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 세계의 광대한 섭리와 십자가의 역설적 지혜(욥 39:5)
피조 세계의 광대한 섭리와 십자가의 역설적 지혜(욥 39: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욥 39:5)
욥 39장에서는 인간의 손길과 통제가 전혀 닿지 않는 거친 야생동물들의 세계를 생생하게 조명한다.
하나님은 산염소, 암사슴, 들나귀, 들소, 타조, 말, 매와 독수리에 이르기까지 야생 동물들의 번식, 자유, 습성, 용맹함을 일일이 열거하신다.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인간의 좁은 시야와 유용성 중심의 사고를 깨뜨리시고, 인간이 다 이해할 수 없는 피조 셰계 전체를 세밀하게 먹이시고 다스리시는 관대한 주권과 지혜를 드러내시는 것이다.
인간은 흔히 자신에게 유익한 것에 길들여진 것만을 가치 있게 여기지만, 하나님은 인간의 관리 영역 밖에 있는 야생의 생명들까지도 주권적으로 돌보시고 보존하신다.
오직 창조주의 다스림 아래에만 복종하는 동물들이 있다. 즉 인간은 피조 세계의 작은 야생 짐승 하나도 자기 뜻대로 온전히 굴복시키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임을 깨닫게 한다. “들소가 어찌 기꺼이 너를 위하여 일하겠으며 네 외양간에 머물겠느냐”(욥 39:9)
하나님은 역설적인 창조의 신비를 보여 주시므로 인간의 획일적인 잣대나 인과응보의 공식으로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대한 것으로, 타조는 알을 땅에 방치할 만큼 지혜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달릴 때에는 날쌘 군마(말) 조차 비웃을 정도의 속력을 낸다.
또한 생명의 죽음의 전 영역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 주신다. 매가 남쪽으로 날아가는 본능과 독수리가 낭떠러지 바위산에 둥지를 틀고 먹이를 사냥하는 것은 인간의 명령이 아니라 하나님의 본능적 설계에 의한 것이라 한다.
즉 피를 흘리고 시체를 찾는 맹금류의 본능마저도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섭리의 거대한 망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시는 이유는 ‘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철저한 인간 중심적인 인과응보의 틀에 갇혀있는 것을 깨기 위함이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구속사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십자가는 인간의 모든 종교적 윤리적 계산을 완전히 뒤엎는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가 정치적 번영과 군사적 승리를 줄 것으로 기대하였으나, 하나님은 가장 낮고 연약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속의 지혜를 나타내셨습니다.
우주만물을 다스리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한 번도 타보지 않은 나귀를 타시고 평화의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막 11:2-7).
성도는 인생의 낭떠러지와 같은 고립된 처지에 놓일 때 ‘하나님이 나를 잊으셨는가’ 낙심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위 산의 짐승들도 먹이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의 피로 사신 성도들을 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엘파소 열린문 장로교회 장용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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