 구원을 약속하셨다. 약속된 메시야가 오면 어떠한 일이 일어나는가 하면, 맹인이 눈을 뜨게 되며, 듣지 못하는 자가 듣게 되며, 말 못하는 자가 말을 하며, 걷지 못하는 자가 걷게 된다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예수를 메시야로 인정하지 않으며 믿지 않고 있다. 맹인이 눈을 뜬다고 함은 이 땅에 메시야가 오셨음을 증거하는 것이 된다. 맹인들은 이와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 처녀의 몸에서 아들을 낳을 것이고 이름은 예수이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마 1:21)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약속된 메시야가 이 땅에 오셨다가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 그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교회인 성도들입니다. 그렇다면 ...

생명의 말씀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마 9:27)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마 9:27) 마태복음을 기록한 사람은 마태이다. 마태는 유대인으로서 동족에게 메시야인 예수의 공생애 사역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전하고 있다. 마태는 복음서를 기록하면서 참람한 심정으로 유대인을 바라보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대인으로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집에서 죽은 딸을 살리시고 나오실 때에 일어난 일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도 유대인들의 믿음을 질책하시며 제자들에게는 깨달음을 주신다. 본문에 등장하는 맹인들이 있다.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맹인들의 믿음이 회당장과 유대인들의 믿음보다 훨씬 낫다는 것을 말하고자 한다. 즉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의로 하나님을 믿기에 자신의 요구로 능력만을 받으려 한다. 반면에 맹인의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다. 맹인들은 자신들을 불쌍히 여기어 달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긍휼이 임하여야 구원이 임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거기에서 떠나가실새 두 맹인이 따라오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더니”(마 9:27) 이사야의 글을 보면 구원자가 와서 은혜를 베풀어주실 것을 약속하였다. “그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사 35:5) 구원자가 이새의 줄기에서 나오는데, 즉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것이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사 11:1)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는 예수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여 메시야의 사역을 감당하신다.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사 11:2) 그분은 이 땅에 오셔서 자신의 자랑을 일삼지 않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기를 즐거워하시는 분이시다.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생명의 말씀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중에서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구체적으로 말씀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날에 보응의 심판이 있다. 즉 구원을 받아서 천국의 소망을 갖고 있지만 현실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달리 말하면 구원을 받은 자처럼 살라는 것이다. 그래서 말과 행실을 행한대로 심판을 받아야 함으로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여야 한다. “아내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종하라 이는 혹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실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니”(벧전 3:1) 그리고 남편들은 아내를 위하여 기도를 하여야 함이 당연하다. 그 이유는 여자들은 죄의 유혹에 쉽게 넘어가기 때문이다. “남편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그를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이어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3:7) 마지막 때에 상급을 받기를 원한다면 악한 말을 그치고 거짓말을 하지 말라 한다.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거짓을 말하지 말고”(벧전 3:10) 더 적극적인 믿음의 행실은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하나님과 화목의 자리에 이르러야 한다는 것이다.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며 그것을 따르라”(벧전 3:11) 이러한 믿음을 따라 행할 때에 주님께서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귀를 기울이시고 악한 자들에게는 얼굴을 대하시어 보응의 심판을 하신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대하시느니라”(벧전 3:12)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에 수동적인 은혜와 능동적인 은혜가 있습니다. 능동적인 믿음이란 수동적인 믿음을 얻은 자만이 행할...

생명의 말씀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막 5:30)

  “예수께서 그 능력이 자기에게서 나간 줄을 곧 스스로 아시고 무리 가운데서 돌이켜 말씀하시되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하시니”(막 5:30) 열두 해 동안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은 사람의 의지로 자신의 병을 고치려 여러 방면으로 노력을 하였다.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아무 효험이 없고 도리어 더 중하여졌던 차에”(막 5:26) 그러나 아무 효험이 없었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게 되었을 때에 소문을 듣게 되었다. “예수의 소문을 듣고 무리 가운데 끼어 뒤로 와서 그의 옷에 손을 대니”(막 5:27) 그녀는 자신의 존재를 몰래 감추고 병을 고치고자 하는 마음에 예수의 뒤로 온 것이다. 그리고 옷자락을 만진 것은 오직 예수만이 자신의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겼기 때문이다. 그랬더니 열두 해 동안 앓았던 병이 완전히 제거되었다. 즉 예수님으로부터 오는 치료의 능력은 즉각성과 완벽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병고침을 통하여 여인의 믿음의 자세와 예수님의 전지전능성을 알게 된다. 먼저 여인은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러 왔다는 것이다. 간절한 마음과 겸손하며 낫고자 하는 마음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그 믿음을 보시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셨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네 병에서 놓여 건강할지어다”(막 5:34)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여인의 마음을 스스로 아셨다는 것이다. 그것은 그녀의 소망을 들어 주셔서 치유를 허락해 주심을 말한다.  무슨 말씀인가하면 고침을 받고자 하는 자들의 마음을 알고 계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이 땅에 오심은 죄인을 구원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러 오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 앞에 나올 때는 간절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모슨 사실을 고백하고 간구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기 자기에게 이루어진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떨며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모든 사실을 여쭈니”(막 5:3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음이 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