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


 목사는 예배를 드릴 때에 설교를 한다. 설교는 혼자서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회중이 있다. 회중의 형편을 살펴서 필요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그러니 회중의 살피지 않고 설교를 하는 것은 큰 문제가 된다. 대표적인 것이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카피하는 것이다. 그 설교는 그 형편에 있는 회중을 상대로 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설교자의 설교를 그대로 옮기는 것은 듣는 자나 전하는 자 모두다 은혜가 안 된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듣는 회중들이 나는 곤고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야 한다. 즉 병든 자이다. 그래서 의원이 필요하다. 병든 자를 고쳐주시기 위하여 오신 예수님을 찾게 하여야 한다.
 
그래서 그 말씀은 쓴 맛이 난다. 유월절 어린 양 고기는 쓴 나물과 함께 먹어야 한다. 쓴 맛이 나중에는 단 맛이 되고 몸에 유익하다. 정직한 영혼은 책망을 통하여 자기의 죄를 고백하게 된다.
 
다윗은 이와 같은 상황을 비유로 말하였다. 더러운 음식을 위에 담고 있었더니 고통으로 인하여 신음을 하고 뼈가 상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이때에 하나님께서 다윗을 짓누름으로 인하여 토하여 내었더니 여름 가뭄에 바짝 마른 식물과 같이 되었다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죄사함을 받았다는 고백이다.
 
설교는 죄를 토하게 하는 것이다. 자백하게 하여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갖게 하여야 하고, 비어진 그곳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워야 한다. 그런데 설교를 듣고 반발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많다. 그리 놀랄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는데도 순종하기 보다는 따지고 돌로 치려했었다.
 
죄는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것들이다. 죄는 고쳐서 다시 쓰는 것이 아니다. 버려야 한다. 토설물과 같다. 이것을 버리지 않게 하는 설교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설교가 아니다. 지금은 설교자의 상식과 지적인 면과 교양을 자랑하면 좋은 설교자라 인정을 받는 시대이다. 그리고 그곳으로 사람들이 몰려가고 있다. 어두움의 자식들은 빛을 싫어한다. 죄에 대한 지적을 싫어한다. 그러니 자연히 어두움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신자들은 오늘도 바쁘다. 세상에서 하였던 일도 계속하여야 하고 교회에 와서 복도 받으려 하니 말이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것들을 삼가야 한다. 그런데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이웃을 향한 비방과 거짓 증거를 계속하면서 믿음의 생활을 한다면, 믿음이 적은 자라 꾸중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에 있는 자는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를 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지를 알지 못하니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일을 아직도 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법이다. 진리이다. 진리의 말씀은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는다. 그 말씀을 따라 가면 죄의 자리로 빠지지 않는다. 설교는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회중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언어를 사용하여 전하는 것이다.
 
그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있으니 그의 걸음은 실족함이 없으리로다”(3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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