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는 성탄절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아기로 오신 것은 역사적인 사실이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사건이 중심이 되어 세계사가 기록되었다. 이 명확한 사실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아직도 믿지 못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 있다고 하는 것이 성경의 증언이다.
 
신자들 가운데도 예수님이 이 땅에 우리를 위하여 오셨는데 진정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모르기 때문이다.
 
성탄절인데 왜 기쁜 일인지 알지 못한다면 감동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시는 것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것 이상으로 경이롭다. 그런데 감동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려는 일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자주 고백하는 기도문이 있다. 거기에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진다라는 말씀을 믿는다. 이미 하나님이 이루신 뜻을 이루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그 일에 시작이 예수님이 아기로 태어나시는 것이다.
 
그러니 아버지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성탄을 축하할 수 있다. 아버지는 아들을 왜 세상에 보내시는가? 죄인들을 구원하여 주시고 영생을 주려 하심이다. 영생을 얻은 자에게는 다시는 죽음의 권세가 다가올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권세가 영생이다.
 
영생을 얻은 자는 사망의 자리에서 생명의 자리로 옮겼고, 죄의 책임의 심판의 자리로 가지 않는다. 또한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다. 이것이 영생을 소유한 자의 유익이다. 이것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다시 말하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즉 세상에서는 인간의 힘과 지혜로는 얻을 수도 없고 생각할 수도 없는 것들이다.
 
우리의 지혜와 능력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을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이 오시는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을 안다면 어찌 기쁘지 않을 수 있을까?
 
그 분이 오신다고 하는데 대문을 열고 달려 나가서 맞이하여야 함이 맞지 않은가? 그 분이 나를 찾아 오시는데 모르는 척 할 수 있는가? 그 분이 누구인지를 안다면 내가 제일 먼저 마중을 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라 고백을 하였다. 죄 많은 나에게 제일 먼저 오셔서 은혜를 베풀어 달라는 간구이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2:2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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